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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1 ㅣ 아르테 오리지널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평점 :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한 여인의 뒷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연약해 보이지 않았고 당당해 보이는 귀품 있는 모습에 어떤 사연을 가졌을까 궁금해졌다.
‘가슴에 품은 유일한 꿈은 방안에 여유롭게 앉아 10년을 글을 쓰며, 100가지의 사랑 이야기와 1,000년의 역사를 독자에 마음에 전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름이 특이했다. 본명이 아닌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처처칭한은 당나라 시인 한악(韓?)의 시 한식야(寒食夜)에 나오는 첫 구절로 ‘스산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그녀는 추리소설의 광팬이라고 한다. 10여 편의 장편소설을 집필했고 그중에서 유일한 추리소설이 ≪잠중록≫이다. 독자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책이기도 하다. 추리와 로맨스, 역사의 세 가지 요소가 잘 버무려져서 재미있는 책으로 탄생했다. 총 4권의 책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현재 1권과 2권만 출간된 상태다. 빠른 시간 내에 3,4권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황재하는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촉 지방 형부 시랑의 아버지를 따라서 살인사건을 해결할 정도로 총명하고 영특한 소녀였다. 열일곱 살 때 가족을 독살했다는 누명을 쓰고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장안으로 몸을 숨겨 들어와 우연히 황제의 넷째 동생 기왕 이서백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녀는 자신의 누명을 벗고 가족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서백은 명석하고 냉철한 인물이다 부탁이나 인정의 호소에 그녀를 믿어줄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여인의 몸으로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진솔한 모습에 결국 열흘이라는 시간을 준다. 조건은 몇 달 전부터 장안에서 발생한‘사방안’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온 비밀 편지의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1권에서는 기왕을 모시는 환관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황재하를 만나게 된다.
황재하는 손을 들어 머리를 틀어 올린 나무 비녀를 뽑아 들었다. 비녀가 뽑히는 순간 칠흑같이 까만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아직 살짝 젖어 있던 머리카락이 마치 연못 속 물풀처럼 황재하의 창백한 얼굴에 달라붙었다.(p56)
그녀는 사건을 추리하거나 생각을 정리할 때 특이한 버릇이 있다. 머리에 꽂은 비녀를 빼서 벽이나 탁자에 생각을 끼적이는 것이다. 마차 안, 이서백과 첫 만남에서 습관처럼 자신도 모르게 비녀를 뽑아들었다가 긴 머리가 흘러내렸다. 드라마라면 정말 예쁜 장면이 될 것 같다.(실제로 2019년 중국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한다.) 차갑고, 이성적인 이서백일지라도 심쿵 했으리라. 이런 맛에 로맨스 소설을 읽는 거지!
천천히 문을 스치는 바람이 궁등을 흔들어 불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바람 불어와 봄날 등불 어두워지고, 비 내려 세월은 상처 입는다.(p204)
가슴에 와닿는 절절한 문장들이 곳곳에 담겨있다. 그중에서도 위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짠하고 아팠다. 황재하가 처한 힘든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다. 언젠가 바라는 바를 다 이루더라도 가족을 잃은 아픔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테니까.
문득 이서백은 텅 빈 하늘 같던 자신의 인생에 어느샌가 새하얀 구름이 덧칠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5월의 맑게 갠 하늘처럼 맑은 소녀가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이서백의 운명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서로 대립해도 좋았고, 얽히는 것도 좋았다. 그렇지만 이서백의 인생에서는 역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가며 서로를 잊는 게 제일 좋으리라.(p293)
이서백이 황재하에게 끌리는 장면을 텅 빈 하늘에서 새하얀 구름이 덧칠됐다는 묘사는 참 예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운명에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는 그 마음도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부디 용기를 내어주길 응원해 본다.
소설을 읽을 때 상상을 하며 읽는 것을 좋아하다. 이 책은 상상화를 다 그리지도 못한 채 두 눈이 그다음 글을 읽어버렸다. 한번 몰입하면 끊을 수가 없다. 화장실 가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책 분량이 500 페이지에 달하지만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읽힌다. 1,000 페이지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재미있으니까. 두말하면 잔소리, 말하면 입 아프다. 일단 첫 페이지, 첫 줄부터 읽어보자.
구성이 잘 짜여 있고 이야기 연결도 자연스럽고 논리적이다. 남장 여인이 추리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재미있고, 두 남녀 주인공이 티격티격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도 설렌다. 2권에서는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전개가 될지 궁금해진다. 또, 황재하는 어떤 방법으로 누명을 벗고 가족을 죽인 범인을 찾을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