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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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프랑스 유언         

 



지은이:

저자 안드레이 마킨 Andre? Makine은 1957년 러시아 시베리아 출신으로 볼가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모스크바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노브고로드 언어연구소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프랑스 유수의 문예지인 「마가진 리테레르」의 소련 특파원으로도 일했다. 그가 서른 살이던 1987년,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정치적 망명을 한 이후 1990년에 『어느 소련 영웅의 딸』이라는 제목의 처녀작을 출간하면서 작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한다. 1995년에는 『프랑스 유언』으로 공쿠르상과 고등학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상, 그리고 메디치상까지 받는 3관왕의 주인공이 되면서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 유언』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화자는 작가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화자의 삶을 이중 분열적으로 몰고 갔던 매혹의 대상인 동시에 배척의 대상인 프랑스라는 유산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 자신에게서도 드러난다.
마킨은 문학상 수상작 9편을 포함해 2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섬세하고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의 문체는 시적이고 세련되었다고 평가를 받는 한편 고전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작품으로는 『소련 영웅의 딸』 『올가 아르벨리나의 범죄』 『동구를 위한 레퀴엠』 『어떤 삶의 음악』 『작크 도름므의 하늘과 땅』 『기다리는 여인』 『영원히 기억될 짧은 사랑』 『사랑받는 여자』 『슈라이버 중위의 나라』 『또 다른 삶의 열도』 등이 있다.

역자 이재형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원대학교, 상명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다. 우리에게 생소했던 프랑스 소설의 세계를 소개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많은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지금은 프랑스에 머물면서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세상의 용도』 『부엔 까미노』 『어느 하녀의 일기』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꾸뻬 씨의 시간 여행』 『꾸뻬 씨의 사랑 여행』 『마르셀의 여름 1, 2』 『사막의 정원사 무싸』 『카트린 드 메디치』 『장미와 에델바이스』 『이중설계』 『시티 오브 조이』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 『레이스 뜨는 여자』 『정원으로 가는 길』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 『사회계약론』 『법의 정신』 『군중심리』 『사회계약론』 『패자의 기억』 『최후의 성 말빌』 『세월의 거품』 『밤의 노예』 『지구는 우리의 조국』 『마법의 백과사전』 『말빌』 『신혼여행』 『어느 나무의 일기』 등이 있다.

출처:교보문고




내용:
이야기 속에는 해마다 여름이되면 도시에 있는 집에서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오지에 있는 외할머니를 찾아가서 유년기의 시절을 보내던  소년과  그의 누나가 있었습니다. 그 소년의 눈을 통해서 본  소년의 할머니 샤를로트 르모니에라는 프랑스 여인의 삶과 그 여인이 관통한 프랑스와 러시아의 격변기의 이야기 입니다. 또한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p38
그리고 언제 어느 때나, 어디를 가나 자신이 열성적이란 걸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어서 (투쟁 활동은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다) 아래층에 사는 사람은 눈에 가장 잘 띄는 던축적 과잉물을 벽에서 떼어 내려고 애썼다, 그게 뭔가하면, 할머니네 집 발코니 양편에서끌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바쿠스 여제관들의 아름다운 안면상이었다.
-10월 혁명이후 부르주아 예술의 퇴폐적인 경향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집을 파손해 버리는 이 상황을 보니, 2015년에 이순영 학생이 쓴 동시집 [솔로 강아지]에 쏟아지던 사람들의 비난이 생각나네요. 아래는 이 동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동시입니다. 
 

p12-13

솔로 강아지



우리 강아지는 솔로다.


약혼 신청을 해 온 수캐들은 많은데

엄마가 허락을 안 한다.


솔로의 슬픔을 모르는 여자

인형을 사랑하게 되어 버린 우리 강아지


할아버지는 침이 묻은 인형을 버리려한다.

정든다는 것을 모른다.


강아지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외로움이 납작하다.




p68

나를 잡아채려고 하거나 내 귀에 대고 나를 조소하는 아이들을 밀치면서 불현듯 나는 그들에 대해서 엄청난 질투가 느껴졌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그날을, 너무나 사무치지만 거의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이는 그 과거를 자기 가슴속에 품고 다니지 않는 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그래, 단 하나의 인생관만을 갖는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와 다른 식으로 본다는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 프랑스인 할머니의 영향으로 또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주인공의 사정이 딱하네요. 어린아이들이 더 잔인할때를 가끔 봅니다.




p84-85

여기서 그녀는 자기가 지금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보면 큰 강에서 올라오는 안개 속에 잠긴 평화로운 러시아 마을들(이즈바, 우물, 울타리)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가까이 가서 본 그 지옥은 적십자사의 사진가가 그 음울한 날들에서 담아낸 사진 속에 고정되었다. 검은색 양가죽 옷을 입은 농부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인골과 갈기갈기 찟긴 시신들, 누구 것인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살덩어리 앞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벌거벗고 눈 속에 앉아 있는 아이(헝클어진 긴 머리칼, 노인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눈초리,곤충처럼 바싹 야윈 몸뚱이) 사진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 사진에는 빙판을 이룬 도로 위에 잘려진 머리 하나가 초점을 잃은 눈을 뜬 채 나뒹굴고 있었다. 더더욱 나쁜 것은 이 사진들이 계속되어 고정되어 있지 않았단믄 사실이다. 사진가가 삼각대를 접자 농부들은 사진(식인 현장을 찍은 이 끔찍한 사진)의 배경을 떠나 놀랍도록 단순하게 일상적인 동작들을 취하면서 다시 살아가기 시작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어린아이를 살펴보던 한 여인이 그게 자기 아들이라는 걸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미 몇 주일 전부터 사람 고기를 먹고 살아온 그녀는 이 노인 같기도 하고 곤충 같기도 한 자기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바로 그때 그녀의 목구멍에서 늑대 울음 소리가 올라왔다. 그 어떤 사진도 이 울음 소리를 고정시킬 수는 없었다.

-1921년 소년의 외할머니 샤를로트는 내전과 기근에 시달리게 된 러시아에 적십자 단원으로 볼가강 지역에 지원해서 갈 수 있었고, 이 장면 묘사는 러시아의 볼가강 근처에 도착한 그녀가 본 참상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상상을 해보니 정말 끔찍했습니다. 격동의 러시아에서 힘없는 자들은 정말 비참하게 살아 남거나 죽을 수 밖에 없었군요.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잘못하면 국민들이 힘들어지고 심하면 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21세기에 외세의 침략이라니 너무 심한 비약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정종숙 저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중에서 (P26) "김성일 역시 전쟁의 가능성을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로 인해 조선의 민심이 혼란에 빠지는 상황을 더 큰 문제로 보고 우려한 것이다. 조선의 민심이 혼란에 빠지는 상황을 더 큰 문제로 보고 우려한 것이다.그러나 명백한 실수였다. 사실대로 보고하고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었다. 이 실수 때문에 김성일은 역사의 죄인이 되었고, 이후 임진왜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인물로 공격받는다. 그의 잘못된 판단과 보고로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김성일의 한 마디에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가 결정된 걸까? 선조 임금과 집권 세력은 대체 무엇을 한 걸까? "

라는 이야기 나옵니다.




p99

샤를로트가 계속해서 신분증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당연히 논리적이면서도 도저히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 그 다음에 벌어졌다. 지도자가 느닷없이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만원 열차 안에서 두 달씩이나 보낸 기억이 있는 그녀조차 얼빠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가 문손잡이를 손에 쥐었을 때까지도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별안간 얼굴을 그녀 얼굴에 가까이 가져가더니 이렇게 소곤거리는 것이었다.

"난 널 체포해서 저기 변소 뒤 마당에서 총살을 시킬 수도 있어! 알겠니? 이 더러운 첩자 같으니라구!"

- 세월호 유족을 대하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완장을 차면 사람들이 도대체 왜 저렇게 변하나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프레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던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p137~138
여기서 흥미로운 건 유대인 특권층이다. 다른 인종의 사람들은 수용소에 들어오면 타고난 우월성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런 임무를 맡는 반면, 유대인들은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술수를 부리고 힘겹게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유대인 특권층들이 만들어내는 인간상은 슬프면서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과거, 고래의 고통들, 이방인에 대한 전승되고 학습된 적개심이 그들 안에서 하나가 되며, 이 모든 것을이 그들을 비사교적이고 무례한 괴물로 만든다.
그들은 독일 수용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작품이다. 노예 상태에 있는 몇몇 개인에게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높은 생존 가능성이 제공되는데, 대신 그들은 동료들과의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배신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물론 몇몇은 그 요구를 받아 들인다. 그 사람은 일반 규정을 면제받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밉살스럽다. 사람들로부터 증오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에게는 더 큰 힘이 주어질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의 소대를 지휘하는 책임이 그에게 맡겨져 그가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권리를 갖게되면 그는 잔인하고 포악해질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 자리에 훨씬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다른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압제하는 사람들에 대한 욕구불만의 찌꺼기를 자신이 압제하는 사람들에게 비이성적으로 퍼붓는다. 위에서 받는 모욕을 밑에 있는 사람에게 증오의 형태로 폭발시키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p160-161

하지만 그는 아주 먼 곳에서 나타나 자기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드러냄으로써 자기 아내가 이미 그 어렴풋한 미소를 알아차린 한 남자의 시루엣이 다가오는 그 길에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들은 뛰지도 않았고, 무슨 말을 나누짇 않았고,서로 껴안지도 않았다. 그들은 꼭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긴 시간을 서로를 향해 걸어온 것 같았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황금색 나뭇잎에 반사된 저녁 빛은 환상적일 만큼 투명했다. 그에게 거의 다 다가가서 걸음을 멈춘 그녀는 들고 있던 풀 다발을 천천히 흔들었다. 그는 "그래,그래 , 알아."라고 말하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광채를 잃은 청동제 버클이 달린 혁대만 차고 있을 뿐 멜빵은 매고 있지 않았다. 군화는 온통 적갈색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4년만에 소년의 외할머니는 그녀의 남편과 재회합니다. 2차 세계대전의 무시무시한 전쟁터에서 두번이나 사망통지서가 날아온 그 남편 피오도르를 말입니다. 뭐라 말 할 수없는 광경입니다.  



p310

하지만 나는 그 점을 깨닫지 못했다.어떤 동작들을 아무리 감추려고 애써도 그 자체의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진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진실은 거짓으로 감출 수 없지요.




p312

산문을 번역하는 사람은 작가의 노예이고 , 시를 번역하는 사람은 작가의 라이벌이라고.

- 이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는데 정말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감상

옮긴이의 글의 소제목이 [기억은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삶 자체이다.] 라는 말이 이 이야기를 잘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프랑스 유언]이지만 프랑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쏘비에트 연합과 현재의 러시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읽는 내내 대지나 닥터 지바고가 연상되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몇년전 [ 벨 에포크 시대로의 산책]저자 이주은작가님에게서 직접 들었던 [ 벨 에포크 시대로의 산책]의 벨 에포크 시대의 이미지가 주로 연상되었습니다. 유럽의 19세기말 20세기 초  짧은 20여년을 사람들은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좋은 시절)시대라고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시기적으로는 1890년경부터 1차 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경까지를 말하며, 미술에서는 인상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하는 1870년경부터를 의미한다고 하셨었습니다.


재미도 있고 생각도 많아지고 구글링도 꽤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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