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소녀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 / 크롭써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본 적은 많지만, 책은 몇 번 읽어보지 못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또한 인상깊게 남는 것도 없다. 몇 권 읽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읽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책들 중에는 잔인한 모습들은 되도록 줄이려고 하며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끔찍한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려내지는 못했던 게 많았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아쉬웠을 부분이었는데, <이웃집 소녀> 에서는 끔찍한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이 책은 1965년 미국의 인디애나 주에서 16세 소녀가 감금되어 잔혹한 고문 끝에 죽음을 당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소녀가 그 집에 들어가게 된 계기와 결말은 실제 사건과 다르게 전개되지만, 소녀가 처한 악몽의 시간과 고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잔인함의 수위를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입에 담을 수 없는 언행들도 책에는 등장한다. 저자의 줄임말로써 책장을 넘기게 되지만, 그들의 짓궂은 장난은 이미 머릿속에 떠오른 뒤 다.

조용하고 예쁜 동네에 한 소녀가 이사를 오게 된다. 소년 A는 소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사고로 부모를 잃게 된 소녀가 친척집에서 머물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녀가 머무를 곳이 A의 옆집이라는 사실에 가까운 곳에서 소녀를 볼 수 있게 된 소년은 기뻐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 악몽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평화롭게만 느껴졌던 한 마을, 한 집안, 사람들의 무관심과 잘못된 행동들이 불러온 비극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다.

 소년 A는 소녀가 친척집에서의 힘든 생활을 토로할 때 이야기한다. "(넌 잘 알지 못하잖아) 그 아줌마는 친절해!" 하지만 소년이 보는것으로 소녀의 생활을 대신할 수 없다. 잘 알고 있는 말이었지만 이내 가슴을 찌르는 듯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 역시도 무심코 섣불리 말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한다. "그 사람이 그럴리가 없어 (넌 아직 몰라!)" 나는 여기서 소름이 끼쳐왔다. 누군들 상대방을 다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음에도 확신하는 말을 내 뱉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구원을 요청했지만 눈치채지 못하고 어물쩡 넘겨버린 이후, 소녀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아간다. 친척 아줌마는 체벌이라는 이름하에 구타를 일삼으며 소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데 그 강도가 너무도 높아져간다. 영혼과 더불어 신체가 더럽다는 모욕을 일삼으며, 폭력을 가한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가히 상상할 수 없는 행동들과 주변사람들을 생각하면 소녀의 참혹한 심정이 가슴에 콕콕 와닿는다.

 언어적 모욕은 기본이거니와, 신체적인 폭력을 일삼는다. 지하실에 가둬두며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는 한편, 옷을 벗긴 채 매달아 놓기도 한다. 여자로서 치욕적인 상황들을 만들어 놓고 그들은 즐긴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어떻게 최악으로 망가뜨릴 수 있는가 고민하는 그들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검푸른 멍과 푸른 상처들은 마를 날이 없는 소녀에게 끝없이 아픔만은 선사한다. 뜨거운 물을 욕조에 담아놓고 몸을 담그는가 하면, 끓는 물 속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한다. 성 폭력을 일삼으며, 그녀의 몸에 칼로 난도질을 하기도 한다. 후벼파거나 지지며 화상을 입히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그들은 최후에는 그녀의 몸에 칼로 글을 새기기도 한다.

 ’I’ M A PROSTITUTE AND PROUD OF IT! (나는 창녀이고, 그것이 자랑스럽다!) 실제 사건 현장에서도 이같은 글이 복부에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사람들은 놀라움과 경악에 몸서리쳤다고 한다. 이 끔찍함을 저자는 차분히 설명하는데, 그의 깊은 설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현장에 있는 것만 같아 고개를 흔들게 된다. 마치 내가 그 소녀인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들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런 몹쓸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들의 타자성에 대해, 그리고 그들도 인간이라고 믿었던 우리 진짜 인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 잭 케첨의 작가노트 중에서 -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정신이상증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소녀를 돌봐주는 친척아줌마가 그러한데, 잔인한 행동에 손사래를 치는 한편,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한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알 수 없다는 것과, 내 주변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너무도 무서웠다.

 이 책의 무서운 점은 크게 두 세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소녀를 향한 잔혹한 행위들과, 잘못을 저지르는 자와 이를 방관 하는 자, 즐기는 자들의 행동들이다. 정신이상증세를 가진 엄마와 그 집안의 아이들이 저지르는 못된 행동들, 그리고 주변에 또래친구들마저 동참해서 이를 함께 즐기는 행위와, 그 사실을 알고서도 묵인하는 이웃집 사람들은 정말 분노가 일어난다. 하지만 남의 일에는 신경을 안쓰는 현재의 나를 비롯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안타까움과 비참한 기분에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정리해 나가야 할 지 모르겠다. 복잡한 생각들이 끝없이 이어져오는 책이다. "잘못을 저지른 자와 이를 묵인한 자 누가 더 나쁜가?", 인간이 얼만큼 잔인해질 수 있으며, 무관심과 방관이 한데 뭉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악의 심연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가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너무도 잔혹한 소설에 조금은 사람이 무서워지기도 했던 이 책은 단순한 내용이지만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사고를 똑바로 볼 줄 아는 사람, 인간에 대한 실질적 공포를 느끼고 싶고, 나아가서 많은 것을 생각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웃집 소녀>를 추천하는 바 다. 소설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에 손에 들게 해줄 책이라는데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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