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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평점 :
8년의 동행 / 미치 앨봄
“명심하게, marital과 martial은 ‘i' 하나 차이야(marital은 결혼의 결혼 생활의 라는 뜻이고, maritial은 전쟁의 호전적인 이라는 뜻-옮긴이).”
신을 믿지 않아서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 종교를 원치 않아서 종교가 없는 무교인. 차이점은 아주 작지만, 그 차이점으로 벌어지는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떤 말을 해도 설득할 수가 없지만, 종교를 원치 않는 사람은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언젠가는 스스로 신에 대한 신앙을 키워갈 수 있을 확률이 높다.
종교를 원치 않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유대교를 믿었건만 마음을 붙이지 못해 자신의 종교임에도 30이 넘을 때까지 쳐다도 보지 않던 미치 앨봄의 종교 실화를 읽게 된 것도 다 신이 있다고는 믿지만 종교를 원하지 않는 나를 위해서 신이 의도한 뜻이었을까? 마치, 렙의 선택으로 미치 앨봄이 추도사를 쓰면서 자신의 종교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처럼.
내가 종교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어느 종교를 믿던지 간에 종교인들의 거대한 치맛바람이 나를 시들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신이 위대하고, 당연한 것을 강요하는 행동들이 너무 싫었다. 종교를 너무 믿고 싶은데, 내 마음이 행동과 일치되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마음이 몸과 하나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변명하면 내가 나중에 믿게 될 그 신께서는 나를 믿어줄까?
게다가 현재는 성경 한 권을 가지고도 참 많은 종교들이 나뉘어서 서로의 종교가 맞다고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 그 현상이 과연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올만한 상황인지 난 참 궁금하다.
내가 물었다. 한 종교의 성직자로서 어떻게 그렇게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으세요?
“나는 내가 무엇을 믿는지 아네. 그건 내 영혼이 믿는 바이기도 하지. 하지만 난 늘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해.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믿어야 하지만, 자신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야.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을 믿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224-225쪽)
종교인 중에는 자신이 엄청나게 많은 걸 알고 있고,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딱 한 마디 하고 싶다. 당신은 과연 진실된 종교인인가? 몸과 마음이 하나로 합치되어 살아가고 있는가? 그대의 신에게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노력이나 하는가?
랩과 같은 분이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미치 앨봄에게 했던 것처럼 언젠가 나에게 추도사를 부탁한다면? (이런 분이 내 앞에 나타나는 일은, 내가 어쩌다 이 책을 읽게된 것만큼이나 낮은 확률을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아마도 미치 앨봄과 똑같은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신앙이란 결코 어떤 결론을 내리는 일이 아님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부하고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임을, 하나님을 상자 하나 안에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야기와 전통과 지혜로운 깨달음을 모으고 또 모을 수는 있다. 그러면, 때가 되면, 굳이 애써 다가갈 필요가 없다. 이미 어느새 하나님은 당신 옆에 와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341쪽)
종교를 믿진 않지만, 전공 공부를 하다보니- 어찌어찌 하다보니 기회가 닿아서 띄엄띄엄 성경공부를 하게 된다. 종교를 믿지 않게 되버려서 성경의 어떤 부분은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 흥미를 느끼고 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합쳐져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더욱 신뢰가 가는 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위에 미치 앨봄의 말과 같이 무언가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열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내 이런 행동이 어리석은 종교인의 행동보다 낫다고 믿는다.
“들어 줄 존재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내 목소리를 듣고 대답해주지 않는다고 믿는 게 훨씬 더 위안이 되지.”(119쪽)
라는 생각이 들 때면 갑자기 엄청난 독실함이 생기길 간절하게 원한 적도 있다. 나도 손 모으고 누군가를 외치면서 기대고 싶고, 그를 위해서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내 안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이 증거하고 있다.
미치 앨봄과 앨버트 루이스(렙)의 이야기 말고도 헨리 코빙턴 목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건 렙과 같은 사람이었다. 비록 둘은 종교는 다르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의 신을 진심을 다해 믿고 있는 건 같았다.
작가는 앨버트와 헨리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면서 해주었지만, 내가 발췌한 부분들이 모두 렙과 관련된 이유는-굳이 이유를 대자면-여기서 앨버트와 헨리는 종교만 다를 뿐 자신의 신에게 사랑받는 이였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앨버트와 미치의 이야기에는 미치의 깨달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완성된 추도사는, 작가가 8년동안 렙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추도사를 쓰기 위해 객관적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주고, 생각도 바뀌고, 그의 진심을 알려고 노력했던 관계가 물씬 풍겼다.
누군가를 통해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추도사를 들려주기 위해서 였다기보다는, 종교에 대한 틀에 박힌 생각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가하기 위한 작가의 땀이었음을 마지막 장을 읽으며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