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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국과 일본,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 이야기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김윤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 :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지은이:
저자 무라야마 도시오(村山俊夫)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고 공부하는 일본인. 1953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74년 청춘의 고민을 안고 대학을 중퇴한 뒤 공장에 취업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고 주인공 김산에게 매료되어 한국과 한국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86년 말 서울로 어학연수를 와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고려대, 연세대 캠퍼스에서 한국어 공부에 몰두했다. 1988년 서울 시내의 일어 학원에서 강의를 하다가 한국인 아내를 만났다. 일본 귀국 후 안내원, 통역 등을 맡으며 수많은 한국인을 만났다. 2007년부터 교토에서 한국어학원 ‘녹두학원’을 운영 중이다. 한국의 국민배우 안성기의 평전 《청춘이 아니라도 좋다》를 비롯해 한국어 학습서 등을 다수 출간했으며, 최근 신경숙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번역 중이다. 한국인의 영혼을 가진 일본인으로 자부하며, 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의 탄생과 역사를 추적해 이 책을 집필했다.
역자 김윤희는 경희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번역 전문 에이전시 베네트랜스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최고의 멋진 인생을 사는 법》 《행복을 부르는 아침 30분 습관》 《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변한다》 《서른 살을 위한 인생 해석사전》 《나를 위해 살아도 괜찮아》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우리는 사랑의 힘을 믿습니다》 등이 있다.
출처: 교보문고
http://book.naver.com/product/go.nhn?bid=9411338&cpName=kyobo&url=http%3A%2F%2Fwww.kyobobook.co.kr%2Fcooper%2Fredirect_over.jsp%3FLINK%3DNVB%26next_url%3Dhttp%3A%2F%2Fwww.kyobobook.co.kr%2Fproduct%2FdetailViewKor.laf%3FmallGb%3DKOR%26ejkGb%3DKOR%26linkClass%3D%26barcode%3D9788950960865
내용: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2차 세계대전 후와 6.25전쟁 5.16쿠테타를 거치는 격동의 근현대사 시간 속의 한국과 일본에서 라면에 사활을 건 멋진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p007
수년간의 방황을 거쳐 그는 일본의 교토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그는 시내 중심가에서 작은 한국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학원 이름이 '녹두학원'이다. 일본 한복판에 웬 뜬금없는 '녹두'냐고 물었다. 계급질서를 넘어설 수 없었던 봉건제의 조선과 서양 제국주의 흉내를 내며 한반도를 침탈해오던 일본 사이에서 사회변혁의 꿈을 저버리지 않았던 녹두장군 전봉준을 존경해서라고 했다.
- 작가인 일본인 무라야마 도시오씨가 저보다 낫습니다. 부끄럽네요.
p032-033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야하라 사장의 속내가 궁금해진 오쿠이는 고개를 들어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바둑판으로 눈을 돌렸다. 러일전쟁에 참전한 이후 줄곧 군인생활을 했던 야하라 사장의 말투에는 , 옳고 그름의 역사적 심판을 떠나서, 근대 일본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최소한 자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떳떳한 대의명분을 갖고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을 테니까 자존심이 대단할듯 합니다. 단, 민간인 학살자나 전쟁범죄자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p051
이 '이승만 라인'을 침범하는 어선이나 순시선은 가차 없이 체포해버리는 바람에 수많은 억류자와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연히 일본의 언론은 분노로 들끓어올랐다. 패전의 좌절감과 열등의식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행동조차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입장은 이런 부분도 있었겠군요. 저는 과거 식민지 주제에 어디 감히하며 우리를 깔보는 의식에서 이라인에 대한 반발감을 갖었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런 부분도 있을 수 있었겠네요. 충분히 공감가는 부분입니다.
p069
전중윤이 지방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 유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학문을 익히는 등 촉망받으며 살아왔다 해도, 솔직히 식민지 시대의 아이들에게 있어 미래란 아무런 희망이 없는 , 그저 신기루처럼 막막한 것이었다.
부모님과 상의를 한 끝에 전중윤은 호사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체국 서무과에서 난생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상업학교인 5년제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2년 후에는 식민지 통치의 최고 기관인 조선총독부 체신국 보험과로 발령을 받는다. 이는 그가 훗날 1950년대 후반 동방생명이나 제일생명 등 한국 보험업계를 이끌어갈 경영 수업의 모태가 되었다.
-전중윤씨의 전반기 인생이 대충 그려지네요.
p089
1961년 5월 16일 새벽 , 김포 방면에 주둔해 있던 해병 제1여단을 중심으로 하는 , 약 4천여 명의 부대가 한강을 건너 수도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했다. 5.16군사정변의 개시였다.
그때 매스컴 앞에 나타나 것이 김종필이었다. 그는 '반공의 국시 강화', '미국과의 유대 강화 ', '사회 부패 일소 ', '민생고 해결', '국력 배양', '과업의 성취 후 군 복귀' 등 여섯 가지 항목을 내용으로 한 '혁명공약'을 낭독했다. 김종필은 박정희의 유능한 브레인으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이미 두각을 보이며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여 박정희 그룹을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데에 남다른 수완을 보였다.
-격변의 한국사입니다. 혁명공약이 정말 그대로 모두 빠짐없이 이행되었다면 참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p140
그저 오쿠이 머릿속에는 화창한 봄날, 공원 잔디밭에 온 가족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라면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붓고 있는 광경이 떠올라 입꼬리에 옅은 미소가 묻어났다.
다행히 연구진 가운데 전쟁 중에 군용식품 연구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구와바라 마사미치가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주었다.
-전후 일본인들은 군인 출신자들에 대해 믿음을 갖었다는게 글에서 느껴집니다. 현재 우리는 어떤가요? 저는 군인하면 방산비리와 폭탄주 , 강간범 고위직 군인들이 생각납니다. 북의 위협속에 전역을 미루겠다는 우리 젊은 청년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고요.
P167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이 연거푸 좌절된 원인 중 하나는 일본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었다. 1953년 제3차 회담에서 일본 측 수석대표인 구보타 간이치가 회담 중에 "일본은 식민지 통치 기간 동안 한국에 철도와 항구를 지어주고 농지를 조성하는 등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었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망언도 이쯤되면 참 뿌리 깊네요. 많은 사람이 있고 그만큼 많은 의견과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의 언행은 신중해야 하는데 이쯤되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격이 정말 이런 걸까 싶기도 하지만 그러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P225-226
"두 라인에 2만 7천 달러? 기술료는 무료라고요? 그럼 로열티는...."
"그런 것도 필요 없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한국전쟁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고통과 슬픔을 주었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일본은 패전 후의 극도로 악화된 경제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한국 특수가 우리 일본에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고 , 일본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에서 보면 이 정도는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사장,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미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입니다. 우리 함께 시작합시다! 힘이 닿는 데까지 제가 돕겠습니다.
-관용이란 진정한 강자만이 베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p251
'라면왕'이라 불리는 닛신식품 창업주 안도 모모후쿠(1910-2007)의 발명품 라면이 일본에서 대한해협을 건너 1963년9눨15일 한반도에 상륙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묘조 식품은 후에 닛신 식품의 자회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p253
그러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4.1개로 일본(43개)이나 중국(33개)을 압도한다. 통계 발표 이래로 한국은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이게 마냥 좋아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감상:
일본인이 우리에게 선의를 갖고 라면을 전해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선의를 잊거나 변질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격동의 삶을 살아낸 우리조국 대한민국과 꿀꿀이죽을 감사히 먹으며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것 저것 많은 생각을 했지만 가장 간절한 것은 라면 한그릇 먹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