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해부학 - 완전한 질서 너머 삶의 의미를 찾아서
가브리엘 웨스턴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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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나란히 서서 이를 닦을 때 보면 남편과 나는 중년 피부의 병리학 전시물 같다. 분명 잘생긴 얼굴이지만 60년의 세월을 살아온 지금, 여러 해를 태양이 이글거리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산 탓에 남편의 표피 상태는 끔찍하다. 어깨 여기저기에 털도 제멋대로 나있다. .... 햇빛 손상, 햇빛흑색점 모반이 다양한 색조로 마치 지도를 그리듯 혼란스럽기 그지없고, 그 표면의 질감은 지형도만큼이나 울퉁불퉁하다._p216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몸을 떼어내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때는 정신과 육체를 철저히 구분해서 취급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하면할수록 인간은 호르몬의 영향, 장에서 보내는 신호들, 먹는 음식물이나 수면 등 신체활동에 따라 좌우되는 기분과 정신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 하나둘씩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의학적으로 인체를 풀어내며 철학인문학적 사유를 하게 만드는 #인생의해부학 같은 책이 더 손이 갑니다. 저자 #가브리엘웨스턴 은 인문학 출신 외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죽음만이 있는 부검실의 광경을 놀랍도록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우리는 무엇으로 이뤄진 존재인가’ 질문을 주면서 시작합니다.

 

하나하나 해체해나가는 육체는 그 전에 기능적으로 움직였던 각 부위, 한 존재의 스토리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부검실의 작업이 지나면, 뼈, 성기, 창자, 자궁, 허파, 피부, 가슴, 콩팥, 뇌, 간, 심장, 각 기관의 기능을 비유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풀어주는 챕터들이 이어집니다.

 

단순히 육체적 기능적인 측면이 아니라 우리가 감정적으로 느끼는 장기들에 대한 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뭉클함과 적나라함이 있었습니다. 자궁이나 성기, 가슴 파트에서는 여성으로서 겪었던 저자의 경험들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간, 그 묵묵함에 뜨끔한 저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장기의 특징을 통찰력 있게 풀어놓은 챕터들마다의 문구가 정말 대단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가장 깊은 자아와 바깥세상이 만나는 경계, 피부’, ‘내 몸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내 몸으로 존재하기, 가슴’,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고 신의 무게와 같은, 뇌’, ‘어떻게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간’ 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니 기억하고 싶습니다.

 

책 속 마지막 장기는 심장입니다. 심장에서 힘차게 뿜어나가는 혈액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면, 방금 전까지 심연의 끝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해도, 살고 싶어집니다. 저자는 그런 의미로 마지막에 심장을 넣어놓았습니다. 수술실에서의 심장이식 장면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물론 이때 기증자의 몸은 비어있습니다.

 

죽음에서 시작해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남아있는 기증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 까지..... 삶을 생각하게 하며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알아차림은 그 대상들도 배움도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통찰력 있는 몸에 대한 고찰, 나다워지는 시간을 배울 수 있는 도서입니다.

 

+책 속 문장:

_욕망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해부학을 알고, 어디를 원하는지 가리키고, 몸짓으로 표현하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내세울 수 있도록 솔직하고 노골적인 정보가 필요하다._P75

 

_뇌에서 50세제곱밀리미터를 잘라내면 그 하나의 표본 안에 뉴런 500만 개, 시냅스 500억 개, 가지돌기 22킬로미터, 축삭돌기 220킬로미터가 있다. 하지만 이런 뇌를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에밀리 디킨슨이다. 뇌는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으며’ ‘신의 무게와 같다’._p293

 

_심장은 단순히 우리의 정서적 자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심장을 이루는 물리적 조직과 우리의 감정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_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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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읽는 스페인
백인필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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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가는 다양한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많은 미술작품, 건축물, 역사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스페인은 가우디 건축물들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요. #백인필 의 #예술로읽는스페인 으로 만난 그곳에는 가우디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 속 스페인은, 그라나다, 론다, 세비야의 남부 안달루시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3챕터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안달루시아 편에서는 이슬람과 카톨릭이 공존하는 문화와 건축, 예술이, 가우디의 도시라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는 뜻밖에 계획도시로서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양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마드리드에서는 성격이 확실히 다른 프라도 미술관과 소로야 미술관울 통해서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고야의 생애, 스페인 인상주의 호아킨 소로야 등 친숙한 화가들을 작품들과 함께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빈, 박신혜 주연으로 그라나다 배경으로 AR 게임관련 판타지 미스터리 한국드라마인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문득 떠올랐었던 시간이기도 했답니다. 당시에 드라마 배경이었던 그라나다의 동서양이 섞인 듯한 독특함이 기억에 남아서이기도 하고, 책의 시작이 그라나다의 상징인 알람브라로 시작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알람브라의 뜻이 ‘붉다’를 뜻하는 아랍어 ‘함라’에 정관사 ‘알’이 합쳐진 말이고 ‘붉은 성채’라는 의미라는 설명 파트에도 성벽 건축에 쓰인 적토가 산화철 성분으로 붉은빛을 띠는 데서 비롯했다는 부분에서도 저기 어디쯤에 사라졌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우디만 떠올렸던 스페인... 보다보니 이미 다른 매력들도 제법 접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스페인, 책으로라도 떠나볼 수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어서 참 즐거웠습니다.

 

떠나기 좋은 계절, 이 책으로 '예술품은 스페인' 만나 봐요.

 

+책 속 문장들:

 

_건조한 아랍 세계에서 물은 곧 생명이었기에, 천국은 물이 넘치는 낙원으로 그려지곤 했다. 헤넬랄리페는 이를 반영해 물길과 분수, 수로를 중요하게 배치해 지상의 낙원을 구현했다._p29

 

 

_마드리드 시민들은 프라도 미술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소장품 대부분이 전쟁의 전리품이나 약탈이 아닌, 선조들이 직접 구매한 것이기 때문이다._p152

 

_고야가 산 이시드로 평원을 배경으로 그린 두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그의 생이 어떻게 변해갔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1788년에 그린 <산 이시드로 초원>은 참으로 평화롭다. .... 그가 궁정화가로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든 시절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반면, 삼십 여 년 뒤 같은 장소를 그린 <산 이시드로 순례>는 공포로 가득하다. 맹목적인 신앙과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힌 사회를 비판한 고야의 시선이 담긴 그림으로 볼 수 있다._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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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너머 한 시간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화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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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너머한시간 은 1899년 출간된 #헤르만헤세 의 첫 산문문학으로, 아홉 편이 들어있습니다.

 

이 책속에는, 밤의 정서가 가득한 글 속에는 신비로운 배경의 왕국도 있고, 달빛으로 채워진 언덕이 있었습니다. 섬에서 꾸는 달콤한 꿈도 있지요. 몽환적이고 낭만주의적이어서 감정이 넘쳐흐르는데요, 헤세답게 그 내면에 있는 고독과 그리움, 예술적인 감성도 되풀이 된답니다.

 

현실의 ‘낮’에서 물러나 예술가로 스스로를 정의한 헤세의 ‘밤’을 문학적인 언어로 만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그의 작품들 중 시들이 이 산문들과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완성된 작가의 대표작을 읽는 것과 한 작가의 세계가 태어나는 순간을 읽는 것은 무척 다른 일인데요. 아직은 거칠고 감수성 넘치지만, 훗날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의 조각들-고독,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시선, 현실세계와 영혼세계의 긴장 등-도 발견할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문장의 리듬과 이미지가 잘 느껴지는 글이어서, 손으로 옮겨 쓰면 그 매력이 더 살아나는 책이라 생각이 들어서, 필사도 하고 있습니다. 젊은 헤세를 만나고 있는 기분이에요.

 

‘데미안’ 이전의 헤르만 헤세를 만나기 좋은 책, 고전이라 불리는 그의 작품들을 다른 방식으로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_고요한 슬픈 밤이 나를 위로하고 잠재우며 새 위에 궁륭처럼 떠 있었다. 마치 친구들이 귀향자에게 찾아가듯 잠과 꿈이 내게로 찾아와 죽을 것만 같은 무게를 내 어깨에서 여행 보따리처럼 내려주었다._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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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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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개울에서 똥물을 씻어내며 두자는 몸을 벌벌 떨었다. 그저 살았을 뿐인데 흔한 욕심 한번 못 부리고 하루하루를 평생처럼 살아냈을 뿐인데, 잊을 만하면 닥쳐오는 욕지기 솟는 불행들. 똥물보다 더 더러운 말들. 사람들. 감정들. 지긋지긋한 인생. 차디찬 개울물에 코를 박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죽자, 죽자고 두자는 생각했다._p149

 

여자로 태어난 것이 참 얄궂다.... 인생이 참 그렇다... #최진영 장편소설 #끝나지않는노래 를 읽으며 계속 맴돌았던 생각이다.

 

두자, 수선과 봉선, 은하로 이어지는 100년, 여성 3대의 서사가 날것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그냥 태어났을 뿐인데 시대가 바뀌어도 이들의 고통은 반복되고 있었다. 자신도 여성이면서 딸들에게는 더 혹독한 엄마들이 진정 사랑한 것은 무엇일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3대를 거쳐서 비슷한 상황들이 되풀이 되고, 주인공들은 각성하고, 그러면서도 세상을, 남자를 원망하면서도 다시 믿어보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들을 통해 아주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장황한 심리묘사가 아니라 현실적인 대사와 행동으로 무척 잘 풀어주고 있어서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방대한 역사도 아주 잘 담아내고 있어서 소설의 깊이와 가능성을 더 넓혀주고 있음이 놀라웠다.

 

<끝나지 않는 노래>를 읽어가면서 깨닫게 되는 점은, 이들이 바로 지금 우리라는 것이다. 이어받은 고통을 풀어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그 지혜는 다행히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찾은 지혜는, 끝날 것 같지 않는 노래는 되풀이 되지만, 해결되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하지만 서로를 감싸 안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그리운 사람과 기억을 간직하면서 말이다....

 

_나는 엄마 따위 절대 안 해. 자식새끼 있어 뭐 해. 그딴 거 있어봤자 고생밖에 더 해? 이러나저러나 듣는 건 원망뿐이지..... 에이씨. 지랄맞게 보고 싶네. 엄마, 수선이, 우리 엄마._p249

 

 

최진영 작품세계의 원형으로 해석되는 <끝나지 않는 노래>,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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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0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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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MBTI는 무엇인가요?

별자리는요? ....

 

재미로 한다지만 이런 질문들에는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어있습니다.

 

저는 이런 궁금증의 시작이 10대 때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연히 접하게 된 데미안으로 알게 된 #헤르만헤세 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는 인간의 내면과 성장, 철학 등을 평생 다뤘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도, 그의 책들을 다 찾아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중 #나르치스와골드문트 를 수십 년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어렸을 때는 정신과 사유를 대표하고 뭔가 깔끔하고 깊이 있어보이는 나르치스에게 끌렸던 것 같아요. 왠지 이것이 더 맞아보였기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이번에 읽었을 때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골드문트에게 더 집중했습니다. 그의 삶이 우리네 그것과 닮아서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몸과 마음으로 직접 겪은 경험들은 결국 예술로 귀결되는 것도 무척이나 공감이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 속에서 그만큼 성숙된 제 자신을 느낄 수 있었던 독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감성, 감각과 사랑, 예술, 자연으로 해석되는 골드문트와 이성과 정신, 사유로 말해지는 나르치스가 정말 다른 존재일까요? 인간 안에는 이것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가능성에 대한 문제인거죠... 바로 이 점이 헤르만 헤세 문학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철학적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가능성을 선택하는 지는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을 겁니다. 혼재되어 있되 질서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고, 그렇게 인생이 성숙해 지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골드문트의 마지막을 보며 여운 깊은 감동이 남는 것을 보니, 역시 고전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만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이제 자주 봐야겠습니다.

 

[기억에 남는 문장]

_그러나 골드문트와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유치하고 더 인간적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속세를 떠나 손을 씻고 깨끗한 생활을 하며 조화에 가득 찬 아름다운 사상의 정원을 설계하고 안전한 꽃밭 사이를 몸에 티끌 하나 묻히지 않고 거니는 대신에 무자비한 격류와 혼미 속에 몸을 던져 죄를 저지르고 그 쓰디쓴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좀 더 용감하고 좀 더 위대한 삶은 아닐까.

 

헐어서 너덜너덜해진 신발을 신고 숲속이나 시골길을 헤매기도 하고, 햇볕을 쬐고 비를 맞고 굶주리며 궁핍을 견디고, 관능의 향락에 놀아나다 그 대가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좀 더 힘들고 용기가 필요하고 희생이 따르는 고귀한 삶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에게 보여주었다._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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