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명실상부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긴 해도 현재에 이르러 애거서 크리스티는 과소평가된 부분이 있다. 이해는 간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은 코난 도일의 것처럼 괴팍하고 뛰어나지만 그보단 정중하며 앨러리 퀸처럼 복잡한 트릭을 사용하지 않는다. 에드거 앨런 포만큼 공포스럽거나 음울하지 않으며 반 다인처럼 자신의 교양과 지식을 드러내는 타입도 아니다. 모리스 르블랑처럼 화려한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며 존 딕슨 카가 그러했듯 기과한 사건을 다루지도 않는다. 추리소설 계에 드문 여류소설가임에도 각별히 -이른바- 여성적인 시각으로 글을 쓰는 타입도 아니다. 에르큘 포와로 탐정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비非 영미권 출신이라는 특성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신뢰보다는 불신과 의아함을 품게 하며 마플 여사는 안락의자에 앉아 사건을 해결하는 카우치형 탐정인 할머니다. 거기에 사건의 주무대가 저택이라던가 선상, 별장 등이며 대개는 계층보다는 계급별로 나뉜 인물에 대해 다루기 있기 때문에 현재의 시각으로는 그야말로 고루하고 케케묵은 소설로 읽히기 쉽다. 때문에 혹자는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제인 오스틴 소설'이라거나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라는 식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모두 이해할만한 반박이고 어느 부분에선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애거서 크리스티를 경애하고 지지해왔다고 말한다면 '왜'냐고 물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여 내게는 몇 개의 리스트가 있다. 우선 첫만남에 기선 제압(?)을 하기엔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만한게 없다. 화려하면서도 연극적이고 동시에 반전이 대단하다. 스포일러를 밟지 않았다면 이 글을 읽고 당신은 아마 반드시 놀라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ABC 살인사건』이 있다. old but gold라고 하지 않던가. 클래식은 클래식이다. 이 세 권은 언제나 실패하지 않았다. 반전이 중요한, 스릴러적 요소를 중요시한다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누명』, 『장례식을 마치고』등이 준비되어 있다. 블록버스터식 스케일을 읽고 싶다면 『빅 포』가 포와로 탐정을 사랑하게 된 이에게는 『커튼』을 슬쩍 놓고 간다. 코지 미스터리처럼 소소하고 일상적인, 잔인하지 않은 이야기가 끌린다면 『다섯 마리 아기 돼지』와 『코끼리는 기억한다』에 만족할지 모른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 당신에게 만약 클래식이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이 이미 크리스티의 영향권 아래 있기 떄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의 시각으로 소급해서 바라보면 안 된다. 이미 수많은 책과 영화가 이 소설들의 모티프나 트릭 등을 따왔기 때문에 당신에겐 '생각보단 심심하거나 뻔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그건 그만큼 크리스티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지 그녀의 것이 각별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예를 들어 거의 모든 장르 영화는 히치콕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이제는 히치콕이 조금은 평범해보이는 마법처럼 말이다). 그리고 당신은 한 번 더 묻는다. 그럼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점은 다양함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살아 생전 대략 100권의 책을 쓴 작가다. 게다가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글을 썼으니 그녀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변화만큼 책이 가진 성격 역시 바뀔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녀의 다양성 역시 장점이 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진짜 정수는 바로 이런 소설들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비뚤어진 집』,『끝없는 밤』그리고『봄에 나는 없었다』와 같은 글 말이다. 


앞선 두 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 이름으로 발표된 본격 추리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고 『봄에 나는 없었다』는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책으로 한 사람의 심리를 집요하게 써내려간 마치 에세이같은 서스펜스물이다. 앞선 두 글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인간이라는 우물을 가만히 관찰하는 것처럼 한 사람에게 다가간다. 호들갑스러운 살인사건이나 마루바닥을 적시는 흥건한 피나 잔인한 살인수법, 기묘한 트릭이나 수상한 용의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이상하고 불안한, 불온하고 기묘한 사람과 그것에 조금씩 숨통이 조여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이유를 모르고 손톱을 까득까득 깨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지막 순간 맥이 탁 풀리면서 어디선가 차갑고 무기질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 즉 보편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한순간 멍해진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글을 읽고 나면 범죄나 잔인한 수법이나 사람의 잔인성에 놀라기보단 그저 사람이라는게 이토록 무섭고 무겁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아름답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조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잉여의 시간동안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 즉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하게 된다. 다정하고 온순한 남편,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아름답게 나이들어가는 자기 자신. 그녀는 자기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몇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은 잘 해결될거라 믿는 낙천주의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남편도 아이들도 없는 그 시간, 읽을 책도 없고 특별히 해야 하는 일도 없는 여행의 시간에 조앤은 자신이 믿고 있던 것들이 실은 기만이나 위선으로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음을, 자신이 얼마나 가혹하고 못된 사람인지를 자각하게 된다. 


“엄마는 아빠가 사무실에서 노예처럼 일만 하게 내버려뒀어요. 뻔히 알았으면서도요. 아빠는 오랫동안 일을 너무 많이 하셨다고요.”

“나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니?”

“진작 거기서 아빠를 빼냈어야죠. 아빠가 그 일을 싫어하는 걸 모르셨어요?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이제 그만해라, 토니. 당연히 나는 네 아빠를 잘 알아. 너보다 훨씬 많이 안다.”

“글쎄요, 아닌 것 같은데요. 가끔 난 엄마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로드니는 성급하게 대꾸했다. “지금 그는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야. 조앤, 사랑에 대해 그렇게 아무것도 몰라?”

이렇게 이상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 있을까! 그녀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그건 사랑 아니에요. 난 이런 말을 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그러자 로드니는 아주 뜻밖에도 조앤에게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불쌍한 우리 조앤.“ 그러더니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조용히 나갔다.


“이제 특별히 한마디만 더 하겠다. 나태한 사고는 금물이야, 조앤!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해도, 또 그게 고통을 면하는 길이라 해도 그래선 안 돼! 인생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 돼!”


수없이 반추되는 기억들을 곱씹으며 그녀는 자신의 이기적임과 저열함과 속물근성을 깨닫고 몸소리치며 참회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녀의 이타심과 관대함과 공명정대함은 사라지고 그녀는 다시끔 보통의, 원래의 그녀로 돌아온다. 이제 독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는 그녀를 쉽게 비난한다. 그녀 자신이 느낀 자신의 부족함, 저열함, 비겁함과 졸렬함, 이기심 등에 같이 혀를 찬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녀를 한심하게도 바라보면서 사람이란 이토록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인간은 그리 많은 변화나 변혁을 하지 않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변화에 대한 글이 각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조앤 주변의 인물들을 동정하거나 연민해도 된다. 그렇게 제 3자가 되어 누군가를 쉽게 비난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가 만약 타인의 것이라면, 오롯이 순수하게 타인의 것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의 이야기고 또 다른 당신의 것이고 내 것이라면. 진짜 이야기가 되는 시간은 너의 이야기가 내 것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애거서 크리스티는 마지막 단락을 넣음으로써 이 이야기가, 이 저열함과 비겁함과 이기심이 오롯이 조앤의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조앤과 로드니와 에이버릴, 바버라을 비롯해 종국에는 우리 모두를 끌어들인다. 어둠 속에서 앉아 쉽게 타인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마치 제 것이 아닌 것처럼 킬킬대고 고고한 척 하던 우리에게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돌아서며 조명이 떨어진다. 


나는 조앤과 같은 사람이 아닌가. 정말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함부로 타인의 안위와 행과 불행을 단정짓고 값싼 연민과 자기 변호, 자기 연민과 합리화 등으로 나이테를 만들고 사는 이가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봄에 없었던 것만은 조앤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모든 계절에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렇게 조앤을 향한 거부감을 우리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 혐오감은 섬뜩함을 선사한다. 그것도 아주 점잖은 방식으로 말이다. 바로 이게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그녀의 저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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