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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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적인 판단력과 합리적인 사고로 인지되는 세계만이 현실이라면, 비합리적인 관념으로만 감지되는 세계는 없는 것인가? 마쓰다는 그곳이야말로 영혼의 거처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혼이란 마치 한 편의 이야기나 음악, 흑은 살아 있는 인간의 의식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 속에서만 발현되는 무언가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듯 영혼과 교감할 수 있지 않을까?(121쪽)

여성 잡지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마쓰다는 1월 호에 실릴 특집으로 심령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 독자들의 제보 중에서 시모키타자와 3호 열차 건널목에서 촬영된 흐릿한 여성 사진을 선택한다. 취재 중 그곳에서 1년 전 살인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여성이 사진 속에 찍힌 동일 인물임을 확인 후 조사를 시작한다.

날짜 : 1993년 12월 6일
시간 : 오전 1시 3분
장소 : 도쿄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
신원 : 불명
사건 : 말단 야쿠자가 호스티스 여성을 살해함

사람이 죽었지만 이름도 주소도 가족도 친구도 알 수 없는 신원 불명의 시체만 남았다. 여자를 추적하면서 유흥가의 조직폭력배와 부패 정치인과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풀면서 사건은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심령사진 속 여자의 신상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무섭기보다는 슬펐다. 한 여자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잔인했는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으면서 웃는 법을 알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과장된 거짓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너무 가여웠다.

소설 마지막에 마쓰다가 죽은 여자가 칼에 찔리고서도 3호 건널목 앞까지 피를 흘리며 갔던 이유를 알았을 때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의 간절함이 그녀를 그곳으로 가게 만들었구나. 나도 마쓰다처럼 그 바람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빌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마쓰다는 기자의 냉철함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위로가 되었다. 억울하게 죽은 여자의 한도 조금은 풀어졌으리라. 세상에 억울한 죽음은 없었으면 좋겠다. 소설에만 존재하는 이야기이길...


● 저 비탈길을 매일 오가며 계속 일했을 그 어머니는 아이들에 게 종이접기를 가르쳐 주면서 어렸을 적 딸과 함께했던 추억 속에 잠겨 있었으리라. 그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홀로 시름하는 현재와 그리운 과거 사이에서 늙어 가는 것 말고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뒤 인간은 무얼 의지하여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지금도 마쓰다는 알지 못했다.(321쪽)


● 이제 건널목은 오로지 조용해졌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쓰다는 또다시 홀로 이 세계에 남겨졌다(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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