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혼잡한 지하실에서 곧 고요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3페이지로 넘어갔을 때 리젤을 제외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리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겁에 질린 눈이 자신에게 매달려있다는 것을 느꼈다. 리젤은 단어들을 잡아당겼다가 숨으로 뱉어냈다. 목소리 하나가 그녀 안에서 음들을 연주했다. 그 목소리가 말했다. 이것이 네 아코디언이야.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사람들을 두 토막으로 베어버렸다.

 

다시 소녀가 말을 했을 때, 소녀의 입에서는 질문들이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뜨거운 눈물들이 눈에서 자리를 찾으려고 싸웠지만 소녀는 그것들이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단호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 나았다. 말이 모든 일을 하게 하자. “정말 오신 거에요?” 소녀가 말했다. “내가 당신 뺨에서 씨앗을 가져온 게 맞나요?” - 마커스 주삭, 『책도둑』 

 

헤르타 뮐러의 글이 숨 쉴 때는 마커스 주삭의 소설이 퍼뜩 떠오른다. 마커스 주삭은 명료한 문장과 담담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즘, 단어의 의인화로서 자신만의 문체를 구축한 호주 출신의 젊은 작가다. 『책도둑』은 그의 두 번째 작품으로 리젤이라는 어린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의 이야기인데 신인답지 않은 스토리텔링과 시선도 놀랍지만 무엇보다도 -위의 문단처럼- 문장이 백미다.

 

단어와 사물들의 의인화, 비참한 현실과 그에 대조되는 청아한 문장, 참혹하고 불온한 시대상,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한 사람의 결단에 휘말리는 집단의 공포, 무엇보다 단어에 온기를 불어넣고 숨을 쉬게 하며 맘껏 움직이게 하는 문체라는 특징의 유사성 때문일까. 헤르타 뮐러와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은 어느 면에서 닿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에는 읽으면서 즐거운 글이 있고 반대로 읽기조차 괴로운 글이 있다. 마찬가지로 즐겁기 위해 읽는 책도 있고 괴로울 줄 알면서도 읽게 되는 책도 있다. 내게 헤르타 뮐러의 책은 단연 후자이다. 나는 늘 그녀의 글을 읽으며 괴롭고 참혹해하며 이따금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헤르타 뮐러의 글은 마치 어떤 고통 어린 순간들을 조심스럽고 서글프게 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아코디언처럼 자글자글 접힌 그 안에는 절망과 향수의 언어, 박제가 되어 버린 시간들이 아로새겨져있다. 그녀의 글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종종 나는 그것을 '당해본 자의 것'이라고 부른다. 역사의 한 자락이 되어 거대한 십자가를 짊어져본 자, 인간이 악마로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자, 응축된 절망과 두려움을 심장 근처에 두고 살아본 자, 전쟁과 망명, 기아와 핍박,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것. 그들의 언어. 알베르 까뮈의 말을 인용하자면 "경험은 실험해보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얻으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당하는 것이다. 경험이라기보다는 인내가 옳겠다. 우리는 견딘다."에 해당하는 삶이랄까.

 

그래서인지 그녀의 글을 읽을 때는 시원한 곳, 찬 음료와 햇살조차 꺼림칙할 때가 있다. 그녀는 그런 삶을 살아낸 사람이다. 끈질긴 생의 집념을 목도한 사람이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남아야 했을까 싶은 상황 앞에서 그녀는 차라리 생에 대한 복수에 가까운 의지로써 살아남았다. 그녀의 언어는 비통하게도 아름답다. 어째서 언어를 이토록 슬프도록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이 매끈한 공예품과 같은 아름다움이 현실을 더욱 통탄하게 만드는 것인가. 아름다움의 본질은 슬픔인가. 늘 그녀의 글 앞에선 비슷한 의문과 혼란, 벅찬 감정들이 알알이 흩어져 마치 은하수와 같은 길을 이루는 것을 느낀다.

 

게다가 뮐러의 글은 상당히 어렵다. 주어와 목적어는 각각 주장을 하고 문장의 흐름은 뚝뚝 끊어지는데다, 사물·자연·사실의 의인화, 한 편의 서사시와 같은 길고 구비진 흐름. 설상가상으로 내용은 음험하고 무참하다. 그래서 나는 늘 그녀의 글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해 두 번, 세 번씩 반복해서 읽는다. 아니, 읽는다기보다 입안에 넣고 혀와 입천장 사이에서 뱅뱅 굴린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렇게 활자의 움직임과 냄새에 집중하고 몇 번 비슷한 경험을 하다보면 어느새 나 역시 그녀가 증축한 미지의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세계는 마치 크로스워드나 스도쿠와 같아서 집중력과 호기심이 부족하거나 끈기가 없으면 결국 글에서 손을 거두게 된다. 쉽게 읽고 빠르게 잊는 세상에, 그녀의 글은 어렵게 읽히고 깊고 길게 기억된다. 헤르타 뮐러는 모든 글자들이 쉽게 글이 되는 현재, 활자가 과도하게 난무하는 세대에게 주어지는 경건한 서사이자 경고이며 끈기 있는 자만이 열 수 있는 마법의 문이다. 분명 많은 이들이 그 문 앞에서 열쇠를 쥐었다 폈다만 반복한 후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금만 인내를 갖자. 그녀는 생(生)과 싸워서 이겨낸, 삶의 끝을 목격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문 안쪽에는 놀라운 언어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세계를 마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해보지 못할 이유가 어딨겠는가.

 

때때론 어쩌면 그녀의 글이 이토록 난해한 것은 독재정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도 잠시 생각해본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을 쓸 수 있었고 『1984』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직접적이고 명료한 언어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헤르타 뮐러의 글은 엉키고 섞이고 도치되는 것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특히『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굼뜨고 미묘한 움직임만을 포착한 글이다. 책에는 거시적인 행동이나 직접적인 대화나 지칭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몸을 웅크린 채 조심스럽고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는 듯한 동물의 시선 같달까. 그녀가 포착하는 세계에는 독재 정권 치하에서의 공포와 광기 어린 -마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처럼- 목숨만이 존재한다. 그들의 공포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몇 배는 크다. 사방에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고, 그들은 반대로 점점 더 눈이 멀고 귀가 어둡고 입을 닫게 되는 세상. 언행은 물론 생각과 약간의 가능성과 꿈조차 함부로 누릴 수 없던 세상. 아디나와 클라라, 그리고 그녀들을 둘러싼 모든 인물들은 절망적일만큼 무겁다. 그들에겐 이미 희망의 빛은 커녕 빛을 지필 촛대조차 남아있지 않다. 다만 생존을 꿈꿀 뿐.

 

8월의 그런 어느날, 일리예는 가스레인지 옆에 서서 바퀴벌레를 으깨어 죽였다. 어쩌면 그가 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머릿속에 있던 열기의 무자비함이 그런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중략) 그는 구역질을 했고 식은땀을 흘렸다. 도나우 강이 있어서 세상은 행복해, 라고 말했을 때, 그는 자신의 혀를 삼키며 딸꾹질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방 벽에 콘센트가 잔뜩 있다. 콘센트에는 입이 있다. 램프대에는 재물조사 목력번호인 노란 숫자들이 쓰여 있다.

 

노인의 노래가 그친다. 세상에, 그가 잎이 없는 황량한 아카시아 앞에서 말한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린 먹을 빵도 없어. 경찰관 한 명과 개 한 마리가 그에게 다가오고, 또 한 경찰관이 온다. 그러자 그는 양팔을 치켜들고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하느님,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가 루마니아인이라는 것을. 그의 눈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빛에 번쩍이고, 눈 속에서 광채가 번뜩인다. 개가 짖으며 그의 목으로 뛰어오른다. 두 명, 세 명, 다섯 명의 경찰이 그를 끌고 간다. (중략) 노인의 머리가 제일 아래쪽에 걸려 있다.

 

일견 냉담해 보일 만큼 쉬이 감상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치밀함은 지금까지도 그녀가 그때의 악몽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은연중에 전달한다. 치열하고 아름다운 글은 묵묵한 속도로 그저 이들을 ‘비춘’ 다음 조심스러운 눈으로 바깥의 시선을 오래토록 던진다. 대체 지금 내가 발을 디디는 곳이 어디인지, 이 불온한 공기는 어떻게 해체될 것인지, 지독하게 상징적인 이 제목의 의미는 언제쯤 알게 될 수 있을지, 독자가 조금씩 조바심을 낼 때쯤 겨우 여우 이야기를 꺼낸다.

 

아디나에게는 여우 모피가 있다. 반짝이는 갈색 발톱을 가진, 턱 아래에서 묶을 수 있는 발을 가진 여우 모피. 그런데 여우는 그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잘리고 있다. 방 안에 다른 물건은 모두 미세한 배치조차 바뀌지 않았는데.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는, 그리고 언젠간 그녀를 해칠 것이라는 무언의 압력. 그녀는 문득 열 살이 되기 전 일을 떠올리며 클라라에게 이야기한다. 여우를 사러갔을 때의 일, 매끄러운 털을 가진 여우, 그리고 사냥꾼의 얼굴.

 

너 긴장했구나, 아디나가 말한다. 죽은 사람처럼 보이는 걸. 그러자 클라라는 깜짝 놀란다. 그녀의 시선은 거리낌 없고 단호하다. 클라라는 떠나간 한 얼굴을 본다. 그 얼굴은 위장된 얼굴이다. 양 뺨과 입술이 제각각 따로 놀고, 생기 없고 동시에 탐욕적이다. 앞과 옆의 한 얼굴이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그림처럼 텅 빈다. (중략)

아디나는 그 사냥꿈이 되고 싶어해, 클라라는 생각한다.

   

넌 나보다 더 많이 불안해해, 아디나가 말한다. 여우를 보지 마, 더 이상 여우를 쳐다보지 마.

 

밤사이에 여우의 발이 모두 붙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되려 조금씩 없어지는 여우의 모피를 바라보며 그녀는 어떤 밤들을 지새웠을까. 여우가 마치 자신을 잡아먹는 늑대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하나씩 사라지는 여우의 분신을 바라볼 때 그녀는 억겁의 시간을 지나온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에 떨지 않았을까.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그녀는 머리가 잘리기 전 클라라의 쪽지를 받고 아파트를 도망 나온다. 그렇게 찰나의 차로 그녀가 피신을 하게 된 얼마 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독재정권이 마침내 종식된다. 아디나(아마 그녀를 비롯한 모두)는 마치 백일몽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TV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이 뒤졌을 게 분명한, 그러나 아무도 없는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모든 게 끝났다. 하녀의 딸은 교장이 되었고, 교장은 체육 교사가, 체육 교사는 노동조합장이, 물리 교사는 개혁과 민주주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세상의 불온한 빛은 미처 거둬지지가 않았다.

 

고양이는 수염이 있어, 아이가 말한다. 그 애의 손끝 아래로 여우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 밀린다. 아이가 여우의 머리를 탁자 위에 놓는다. 

 

아디나는 두 번째로 머릿속에서, 큰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 같지만, 그것과는 다른 소음을 느낀다.

 

클라라는 이방인이고 일리예는 떠나며 아디나는 여우가 더 이상 붙지도 잘리지도 않을 것을 안다. 노래는 침묵하고 빵가게의 줄은 길고, 타오를 것 같았던 희망과 삶의 빛도 결국엔 비루해졌다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여우는 사냥꾼인 채로 남게 된다. 아아, 나는 이 책 끝에 자그만 희망을 소망했던가. 씁쓸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문득, 이 책의 제목이『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와 '-었다'의 과거의 언어는 바뀔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단 한 번, 몇 명의 독단과 아집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잿빛 초상화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겼다. 비록 독재정권은 무너졌지만 아마도 희망의 빛은 쉬이 켜지지 않을 것만 같아 괜시리 목이 매캐해진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자들은 승리자일까. 운명의 수레바퀴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비슷한 의문을 품는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과 사를 나눈다 해도, 설사 역사가 이긴 자들의 것들이라 한들, 어떤 때는 죽어버린 자들이 ‘차라리’ 운이 좋았던 게 아닐까.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살아남았다는 부채감 중 어떤 게 더 클까. 헤르타 뮐러는 어떤 생각을 하며 글을 쓸까. 어쩌면 그녀의 글쓰기는 살아남은 자의 부채로서, 혹은 생에 대한 완벽한 복수를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써야만 했기에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던 산물이 아닐까. 오로지 살아남은 자들만이 악몽에 시달린다. 살아남은 자들만이 무소의 뿔처럼 걸어갈 수 있다. 살아남은 자들만이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책을 덮으며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린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