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
노승영.박산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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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 번역은 있을지 몰라도 완벽한 번역은 존재하지 않겠구나, (여느 직업이든 그렇지만) 상당히 복합적인 고충이 있는 직업이구나 싶다. 그럼에도 각자가 느끼는 직업적 고취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며 현실적인 충고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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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21-06-21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을 일컫는 영어 단어 ‘트랜슬레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트란슬라티오’인데, 이 단어는 ‘건너서’를 뜻하는 ‘트란스’와 ‘트란스페레’의 과거분사형이다. 그렇다면 ‘트랜슬레이션’은 ‘건너편으로 나르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연 무엇을 무엇의 건너편으로 나른다는 것일까? 언어의 장벽이라는 강 저편과 이편에 각각 저자와 독자가 있다. 나는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가이니까 강 저편은 (저자가 있는) ‘영어의 땅’이고 강 이편은 (독자가 있는) ‘한국어의 땅’이다. 독자가 저자와 대면하는지, 텍스트와 대면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이 글에서는 독서를 (저자와 독자가 나누는)일종의 대화로 보기로 한다. 번역가는 사공이다. 그의 임무는 저자와 독자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사공은 한국어 땅의 독자를 영어 땅에 데려가 저자를 만나게 해야 할까, 영어 땅의 저자를 한국어 땅에 데려와 독자를 만나게 해야 할까?

첫째,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가는 경우, 독자는 낯선 땅에 발을 디딘다. 풍경도 풍습도 물건도 낯설기만 하다. 독자는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저자를 우러러본다. 저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고 싶다. 저자의 말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다. 저자가 바라는 세상을 고스란히 보고 싶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 타이다. 낯선 진실이 있고, 나는 이방이다.

둘째,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오는 경우. 저자는 혈혈단신으로 낯선 땅을 밟는다. 저자는 자신의 말이 지독한 사투리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평소처럼 말하면 독자는 저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저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다듬고 독자에게 친숙한 예를 든다. 자신의 땅이기에 독자는 주눅 들지 않는다. 나를 이해시키라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당신 책임이라고 말한다. 입증의 책임은 저자에게 있다.

뭉뚱그려 표현하자면, ‘데려가는’ 번역을 직역, ‘데려오는’번역을 의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는 손님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손님은 자신을 건너편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구하고 어떤 손님은 건너편 사람을 데려와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사공은 배를 한 번만 몰 수 있기에(저작권 때문에), 손님들의 제각각 요구를 하나로 모아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마치 손님이 한 명인 것처럼. 이 가상의 손님을 ‘독자’라 한다.

그런가 하면 나루터에 배를 대고 한쪽 땅에서 둘을 대면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 한가운데 나룻배 위에서 상봉시키는 방법도 있다. 사공은 그때그때 솜씨를 발휘하여 배를 이쪽으로 몰았다가 저쪽으로 몰았다가 한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배가 어느 나루터에 닿는지에만 관심을 쏟는다. 하지만 초짜 사공이 영어 땅으로 향하면, 독자를 엉뚱한 나루터에 내려주기 십상이다. 물길도 모르고 저자가 어디서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그냥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배를 젓는다. 이를 일컬어 ‘영혼 없는 직역’이라 한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문장을 썼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를 짝짓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게으른 사공이 한국어 땅으로 향하면, 배를 나루터 아닌 곳에 대충 접안하기 쉽다. 이를 일컬어 ‘얼렁뚱땅 의역’이라 한다. 문장 구조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서 대충 감으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듯하지만 원문과 대조하면 터무니없는 오역도 곧잘 발견된다. 강호에서 벌어지는 번역 논쟁은 영혼 없는 직역과 얼렁뚱땅 의역의 사이버 논쟁인 경우가 많다. 부디 경험 많고 부지런한 사공을 만나시길.


책 속 한 문단을 소개한다. 다소 길지만 번역의 핵심을 관통하는 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