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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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분을 느끼는 날이 있다. 남들은 아이를 낳고 결혼을 약속하는데. 나는 무얼 하고 있나. 바로 전 날까지도 바쁘게,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열심히 걸어온 시간이었는데 대뜸 친구의 반가운 소식 앞에서 괜히 마음이 흐려졌다. 최선을 다해 아쉬워하고 반가워하며 축하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더 깊은 마음, 좀 더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타인의 삶과 나의 것을 비교하지 말자고 늘 읊조려왔건만.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산을 등반하는 것을 보면서 아, 벌써 저기까지 가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며 샘을 내다니. 심지어 그건 내 길도 아니었는데. 내가 가고자 하는 산도 아니었건만. 스스로를 꾸짖었고 친구에게 속으로 사과했다.

 

솔직히 말해 잠정적 비혼주의자를 결심한 나에게 결혼이나 출산은 부러워할 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찌됐던 그들이 사회적인 의미에서 주류에 합류한다는 것, 나와는 다른 삶을 영유하게 될테고 그 삶이 다수에게 인정받은, 설명이 필요없는 성질의 것이 된다는 것, 그 태평함이 부러울 뿐이다. 아니, 요즈음엔 그보다도 더, 분기점을 지나고 일종의 이정표를 꽂는 것, 거칠게 표현하자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가시적인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이 부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대학, 취업, 결혼, 출산 등으로 삶이라는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 꽂을 수 있는 몇 개의 뚜렷한 깃발을 얻는 것. 자신이 성실하게, 나쁘지 않게, 혹은 평범하게 살아왔음에 안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상징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자신이 상처 입었을 때 새삼 깨닫게 된다.

 

주말에는 가능한 한 나 자신을 위해 보낸다. 할 수 있는만큼 게으름을 보내고 주중에 못본 영화를 보고 아침 일찍부터 빨래를 해서 널고 방청소를 하고 침대 위에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다. 마스다 미리의 단순한 펜선, 일견 가벼운 이야기 속에서 책장을 넘기다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가끔은 답변도 한다.

 

젊은 사람에게 ‘젊음’의 우월감을 안겨주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젊었을 때 그렇게 대해주면 기뻤으니까. 누군가 젊음을 부러워해주는 건 기쁘다. 자신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래서 사실은 특별히 부럽지도 않지만 젊은 사람에 대한 서비스. 나는, 젊은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좋다.

 

자신의 마음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상담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옅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것이다. 계속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리고 계속 그렇게 해왔던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세상살이의 능숙함과 뻔뻔함을 때로는 분리시키고 가끔은 낡고 무거워진 질문을 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위로 아닌 위로를 던지기도 한다. 아아, 어른이 되는 건 보기에 따라 더 강해지거나 때로는 더 무심해지는 일의 ‘결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선 ‘그게 나쁜 걸까? 나는 지금 나쁜 행동을 하는건가?’ 라고 묻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것을 마스다 미리는 주지시킨다.

 

맞아, 떨어진 물건을 줍는 것, 잘못 받은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건 내 자신이 특별히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좋은 사람인 척 하고 싶지 않다. 좋은 사람이라는 오해도 받고 싶지 않다. 다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을 뿐이다. 혹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노력마저 없애고 싶지 않거나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묻는 번거로울 만큼의 성실함을 잃지 않고 싶다.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다른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좋다. 일기도 계속 쓰지 못하고 복어도 먹지 못했지만 나라서 좋다. 나도 나쁘지 않다(문장을 잇기 위해 몇 개의 조사와 어미를 살짝 바꿨다). 몇 년 전 그 해의 마지막 날, 그런 일기를 썼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길 희망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계속해서 나겠지. 겨우 나이거나 고작 나이거나 가쁘게 나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꿈꾸지 않는 것, 그게 나라는 비관주의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여전히 바보같은 선택을 반복하고 때로는 철없는 생각을 곱씹고 아직도 누군가의 행복을 온전히 빌어주기엔 스스로가 부족할 때가 가끔 있지만 마스다 미리의 만화 속 대사처럼 아마 그게 나란 사람일테지. 나이를 먹으면서 갖는 가장 큰, 버릴 수 없는 장점은 내 자신에 대해서 단 한 가지라도 더, 냉정하고 정확하게 알게 된다는 점인 것 같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사람은 많지만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단순하게 하는 사람은 몇 없다. 그러면서도 무례하거나 냉혹하거나 지나치게 이상적이지도 않다. 책을 덮으면서 좋은 친구,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느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 드문 경우가 마스다 미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사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동지의식, 동료애, 어쩌면 그런 것들에 배가 부르다.

 

친구에게 다시 한 번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아무 사심이나 불안감 없는 순도 백퍼센트의 진심이었다. 다만, 그 날은 아주 예쁜 옷과 귀걸이를 골라야겠다고, 드물게 높은 구두를 신어볼까 생각한다. 이렇게라도 나는 나도 아주 잘못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무의식중으로 겉으로나마 조금은 증명하고 싶어한다. 아직, 그 정도까지는 속물이다. 뭐, 그것도 괜찮지 않은가. 마스다 미리가 말했듯, 나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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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0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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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9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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