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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평점 :
_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세계를 바꾸거나 아예 아무것도 아닌 존재거나 둘 중 하나다. 세계를 바꾼다면 아주, 아주 많은 세계가 달라질 것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선택들 하나하나가 모두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까.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고 사랑과 슬픔에는 진실이 깃들어 있으니까._p240
하루가 되풀이 되거나 여러 생을 거치며 사는 이야기들, 일정 시기가 타임루프 되는 스토리들도 많이 있는데, 같은 삶을 15번이나 되풀이 하여 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 이 배경이다.
이전 생의 기억을 가지고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태어나기를 거듭하는 해리 오거스트는 그냥 살기, 이전 기억으로 혼란스러워 정신병원에서 일찍 죽어버리기도 하고,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털어 놓지만 결국 정신병원 신세가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하는 말들은 비정상적일 거라 당시의 정신병원 치료에 대하여 다양하게 분석해 놓은 것도 흥미로운 점인 책이였다.
그렇게 외로운 세상에 있었던 그에게 ‘크로노스 클럽’이 접근해온다. 미래를 얘기하는 이상한 남자를 만나러 온 것이다. 이 세계에는 그 외에도 이렇게 생을 되풀이 하는 이들이 더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모임은 뭔가 위대한 임무를 해왔다고 믿어진다.
이런 회귀론자들이 다 같은 레벨은 아닌데, 주인공처럼 온전히 이전기억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을 ‘기억술사’라고 한다.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종족의 무자비한 심판자가 되어야 한다’는 경고가 내려오는데 이런 심판을 행하는 과정의 예는 급기야 대상의 존재자체를 지우는 수준까지 자행해져서 무척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_나는 그가 어떤 광경을 보았기에 그토록 앞날을 확신하게 되었을까 자문해 본다. 또한 다른 이들을 위해, 혹은 그 자신을 위해 일말의 용서를 남겨두었을까 궁금했다._p194
그리고 어느 날, 일흔여덟 살 까지 잘 살고 있었던 그에게 일곱 살 아이가 찾아와서, 세계의 종말을 경고하며 오직 주인공 오거스트 박사만이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선형적 시간성의 궤적이 달라지고 있고 그 원인은 우리야. 우리가 이걸 해서.”... 그렇다 이런 능력을 가진 이들 때문에 미래가 바뀌고 있고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거다. 이들이 그것을 했다는 것이다..
해리 오거스트는 해결법을 찾을 수 있을까? 해결법을 찾기 위해서는 크로노스 클럽에 대하여 더 잘 알아봐야 하는데, 크로노스 클럽의 멤버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공격이 자행되고 있다. 그 배후인물은 누구인가?
같은 생을 여러 번 산다는 것, 기원전부터 존재해왔고 이런 자들의 집단이 있어서 바로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 각 삶의 사건사고들에 대한 대응방식의 차이, 선택들 등 스토리적으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 소설 이였다. 그런데 이 책에 더 빠져들게 만든 것은, 주인공이 살게 되는 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세계사흐름과 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형태와 만나게 되는 인물들과의 대화, 그리고 생을 거듭하며 깊어지는 사유와 받아들임, 의미의 유무 등 한계와 무한반복이 동시에 느껴지는 점이였다.
아무리 생을 되풀이해서 산다고 해도 얻기 힘든 것, 같은 탄생을 반복하다가 오히러 망각해버리게 되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였다.
타임머신은 불가능하다고 과학계에서는 이미 말하고 있지만, 누구나 ‘이번 생을 다시 산다면?’ 하는 상상을 한 번 쯤은 할 것이다. 그만큼 아쉬움과 후회도 많고 우리 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을 읽으면 전혀 이 능력이 부럽지가 않다.. 망각이 축복이고 시간과 순환하며 다음 챕터로 갈 수 있는 것이 참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려고 한다. 나의 숨소리가 의미있게 느껴진다.
긴 글, 모두가 가슴에 남는 책이다.
우주의 운명을 걸고 답을 찾기 위해서 미지의 인물과 싸움을 하게 되는 주인공이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다.
_나는 기억술사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
내가 하게 되었던 선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_p193
_고독을 주의하라, 위안을 구하라, 믿음을 가져라.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밝혀지리라._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