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주역 공부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김승호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 :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지은이: 김승호

저자 초운() 김승호는 한국 최고의 주역학자이자 작가로 1949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지난 50년 동안 ‘과학으로서의 주역’을 연구해 ‘주역과학’, ‘주역풍수’라는 새로운 개념과 체계를 정립했다. 동양의 유불선(彿)과 수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심리학 등 인문, 자연, 사회과학이 거둔 최신 이론을 주역과 융합시켜 집대성한 결과가 바로 주역과학이다.
1985년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물리학자와 의사에게 주역을 강의하기도 했으며, 맨해튼 응용지성연구원의 상임연구원과 명륜당(미국 유교 본부) 수석강사를 역임했다. 사단법인 동양과학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한의사를 비롯해, 물리학자, 심리학자, 수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주역과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돈보다 운을 벌어라』 『사는 곳이 운명이다』 『사람이 운명이다』를 비롯해 『팔괘』 『주역 원론』(전 6권) 외 다수가 있다. 1991년부터 「문화일보」에 『소설 주역』을 연재, 10권의 책으로 펴냈으며, 2003년에는 일본 쇼가쿠칸() 출판사에서 『소설 가이아』가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일간스포츠」에 ‘알기 쉬운 주역과학’을 연재했으며, 「그린경제신문」에 ‘주역과 인생의 신비’를 연재했다.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은 초운 김승호 선생의 50년 공부 내공이 담긴 책으로, 주역과학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풀어냈다. “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밝히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해 인생의 넓은 섭리와 만물의 변화 원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초운주역과학학회 카페(http://cafe.naver.com/ichingscience)에서 저자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출처: 교보문고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640030





내용:
45년 동안 과학으로서의 주역을 연구했다는 주역학자 초운 김승호 선생이 주역에 대해 입문서로써 쓰신 책입니다. 주역은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학문으로써  1만 년 동안 이어 온 주역은 만물을 여덟 가지 성질로 나눈다고 설명해주십니다. 여덟가지 성질은  천(하늘) 지(땅) 풍(바람) 뢰(천둥) 산(산) 수(물) 화(불· 택(연못·)으로요.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만물의 원리는 존재하는가?  2장.주역의 실체에서는 사물의 핵심에 다가서는 길로써 주역의 기본에 대해 설명해주십니다. 그 설명에 비행기와 참새,바람과 연못,관우의 마음,산의 움직임등이 나옵니다. 3장.주역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에서는 하늘의 도와 팔쾌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십니다. 4장.세상을 보는 지혜에서는 주역의 표현 방식, 대성괘의 의미등에 대해 말해 주십니다. 5장.64괘로 세상의 의미를 찾다에서는 64괘의 뜻과 괘상 속의 숨은 뜻에 대해 설명해 주십니다. 

 

p23
플라톤은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물이 있어도 정다면체는 오로지 5개뿐(4,6,8,12,20)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이 5개의 정다면체를 만물의 원소로 생각했다.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은 입체고, 입체는 평등한 데서 시작했으므로 , 만물은 5개 정다면체의 집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재미있게도 사랑이란 정십이면체이며, 증오는 정이십면체라고 주장했다.사실 여부는 논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물은 모양이 있다는 것이고, 모든 모양은 기본 원소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5개의 정다면체로 우주를 다 설명하려고 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플라톤의 생각은 단순했지만 그 내면에 깔린 사상은 아주 심오한 것이었다. 바로 사물을 물질과 사상이 통합된 존재로 보고 그것이 근원적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상이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범주론적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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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주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저서.
범주론》은 단어와 단어를 연결한 명제와 판단을 다룬 《명제론》, 그리고 명제들에 의해 구성되는 추론을 다룬 《분석론 전, 후서》 등과 함께 논리학의 기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떠한 단어의 의미를 다른 것과 연관시키지 못한다면 그 단어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단어는 다른 단어와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단어들을 엄격하게 분류할 필요가 있었다. 《범주론》은 그러한 목적을 위해 저술되었다.

범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단어가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몇 가지 예를 보여준 다음에 결합되어 말해지는 것과 결합 없이 말해지는 것을 구분한다. 그리고 나서 단어들을 열 가지의 범주로 분류한다. 이 범주들은 모두 개별적 사물 또는 지시어에 관해서 말해질 수 있는 것들로서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위치, 상태, 수동과 능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범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주는데 특히 실체 범주를 중요하게 다룬다.

실체는 제일 실체와 제이 실체로 다시 구분된다. 제일 실체는 다른 것의 술어가 될 수 없는 개별자이고 제이 실체는 개별자들이 포함되는 종개념이나 유개념과 같은 보편자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제이 실체를 제외한 모든 범주는 주어인 제일 실체의 술어들이다. 술어는 주어의 속성을 나타낸다. 속성은 다시 필연적 속성과 우연적 속성으로 나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범주는 단지 논리적 요소만이 아니다. 그에게 사유의 질서와 사물들의 질서는 같은 것이기 때문에 범주는 사고의 형식일 뿐 아니라 존재의 형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범주표는 존재의 분류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고의 형식과 존재의 형식이 어떻게 교통하고 일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약 2,000년 후에 칸트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으로부터 플라톤과의 차이를 분명히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플라톤에게서 실재하는 것은 형상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재하는 것을 개별자인 제일 실체라고 보았고 형상과 같은 보편자는 단지 이름뿐인 제이 실체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범주론 [Categoriae, 範疇論] (두산백과)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04395&cid=40942&categoryId=31505



 p43

그런데 닐스 보어는 주역에서 무엇을 공부했던 것일까? 그가 공부한 것은 상보성원리로 알려져 있는데, 이 이론은 음양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부족한 것을 서로 도와주는 보완적 관계라는 것이다. 원자의 세계에는 파동과 입자, 그리고 서로 상충되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 이들은 각각 상대를 도와줌으로써 세상을 존재케 한다는 이론이다. 주역은 음양의 상보성 원리를 다루는 학문이다. 보어는 이것에 주목했던 것이다.

- 닐스 헨리크 다비드 보어(덴마크어: Niels Henrik David Bohr , 1885년 10월 7일 ~ 1962년 11월 18일)는 원자 구조의 이해와 양자역학의 성립에 기여한 덴마크물리학자로서, 훗날 이 업적으로 1922년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보어는 코펜하겐의 그의 연구소에서 많은 물리학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일하였다. 또한, 그는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 하기도 하였다. 보어는 1912년에 마르그레테 뇌르룬트(Margrethe Nørlund)와 결혼을 한 후 몇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에서 오게 닐스 보어는 그의 아버지처럼 세계에서 중요한 물리학자가 되었고 그 또한 197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보어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진다.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8B%90%EC%8A%A4_%EB%B3%B4%EC%96%B4

 

 

 

 

 

 

[과학동아 11월호] 상수의 탄생

[고전물리학의 균열을 메운 보어] 물리학의 대가가 설명해 낸 특이한 효과

과학동아 | 입력 2015년 10월 30일 18:50 | 최종편집 2015년 10월 30일 19:06

 

1900년 플랑크 상수(h)는 ‘흑체 복사 미스터리’에 빠져 있던 물리학을 구해냈지만, 동시에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열었다(과학동아 6월호 상수의 탄생 참고).

 

톰슨과 러더퍼드의 모형은 원자와 전자의 존재를 그럴싸하게 설명했지만, 걸음마에 불과했다. 이제 그 다음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바로 양자역학이다.

 

[고전물리학의 균열을 메운 보어]

1. 물리학의 대가가 설명해 낸 특이한 효과

2. 물리학의 대가도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

3. 닐스 보어, 원자 모형으로 물리학의 대가되다

 

 

1887년 독일의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는 금속판에 빛을 쬐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발견했다.

 

바로 광전효과다. 금속판의 전자는 금속 원자와의 상호작용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저절로 금속판을 벗어날 수 없다. 충분한 에너지를 가진 빛을 밖에서 쪼여줘야만 전자가 금속판을 박차고 튀어나올 수 있다. 여기까진 별로 신기할 것이 없다. 당시 물리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금속판을 튀어 나온 전자의 운동에너지가 빛의 세기(빛을 이루는 전기장 혹은 자기장의 강도)에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빛의 진동수에만 비례한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물리학계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진동수가 특정한 기준 이하로 작은(파장이 긴) 빛은 아무리 강한 세기로 비춰도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반면 진동수가 기준 이상으로 큰(파장이 짧은) 빛은 아주 약하게만 쪼여도 전자가 바로 튀어나왔다.

 

빛을 파동으로 해석하는 고전전자기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예컨대 아무리 붉은 빛을 강하게 쪼여도 흐르지 않던 전류가, 아주 약한 푸른 빛을 쏴 주자마자 흐르기 시작하는 현상은, 정말 신기했지만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플랑크가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에너지 양자 개념을 이용해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해냈다. 플랑크상수(h)와 빛의 진동수( f)의 곱(hf)을 빛의 에너지 단위로 쓰자는 제안이었다.

 

이 방법에 따르면 빛의 에너지는 hf, 2hf, 3hf, … 처럼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혹은 하나씩 더할 수 있는 값처럼 보인다. 물리학에선 이 ‘무언가’를 빛알(광자)이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파동설에서 벗어나, 빛의 본질을 하나씩 셀 수 있는 알갱이로 보는 관점이다.

 

아인슈타인은 빛알 개념을 통해 광전효과를 완벽히 해석했다.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전자가 금속판에서 튀어나오려면 일함수 W보다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진동수가 f인 빛알 한 개의 에너지(hf)가 W보다 작으면, 빛의 세기가 아무리 커도 전자는 튀어나오지 않는다. 빛의 에너지는 빛의 세기와 관련이 없고, 오직 진동수( f)에만 비례하기 때문이다.

 

만약 빛의 에너지가 W보다 크면 전자는 hf - W만큼의 운동 에너지를 갖고 금속판을 벗어나게 된다. 이땐 빛의 세기가 아무리 약해도 전자를 탈출시킬 수 있다.

 

우리의 눈으로는 빛이 작고 띄엄띄엄한 양자역학적 입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힘들다. 빛을 보는 동안, 우리의 눈으로 수많은 빛알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생산이 일부 금지된 백열전구는 에너지 효율이 2%정도로 아주 낮다. 소비전력 100W인 백열전구가 빛으로 바꾸는 에너지가 불과 2W에 불과하다는 뜻이다(나머지는 열로 소실된다. 이외수의 소설 ‘들개’에는 백열 전구를 난방장치로 쓰는 장면이 나온다). 백열전구에서 1초당 나오는 빛알의 개수를 N이라 하면, 백열전구에서 1초당 나오는 빛 에너지는 빛알 하나의 에너지에 개수를 곱한 값과 같다.

 

 

 

백열전구에서 나오는 빛의 에너지를 2W, 파장을 500nm정도로 어림해서 계산하면, 1초마다 나오는 빛알의 수는 무려 10개가 넘는다. 빛을 띄엄띄엄한 입자모임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통계물리학 특히 사회/경제/물리 복잡계가 주요 연구 관심분야다. 세상을 물리학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활동도 활발히 하고있다. 최근 새 책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펴냈다. beomjun@skku.edu

 

출처: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8544

 

 

 

 

100년쯤 전에 아이슈타인이 대학을 졸업하고 일년 백수로 지낸 후 스위스의 수도 베른의 특허국에 특허국 기술 전문 제3급 사무관이라는   첫직장을 얻어 각종 특허 신청서를 검토하는 일을 하면서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라는 일명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상대성은 코레루니쿠스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노구를 이끌고 재판을 받아야 했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의 저자 갈릴레오와 관련이 있다고 하더군요.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는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와 천동설의 프톨레마이어스, 아리스토텔레스간의 문답형식의 대화형태의 책이라 쉽게 지동설을 설명하고 있더군요. 닐스 헨리크 다비드 보어와는 아이슈타인이 학문적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p55

공자라는 존재는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가? 그는 성인이다. 우리 보통 사람하고는 완연히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떠한가? 우리 자신은 하늘 아래 살건만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가? 보통 사람이라고? 그래서 먹고 자고 본능 따라 사는게 전부라고?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살면서 계속 자신의 뜻을 높여나가야 한다. 즉, 큰 뜻을 많이 갖춰나가가야 하는 것이다.

- 정말 오랫동안 고민하는 질문입니다. 나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큰 뜻을 품고 실행에 옮기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존재라는 현실을 깨닫고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될까?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실망하면서 벌써 몇십년 시간만 보낸 것 같습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외치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말이 정말 싫어서 한 동안 보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p122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봐서 안 될 것을 보면 볼 것을 못 보고, 이로 인해 우울함이 생기는 법이다. 태양의 밝음을 본받아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보잘것없는 자기만족은 남에게 밝음을 선사하지 못한다. 인생은 위대함을 꿈꾸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빛을 나눠 준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p124-125

우주 공간이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우주 공간이 없다면 별이나 지구 ,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깨 시간은 흐를까? 시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어떤 공간에서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공간이라는 것이 없는데 시간이 어디에서 흐를 수 있겠는가.

 이버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시간이 없는데 공간이 있을까? 있을 수 없다. 공간이란 어느 시간의 한정된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산이라면 조선시대의 남산인가, 일제시대의 남산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공간이 없고 , 공간이 없다면 시간 역시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일찍이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논리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한 덩어리'라고 봤는데, 이는 시간과 공간은 떼어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과학에서는 우주를 '시공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공산이 없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모두 없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이런 상태를 가정할 수 있는가? 잘 상상해보라. 아마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의식은 시공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공간이 없는 상태는 그저 말할 수 있어도 그 상태를 정확하게 그려볼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시공간이 없다는 가정을 해보는 것뿐이다. 구체적으로 그 상태를 명확히 상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시공간이 없는 상태를 태극이라 표현한다. 주역은 태극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처럼 태극은 말은 할 수는 있지만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려볼 수는 없는 것이다. 

- 전에 본 EBS 다큐프라임 [빛의 물리학]이 생각납니다. 책 내용이 그 때 다큐 내용이랑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p138

여기서 천지는 위치를 나타낸다. 정확하게는 미래와 과거를 나타내는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림은 시공 좌표를 나타내는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림은 시공 좌표를 나타낸 것이다. 좌표라는 단어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좌표는 위상공간을 일컫는 것인데, 사물을 보다 쉽게 이해하는 수단이다. 위 그림을 자세히 보면 천에도 음양이 있고, 지에도 음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역에서 음양을 효라고 하고, 천지로 표시된 시공좌표는 위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주역의 쾌상은 위와 효로 되어 있다는 의미다.

 

 

 

 

 

p149-150

오행은 음양이 팔괘로 진화하는 과정 중에 존재하는 것인데. 2차원 공간의 성질을 망라한 것이다. 2차원이라는 것은 평면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엣사람들은 세상을 평면으로 보았다. 그들은 지구가 둥근지 모르고 영우너히 하늘 아래에서 평평한 존재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동서남북 네방향만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4방 요소를 자기 자신이 있는 원점과 함꼐 5개 원소로 사용한 것이다. 평면이란 이렇게 4방 요소와 중앙 원점으로 이룩되어 있다.

 오행은 이렇게 2차원적으로 세상을 분석하는데, 주역의 팔괘는 3차원으로 되어 있다. 지구가 둥글고 공간이 3차원이기 때문이다. 오행은 2차원 공간요소, 즉 평면구조이고 팔괘는 3차원 공간으로서 입체구조를 갖고 있다. 평면과 입체, 이것이 오행과 팔괘의 차이다. 우리의 우주는 평면인가? 아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입체공간으로만 표시될 수 있다.

 

 

 

 p164

주역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주역에는 태극이 있으며, 태극은 음양을 낳고 , 음양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 "팔괘란 우주 만물을 뜻하며, 이것이 생기면 천지의 작용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팔괘는 시공 속에 존재함으로써 미래와 과거가 그 안에 담기게 된다. 주역은 이것을 추적하는 것이다.

 

 

 

p271-272

수지비는 개인적인 삶을 상징하는 쾌상이다. 본능에 따르고 가족에게만 뜻을 부여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정해진 자기 본능에 따라 일생을 살아가는데 , 이는 사는 게 아니다. 살아진다고 하는 것이다. 식물인간과도 같다. 모름지기 인생이란 향하는 바가 대자연의 큰 뜻과 합치해야 한다. 저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식물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라면 인생이 아깝다. 또한 나의 존재는 남에게 의미가 없게 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을 보라. 그들은 남에게 무엇인가 기여하며 살았던 것이다.

 예로부터 성인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날 것을 가르쳐왔다. 인간에게는 영성, 즉 천의 성품이 있으므로 이를 활용하여 새로움 , 자유로움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만 생각하는 존재, 본능대로만 사는 존재, 사적인 존재, 특별한 포부 없이 그냥 삶 자체를 즐기는 존재 등은 꼭 인간으로 태어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란 반드시 공적인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프로이드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번식과 양육만을 위한 것" 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가? 소크라테스도 번식과 양육만을 위해 살았던가? 공자의 일생은 자식을 낳고 기르기 위함이었던가? 나의 인생도 번식과 양육 외에 다른 뜻은 없었던가? 삶의 목표는 번식과 양육이 절대 아니다. 그 외에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감상:

내용 전개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좋은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겪어본 경험과 비교해보니 정말 맞는 말이 많습니다. 책을 가까이 두고 몇 회독을 더 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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