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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딸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조지핀 테이 지음, 권도희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평점 :
조세핀 테이의 대표작을 이제야 읽었다. 사실 이전에 시도한 적이 있으나 영국 왕조에 대한 지식 부족(튜더왕조부터는 한결 수월한데... 요크인지 랭커스터인지 빨간 장미, 하얀 장미 다 저리가... 영국왕조 따위 알게 뭐냐......)과 가계도를 읽는 게 상당히 헷갈려서 초반부에서 흥미를 잃어버렸다. 한 번 포기한 책은 이상하게 끝을 못 낸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를 벗어나고자 다시 시도한 이번엔 -놀랍게도- 무리없이 끝까지 잘 읽었다.
주인공 그랜트 경위는 현재 부상으로 입원 중이다. 무료해하는 그에게 친분이 있는 여배우 마르타가 찾아와 사진을 몇 장 건네주는데 그 중에서 한 남자의 사진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이 시작이다. 그랜트는 스스로가 나쁘지 않은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형사의) 직업적인 것이든 타고난 것이든 범인犯人과 범인凡人을 구분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사진 속 남자는 그랜트가 들어온 이야기 속의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랜트는 주변인들에게 그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냐 묻는다. 그랜트의 담당의사는 소아마비 환자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놓았고 꼬마라는 간호사는 간이 좋지 않은 인상이라 했으며 수간호사는 그게 어떤 종류이든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부하직원 경사에게 만약 이 사람이 법정에 선다면 어느 쪽에 설 것 같냐고 묻자 그는 판사석이라 말한다. 사실 그랜트 역시 맨 처음엔 그를 악명 높은 검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 속 남자는 조카들을 성에 가두고 죽였다고 알려진, 악독하고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는 리처드 3세였다.
거동이 불편한 그랜트에게 리처드 3세는 현재 가장 큰 의구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모든 사람들이 리처드 3세의 이야기를 알고 있으나 그 중 과연 몇이나 사실일까. 다소 터무니없는 소문은 누구에 의해 어떤 식으로 조명되었나. 그랜트의 주변인들은 그의 부탁대로 교과서, 가장 유명한 역사책, 리처드 3세의 어머니에 대한 소설 등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나마 있는 자료들은 한 인물에서 대해서 면밀히 파악하기엔 너무나 적고 좁은 정보였고 결정적으로 토마스 모어가 쓴 글을 읽으며 리처드 3세는 간과하고 있던 신빙성의 문제에 대해 직면한다. 리처드 3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토마스 모어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그가 죽은 해에도 겨우 8살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모어가 쓴 글은 어쩌면 당시에 떠도는 소문을 엮어놓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으며 보다 결정적으로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 시대, 그러니까 튜더 왕조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러니 그에게 객관성을 기대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심지어 홀린셰드의 <연대기>도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모어의 글을 바탕으로 썼다면. 그렇다면 과연 리처드 3세라는 인물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란 어디에 있는가? 경찰로서 그랜트는 소문을 싫어했고 소문이 증거로 채택되는 상황을 제일 싫어했다. 그랜트는 화가 났다.
그런 그에게 이번에도 마르타가 해답을 주었다. 처음 리처드 3세의 사진을 건넸던 그녀는 이번에는 ‘진짜’ 사료를 찾기 위한 동조자 혹은 문자 그대로 발이 되어줄 사람을 찾았다. 브렌트 캐러딘. 브렌트는 자료를 찾고 그 자료를 토대로 그랜트와 브렌트는 의견을 나누어 리처드 3세에 대한 역사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내린 결론은....
라는 내용이다. 아주 독특하다. 500년이 넘은, 역사 속 실제 사건의 진실을 찾는 추리소설이라니. 그것도 (감히) 역사교과서와 토마스 모어에 대항하여. 게다가 그랜트는 내내 움직이지 못하니 말 그대로 ‘안락의자 탐정’에 딱 맞는 경우다. 왜 이제야 이 소설을 읽었을까 싶은 탄식과 이제라도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를 느낄만큼 -앞부분만 잘 참으면, 계보에 질려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주 아주 재밌는 소설이다. 첫 느낌은 참신함과 도발적인 제안이었지만 읽는 내내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기록의 중요성이었다. 무려 500년 전 사건의 궤적을 더듬어 가려니 얼마나 어렵고 난감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생애의 파편과 편린을 천천히 주울 수 있다는 자체가, 기록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라는 기록이 얼마나 무의미하며 때론 폭력적인가를 상기한다. 승자의 입장에서 쓰는 게 역사라지만 한 인간을 평가하는 과정에 있어서 역사, 그것도 승자가 쓴 역사만을 읽는 건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역사가들 역시 사람이기에 각자의 주관과 호오를 개입할 수도 있으며 각자의 역사관과 당대의 시대상,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 혹은 변명을 대변하는 역할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그런 적이 있다. 어릴 때는 -이른바- '위인'이라 믿었던 사람의 추함과 악함에 안 후에 느끼는 충격. 좀 더 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왜 그렇게 적혀있는지를 알고 느낀 배신감. 자잘한 일화들이 거짓이거나 과장, 미화일수 있으며 누군가의 행위에서 선악이 아닌 득실을 발견할 때의 씁쓸함. 그럼 감정들을 떠올리며 이 책이 지적하는 바에 수긍하게 된다.
하나 더. 리처드 3세가 어쩌면 형보다 더 좋은 왕이었다는, 좋은 군주일 수도 있었다는 어떤 근거나 자료들을 전해 들으며 과연 지도자에게 필수불가결의 덕목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공적으로 훌륭하되 사적으로 배제되는 점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평가받아야 마땅할까. 이 질문에 관한 한 가장 모범적인 답안은 공과 사의 분리겠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이 언제나 이성적이며 합리적이진 않은 법이다. 게다가 사적인 부분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공적인 능력에도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이런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기가 곤란하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 하지만 글쎄, 진리는 누구의 품에도 있지 않는 듯 하다. 역사 속 인물 뿐 아니라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한다거나 한 인간을 오롯이 파악할 수 있다는 기만을, 믿기가 어렵다. 그 때마다『리어왕』의 구절 - 1막 4장.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느냐Who is it that can tell who I am? - 중얼거리는 것으로 씁쓸한, 신중한 중도를 택하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리처드 3세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더러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500년이 넘도록 오해받는 죽은 사람.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괴담에 등장하는 악당. 심지어 최근에 제대로 발굴되어 이장하기까지는 이름도 없는 땅에 묻혀 있었던 안타까운 왕. 실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토마스 모어는 물론 당대의 사람들, 그리고 저자와 우리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 리처드 3세는 어떤 사람인가? 정말 그는 자신의 두 조카를 죽였을까? 어쩌면 작가조차 흐리게 하는 답변은,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