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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악플러 ㅣ 콩고물 문고 3
김혜영 지음, 이다연 그림 / 스푼북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정의의 악플러
지은이:
저자 김혜영은 어릴 때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한때, 영화 시나리오도 썼고 그림책도 썼지만 동화를 쓰는 게 제일 재미있습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도서관에 가서 멍하니 공상에 잠길 때가 많습니다.《우리 집에 외계인이 산다》로 제3회 살림어린이 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린이 이다연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그림을 그린다.’가 좌우명입니다.
출처:교보문고
http://book.naver.com/product/go.nhn?bid=8995246&cpName=kyobo&url=http%3A%2F%2Fwww.kyobobook.co.kr%2Fcooper%2Fredirect_over.jsp%3FLINK%3DNVB%26next_url%3Dhttp%3A%2F%2Fwww.kyobobook.co.kr%2Fproduct%2FdetailViewKor.laf%3FmallGb%3DKOR%26ejkGb%3DKOR%26linkClass%3D%26barcode%3D9791156550129
내용:
이야기는 특이하게 작가의 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열쇠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를 해주시고 나서 현재 이야기의 주인공 6학년 남자아이인 준하가 사람의 마음을 알수 있는 열쇠를 갖게되는 사건을 시작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준하네는 엄마가 미술학원을 하시지만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입니다. 미술학원 임대료를 제 때 내지 못해 엄마가 화장실에 숨어야 될 정도지요. 준하에게는 8살 어린 여동생이 있는데 준하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유치원에서 동생을 데려오는 길에 동생과 비눗방울 놀이를 해줄 정도로 착한 오빠이기도 합니다.
준하는 우연히 열쇠의 사용법을 알게 되고 난폭한 영운의 어린 시절 비밀을 정의의 악플러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퍼뜨리게 됩니다. 그 후 같은 반 다희의 마음도 알게 되고, 여동생 친구의 숨겨진 엄마인 여자탈랜트의 비밀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열쇠로 부터 얻게 되는 이 비밀로 인해 준하는 힘든 일을 겪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알수 있는 열쇠를 통해 주인공 준하가 인터넷에 그 비밀을 이용해 악플을 달게 되고 결국은 그로 인해 준하 자신도 고통을 받게 되지만 용기를 내어 이겨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P30
그런데 영운이 눈을 똑바로 마주한 순간, 준하는 가슴 한가운데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얼음에 닿은 것 같은 선명한 느낌에 깜짝 놀랐다. 손을 가슴에 대자 목걸이에 걸린 열쇠가 만져졌다.
몸이 얼 것같이 차갑다고 생각한 순간 준하는 낯선 복도에 서 있었다. 복도를 채운 서늘한 안개가 팔에 닿아 으스스했다. 준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주변을 살폈다.
준하 앞에는 문이 있었다. 손잡이를 돌려 봤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여보세요! 저는 윤준하예요. 문 좀 열어 주세요."
한참을 두드려도 문 저쪽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차갑고 축축한 안개가 점점 살갗에 스며들었다. 마치 냉장고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아니,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준하는 기분 나쁜 냉기를 막아 보려고 팔짱을 끼다 목에 걸려 있던 열쇠를 만졌다. 문득 이 복도로 오기 직전에 느꼈던 열쇠의 감촉이 되살아났다.준하는 열쇠로 문을 열어 보았다.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렇게 해서 준하는 열쇠의 사용법을 알게 되고 거기서 영운이의 아픈 기억을 보게 됩니다. 이야기가 자칫 무거워질 수 있어 흥미를 떨어 뜨릴 수도 있는데 이야기 시작 부분부터 뒤가 궁금해지게 만들어 주십니다.
P59
문득 영운이에게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대면이 아닌 온라인상의 대결. 준하는 학교 게시판에 들어가 '우리들 이야기'를 클릭했다. 그리고 글을 작성했다.
김영운은 어릴 때 말을 너무 더듬어서 언어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사실 지금도 말을 더듬는다. 늘 짧은 단어로만 이야기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가 말더듬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으면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두른다. 그러니까 조심하시라. 절대 그가 말더듬이라는 사실을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 사실을 꼭 전해다. 더이상의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정의의 악플러
쓰다 보니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좀 꾸며 쓰긴 했다. 하지만 읽어 보니 제법 그럴 듯하게 느껴졌다.
- 비극의 시작입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준하는 스스로도 불행해지는 길을 가게 됩니다.
P87
문장 하나하나는 이미 말이 아니었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칼 혹은 총이었다. 이만하면 다희를 쓰러뜨리기에 충분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까지 준하는 정신없이 흉기를 휘둘렀다.
- 김희선씨가 지은 [라면의 황제 ]라는 단편 소설집 중에서 [교육의 탄생]은 천재소년이 나사에 가서 배운 기술로 만든 국민교육헌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말의 힘으로 사람을 세뇌시킨다는 소설 입니다. 그 소설이 말도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듯 하기도 한 것 같이 느껴지는게 말 한마디로 인해서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봤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말은 정말 그만큼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 결과를 중시할 것이냐 아니면 과정을 중시할 것이냐의 문제는 항상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저는 과정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마이클 샌던의 [정의란 무엇인가?]중의 한 구절입니다.
p151
행복극대화의 문제점
칸트는 공리주의를 거부한다. 공리주의는 권리를 따질 때도 최대 행복에 기여하는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는 탓에 권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연히 생기는 욕구에서 도덕 원칙을 끌어내려 함으로써 도덕을 생각하는 방식부터 그르친다. 많은 사람에게 쾌락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옳다고 할수는 없다. 다수가 특정 법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법을 정당하다고 할 수도 없다.
P142
배우 한연우 씨가 오늘 오후 1시15분경에 숨을 거뒀습니다. 한연우 씨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실로 옮겨졌다가 갑작스런 감염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가락으로 자판 몇번 두들겼을 뿐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결과 사람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말이라는 건 참 무서운 것입니다. 눈이 두개인 것은 잘 보라고, 귀가 두개인 것은 잘 들으라고, 입이 하나 인것은 말조심 하라는 뜻이라더군요.
감상:
얼마전 이순영이라는 학생이 지은 [솔로강아지]라는 책이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저도 출판사로부터 그 시집을 받아 후기를 작성 했었습니다. 사람들의 댓글이 대단하더군요. 글에서 살기마저 느껴졌습니다. 평상시 살면서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대화하시지는 않을 텐데...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댓글을 다십니다.
2014년 10월, 이문열 작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문열 작가님 하시는 말씀이 본인은 SNS를 하지 않기로 하셨다 하시더군요.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하고 있는데 다음 질문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SNS에서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가 힘들어 SNS를 하지 않기로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동시집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느정도는 이해가 갔습니다.
2013년11월 , 마누엘 푸익(uan Manuel Puig Delledonne)의 거미여인의 키스 (Kiss Of The Spider Woman)]를 읽고 정리 해두었던 글인데 [정의의 악플러]를 보며 생각나서 여기 다시 옮겨봤습니다. 누군가에게 비난을 하거나 반대의견을 주장하기 전에 저 스스로 다시 한번 보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체게바라옹의 조국 아르헨티나.독재정권 하의 어느 감방.
마르크스주의자와 동성애자가 밀폐된 공간에서 만났습니다.
두 인물은 상당히 극적으로 대립되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이성애자VS동성애자 / 사상범VS성범죄자 / 낭만주의자VS냉소주의자 )
결국 이 이야기의 끝은 사랑이 승리합니다.사랑의 형태를 어디까지 확장해서 볼것이냐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성애자이며 가부장적 사회관습에 절어있는 제가 보기에는 맑시스트인 발렌틴과 몰리나의 사랑이 불편합니다.
2천년전 [향연]이라는 글에서는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완전한 존재인 남성이 남성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이죠.
그 시대에는 이런 생각이 극히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향연]은 쓰레기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진보란 좀더 나은 가치,이상 및 체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는 것은 자신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 밖에는 없다 라고 말했다죠.
소크라테스가 아무것도 아는게 없는 바보라는데 동의하실 분은 없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대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요.
본인이 살고 있는 시대의 가치와 체제가 절대 이상향일 수는 없다는 것을요.
2000년 후에 자신들의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나 노예제도가 죄악으로 간주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 우리의 기본적 체제인 자본독재주의, 동성애자에 대한 거부가 시간이 흘러 새로운 문학, 사상,철학이 등장해서 새로운 인문학이 인류 정신세계를 끌고 나가게 될때도 기본 체제로써 유지되고 존중될 수 있을까요?
아마 없을 거라 봅니다.
어쩌면 형편없는 야만의 흔적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겠죠.

"너는 이런 특별한 열쇠가 있으면 무슨 일을 하고 싶니?
"할게 없는데요."
"남의 마음을 알아보는 일을 할 수 있잖니'"
"그냥 물어보면 되는데 뭐하러 귀찮게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