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기억하라 - 징비록
정종숙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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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지은이:

저자 정종숙은 《드라마 다큐멘터리 덕수궁 왕조의 세월》을 시작으로 《임진왜란 400년 특별기획 드라마 다큐멘터리 임진왜란(4부작)》, 《역사의 라이벌》, 《광복 50주년 특별기획 영상실록》, 《역사추리》, 《역사스페셜》, 《인물현대사》, 《한국사傳》, 《다큐멘터리 페이퍼로드》, 《임진왜란, 그 반성의 기록-징비록》, 《랭턴박사의 역사추적》, EBS 세계 문명사 대기획 《위대한 로마 2부 제국의 도시 폼페이》 등 그동안 많은 역사 다큐멘터리를 집필해왔다. 현재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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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를 열광시킨 문제작 1장,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 왕과 이순신 2장,  싸우는 자 도망가는 자
3장 , 바다로부터의 반격 4장,  투명인간 취급받는 조선 5장,  전쟁 아닌 전쟁 6장,   다시 시작된 전쟁 7장, 에필로그 - 역사는 기억하는 대로 움직인다 8장 입니다.

저자는 류성룡의 징비록을 터잡아 현재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P26

김성일 역시 전쟁의 가능성을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로 인해 조선의 민심이 혼란에 빠지는 상황을 더 큰 문제로 보고 우려한 것이다. 조선의 민심이 혼란에 빠지는 상황을 더 큰 문제로 보고 우려한 것이다.그러나 명백한 실수였다. 사실대로 보고하고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었다. 이 실수 때문에 김성일은 역사의 죄인이 되었고, 이후 임진왜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인물로 공격받는다. 그의 잘못된 판단과 보고로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김성일의 한 마디에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가 결정된 걸까? 선조 임금과 집권 세력은 대체 무엇을 한 걸까?

- 선장과 해경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꼬리를 잘라 희생양을 삼으면서 누군가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지겠죠.



p39

을사사화와 함께 출범한 명종 시대는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막이 올랐다. 명종이 2년 차 되던 1547년9월18일 , 지금의 양재역에 최고 권력을 겨냥한 벽서가 나붙었다. 그것도 매우 선동적인 붉은 글씨로 쓴 벽서였다.


'여주'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아래에서는 간신들이 권세를 농간하고 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이다. 이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 여기서 여주는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 윤씨를 말합니다. 간신은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이고요.권력을 독점한 간신, 권간이었죠.

요즘 SNS의 기능을 예전에는 벽서가 했군요.




P50

일본 항공 우주센터가 있는 다네가시마는 일본의 놀라운  변화를 견인한 곳이다. 그곳에서 일본과 포르투칼과의 만남이 시작됐고, 그 만남은로 일본이 처음으로 서양 문명을 접하고 유용성에 눈 떴다.

-서양문화를 처음 접한 곳에 우주센터를 짓다니 의미 심장하네요. 이런 꼼꼼한 분들이 왜 자꾸 일본군 성노예는 없었다고 하시는지 의도가 궁금해집니다.




P62-64

거북선의 등장 역시 류성룡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군함 건조는 이순신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재정 지원이 있어야만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수군 폐지를 논하던 조정에서 막대한 경비가 들어가는 이순신의 거북선 건조 계획을 반겼을 리 만무하다. 그런 상황에서 류성룡의 절대적인 지지와 후원이 없었다면 이순신 함대의 거북선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1598.11.19 이순신 장군은 죽고, 류성룡은 영의정에서 파직되었다고 합니다. 앉아서는 안되는 자가 리더의 자리에 앉게 되니 비극이 발생하는 겁니다.




P75

경상좌병사 이각은 송상현이 함께 싸우자고

제안했으나 뿌리치고 후퇴했다.

경상좌수사 박홍은 적의 세력에  질려 성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밀양부사 박진은 병기와 창고를 불사지른 다음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경상감사 김수는 진주성에서 일본군의 침략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동래성으로 향했으나

적이 가까이 접근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부 지방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겨우 생각한 것이 온 고을에 격문을 띄우는 것이었는데,

격문은 모두 도망치라는 내용이었다.

[징비록]중에서

-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수많은 학생들이 죽었죠. 전쟁 발발 초기를 묘사한 부분과 오버랩되는 이야기입니다.




p82

중앙에서 장수를 파견하기 위해 병력을 점검했다.

그런데 병조에서 선발한 병사라는 것이

대부분 집에서 살림하던 사람들이거나 아전 또는 유생들뿐이었다.

불러 모아 점검을 해 보자 관복을 입고 옆에 책을  낀 채로 나온 유생,

평정건을 쓰고 나온 아전 등

모두 병사로 뽑히기를 꺼리는 자들로 뜰이 가득 찼다.

- 군역의 문란. 21세기 대한민국은 병역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고위 공직자가 되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총한방 쏴보지 않고 유격 훈련이나 화생방 훈련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전쟁불사를 외치다니 이건 코메디입니다. 그분들은 일본에 망명정부를 만들어서 안전하게 계실 거면서 우리 아들들은 사지로 너무 쉽게 몰 생각을 하시다니 .... 군대 안 다녀온 분들은 국가정책을 결정하는데 참여하시면 정말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역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려고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분의 재력과 권력을 부럽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 안됩니다.




p117

우리는 너희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다.

너희 임금이 백성을 학대하므로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이다

[선조실록]

-백성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줄기차게 도망만 다니는 선조의 모습을 보면 백성들에게 그럴 듯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조선백성을 회유하려는 일본군의 모습을 기록한 선조실록을 보니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한 세종대 박유하 교수님의 [제국의 위안부]중에서 몇구절이 생각납니다.

 

 [제국의 위안부]중에서.p25

물론 센다이 책에 나오는 업자처럼 '군'이 직접 업자에게 위안부 모집을 의뢰한 경우는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기나 유인까지 해가면서 마구잡이로 끌어오라고 지시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마구잡이로 모집하는 것을 금지한 자료라면 존재한다. 그 자료는 설령 강제로 끌어가 군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공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제국의 위안부]중에서.p38

그러나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수요를 만든 것이 곧 강제연행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p172

일본군에게 아첨해서 그들과 친해지거나 그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자들이 있었다. 일본군을 죽이고자 모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앞잡이들이 일본군에게 밀고하여 종루 앞이나 숭례문 밖에서 이들을 불에 태워 죽이게 하였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중

-2016년7월12일 일본 대사관이 남산 모 호텔에서 자위대 창설 62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고  이날 기념행사에는 국방부에서는 국장급 2~3명, 외교부에서는 사무관급 실무자가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뉴스에서 봤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행사를 함께 축하해주는 것은 이웃국가로써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만 하필 일본 군대의 생일날을 굳이 참석까지 해가며 우리가 축하하는 건 좀 모양이 이상합니다.




P239

백성들의 고통 호소에 방납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상인들과 손을 잡은 권세가들의 막강한 힘에 눌려 단속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더구나 납세자의 재산을 고려하지 않고 가호 단위로 부과한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수백만 평의 농지를 가진 부자나, 송곳 꽂을 땅 한 평 없는 소작인에게 똑같은 세금을 내는 폐단이었다.

-요즘 일용직들에게도 어느정도 근무시간 [한달기준 8일미만 60시간 미만]이 되면 4대보험을 들게 강요하는 것은 가혹합니다. 다는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최저시급6,030원 받기도 빠뜻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감상:

가독성도 좋아서 잡아서 한숨에 읽어지는 책입니다. 난중일기는 여러 버젼으로 읽어 봤는데 징비록은 처음이였습니다. 시각이 또 달라지니 재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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