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평점 :
친구와 종종 ‘걷기’에 대하여 이야기하곤 한다. 그 친구는 지금까지 속상한 일이나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무조건 나갔다고 한다. 고맙게도 가까이에 호수를 끼고 있는 산책로가 있어서 언제나 그렇게 나가서 몇 바퀴를 돌고 나면 해결책이 떠오르거나 스트레스가 해소되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게도 걷기의 좋은 점을 적극 어필한다. 굳이 운동을 목적으로는 행동하지 않는 성향이 강한 내게는 그저 걷기만 목적으로 나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출퇴근을 하는 직장을 다닐 때는 먼 거리도 걸어서 퇴근할 만큼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런 의무감이 사라진 뒤로는 혼자서는 잘 안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걷기’가 좋은 것은 잘 아는 지라, 마음속에 숙제처럼 항상 지니고 있다. 한 켠에 놓인 스텝퍼를 오가며 작동여부를 확인한 정도만이라도 꼼지락거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가득할 때, 읽게 된 리베카 솔닛 작가의 ‘걷기의 인문학’. 단순히 작가 범주로만 넣기에는 그 역량이 너무 풍부한, 존경하는 인물이다. 역사가, 활동가, 사상가로 이 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의 ‘걷기’에 대한 사유는 어떤 것일까?!!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부터 ‘걷기’라는 행위가 타 동물들과 구분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진화론적으로 모두 잘 알고 있듯이, 두 손이 자유로워지며 인간의 뇌는 발달속도가 빨라졌다. 한편 출산의 위험성은 높아졌고 성행위의 신체구조적인 평등성에 변화가 생겼다.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직립보행이 찬사를 받는 진화과정인 이유는, 이 행위로 도구사용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고차원적인 생각을 촉진시켰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리베카 솔닛은 이런 진화론적 당위를 넘어, 보행/걷기에 대해 다양한 도시의 길을 해석하고, 역사적으로 보행행위를 분석해놓았으며, 또한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인문학적인 즐거움을 이 책을 통해 언급하고 있었다. 솔직히 ‘걷기’라는 단순하고 익숙한 행위를 가지고 이렇게 까지 풀어낼 수 있는 그녀의 사유와 지식의 깊이는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산책을 즐겼던 많은 사상가, 철학자, 작가들, 과학자들이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생각을 이끌어 냈을지 그녀를 통해 상상해볼 수 있었다. 책 속에도 많은 실례가 언급되어 있어서 읽은 이의 성향에 따라 느끼는 바가 색다를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도시들이나 장소들을 가지고 풀어내는 길, 공간, 걷기에 대한 해석들이 인상 깊었다. 파리나 샌프란시스코, 뉴욕과 같은 도시에 관한 내용들은 정말 풍부한 지적 즐거움과 더불어, 사회비판적인 관점도 열어주고 있었다.
한 번의 독서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읽을 때 마다 얻어가는 부분이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글은 또 얼마나 잘 쓰는지.... ‘매혹적인 글쓰기’라는 안내문구의 뜻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단순히 집 앞에 걸어 나가는 일도, 낯선 나라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나의 작은 행위도 예사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진정 추천하고픈 책이다.
_“.... 도시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간판들, 도로의 이름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집들, 노점들, 술집들로부터 메시지를 듣는 방식은 숲속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자기 발에 밟힌 잔가지로부터, 멀리 어느 황새의 요란한 울음소리로부터, 갑자기 나타난 고요한 빈터에 불쑥 피어 있는 한 떨기 백학으로부터 메시지를 듣는 방식과 비슷하다.
내게 이 배회의 기술을 가르쳐준 도시가 파리였다. ...“_[‘플라뇌르, 또는 도시를 걷는 남자’에서]
_ ... 생각에 잠겨서 걷는 사람이나 밤거리를 걷는 사람의 속도는 다르다. 도시에서는 집 밖으로 걸어 나가는 일이 진짜 여행이 된다. 대문 바로 뒤가 위험과 추방과 발견과 변화의 공간이기 때문이다._[‘혼자 걷는 도시’에서]
_<오만과 편견>의 어디를 보나 걷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주인공은 걸을 수 없는 상황만 아니면 온갖 곳에서 걷는다.
... 점잖은 사람들(오스틴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걷는 일은 일상의 근간이었다. 잉글랜드에서 18세기 내내, 그리고 19세기 이후까지 보행은 특히 여자들에게 중요한 일상이었다._[‘숙녀와 크로스컨트리’에서]
_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이면서 자극제이다. 마음의 보행과 두 발의 보행이 묘하게 어우러진다고 할까.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마음의 풍경을 지나는 방법이라고 할까.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마음이 지나는 풍경의 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보행의 역사가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_[‘걸어서 곶 끝까지: 서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