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E. M. 포스터 전집 2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단편 「겨울꿈」에서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한 사람은 F.스콧 피츠제럴드였다. 과연, 설사 같은 사람과 다시 연애를 한다 해도 절대 똑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단순한 명제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지난 사랑을 탐하며 아파했던가.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린 후 방황하고 아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정의 깊이에 비례되는 상실감과 허무함, 그리고 두려움일까. 대부분의 사랑은 언젠가는 끝난다는 현실에 근거한 사실을 믿기 싫은 우리는 때때론 사랑을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사랑이란 시작부터 끝까지 괴롭고 외로운 싸움이오, 다만 한 줌의 아름다움과 추억만이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데. 대체 그 누가 사랑을 가장 쉽고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했던가. 아름답고 순수한 모리스를 바라보며 새삼 탄식에 젖게 된다.

 

『모리스』는 포스터의 작품 중 거의 제일 저평가 된 작품인데, 이 책을 둘러싼 가시적인 이슈들 - 동성애 소설이라는 꼬리표와 자전적 소재라는 자극점 등 - 만으로 바라보기엔 너무도 아까운 글이다. 『모리스』에는 포스터의 문체와 역량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서사구조는 간단하고 내용은 명료하면서도 문장은 우아하고 냉철하다. 특히 어떤 선입견에 쌓여 읽기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너무나 정직하고 아름답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올해 읽은 최고의 연애소설 중 하나로 꼽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대체 모리스가 사랑을 갈구한 사람이 남성이라는 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결국 이야기는 한 남자가 사랑의 과정을 지나면서 어른이 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며 동시에 애절한 연애소설일 뿐인데.

 

주인공 모리스는 다소 즉흥적인 면이 있지만 다정한 성품과 단정한 생김새, 어디를 보나 촉망받는 청년이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클라이브는 예민하고 유약한 편으로 모리스와는 정반대에 가깝다. 학창시절에 만난 둘은 호의와 호감과 신뢰를 넘어선 무언가가 존재했다. 클라이브의 사랑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것과 닮아있다. 여성을 폄하하고 남성을 우상시하는 것, 아름다운 것을 흠모하는 것, 남성의 몸과 근육과 뼈를 지지하는 것, 그럼에도 플라토닉한 사랑의 지향까지도. 클라이브를 보면, 누군가 내게 동성애는 자기애의 연장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모리스의 진솔함과 남자다움을 탐했지만 그에게 사랑을 던지지는 않았다. 모리스의 손길은 클라이브를 안정시켰으나 욕망에는 답해주지 못한다. 결국엔 모리스의 탐욕과 다정함을 경멸하게 된다. 그렇게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홀로 둔 채 스스로 안정된 구조와 보통의 삶이 주는 안위로 돌아온다.

 

자신이 더 많은 마음을 받은, 미련 없는 지나간 사랑은 (극단적인 언어지만 일종의)가해자에겐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긴 미련을 지니고 더 깊은 상처를 받은 피해자에게는 아픔으로 남는다. 클라이브는 아는 것도 많고 섬세했지만 유약한 남자였다. 심지어 지나간 애정을 우정 따위로 포장해서 모리스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구원하려드는, 차갑고 연약한 손을 뻗기도 한다. 그런 그의 앞에서 모리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무릎에 기대던 그 머리카락이 빠져나갔을 때, 자신의 손을 거절하는 그의 얼굴 앞에서, 모리스는 어떤 절망에 빠졌을까. 어쩌면 영화 <봄날은 간다> 속 상우가 내뱉었던 대사처럼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며 처연하게 말했을까.

 

그렇게 모리스는 클라이브에게서 사랑을 달콤함을 오만함을 다정함을 배웠고 그 깊이만큼 절망한다. 그런 모리스를 앞에 두고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둔탁한 아픔이 가슴께를 강타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득한 눈빛과 안온한 공기와 순간적인 행복감. 그런데 그때의 찬란함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때, 아름다웠던 그때의 너와 나는 이제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느껴질 때 우리는 압도적으로 서글퍼진다. 그리고 애정의 깊이는 종종 무관심이 아닌 증오나 혼동의 깊이로 돌이켜지기도 한다.

 

지나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배움이 없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은 지난 사랑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과거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음란한 욕망, 두서없이 나누던 기나긴 대화들도 돌이키지 않으니.

 

작가의 냉담하고도 부드러운 말투 앞에서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이 책이 어째서 연애소설인지, 그리고 본질까지도. 어쩌면 이 책은 우리를 관통했던 어떤 순간을 기록하는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접하는 모든 것들. 그러니까 키스의 부드러움, 사랑하는 이의 손의 감촉, 그때의 수줍음과 설렘, 희망의 시기를 지나 관계의 정착, 그리고 균열. 몰이해와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상처를 수습하고 다음 사랑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 그렇게 반복되는 사랑의 과정 말이다.

 

그러나 모리스의 사랑은 단지 사랑만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 시대상, 동성애에 대한 주의의 시선들, 가족과 집안과 사회적 직위 등 작가는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모리스를 시대 안으로 녹여낸다. 사랑이 지나간 것을 알아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모리스를 때론 동정하면서도 줄곧 냉담하게 바라본다. 그에게 비로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을 때 그는 먼 곳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기 안의 두려움과 연약함과 둔함을 안고서 알렉을 선택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렇다. 그것이 모리스가 그를 찾아간 이유였다. 그것은 더는 읽지 않을 책을 덮어 두는 일이었으며, 그런 책은 곁에 두고 먼지만 쌓이게 하느니 그냥 덮어 버리는 편이 낫다. 그들의 과거의 책은 책장으로 돌아가야 했고, 여기, 어둠과 죽어 가는 꽃들에 감싸인 여기가 바로 그 자리였다. 그는 알렉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했다. 그는 새것과 옛것이 섞이는 고통을 겪을 수 없었다. 모든 타협은 속임수고 그러므로 위험하다. 이제 모든 걸 털어놓았으니 그는 자신을 키워 준 세계를 떠나야 했다.

 

모리스는 이제 자신의 사랑이 지나갔다는 것을 인정한다. 피츠제럴드의 말처럼 세상에 같은 사랑을 없다는 사실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과 결별을 해야 한다는 것 또한. 그러나 여태껏 그 책을 더 읽을 수도 덮을 수도 없었던 그가 이토록 의연해질 수 있다니. 마치 그것이 어떤 성장처럼 느껴졌다. 아, 여전히 소년에 불과했던 그가 사랑이 지나간 후 -혹은 새 사랑을 앞두고- 남자가 되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포스터는 모리스와 알렉이 떠난 후의 이야기를 그리지 않았다. 기대치가 부담스러워 작용한 의도적인 희미함인지, 자기 자신도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희망을 담은 침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둘이 십자가를 진 채 걷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죄악이 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이 너무나 처참한 일이 아닐까.

 

그 뒤에 남은 흔적이라곤 조그맣게 쌓인 달맞이꽃의 꽃잎뿐이었다. 꽃잎들은 꺼져 가는 모닥불처럼 땅 위에서 애처로운 빛을 뿜고 있었다. 클라이브는 죽을 때까지도 모리스가 정확히 언제 떠났는지 알지 못했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블루 룸은 희미한 빛을 발하고, 고사리 풀숲은 물결쳤다. 영원한 케임브리지 어딘가에서 친구는 온몸에 햇살을 입고 그에게 손짓하며 5월 학기의 소리와 향기를 떨치기 시작했다.

 

모리스의 뒷모습을 클라이브는 이렇게 회상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사랑의 과정의 알싸함을 떠올린다. 우리를 관통했던 그 순간들에 대한 기억과 피츠제럴드의 말을 상기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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