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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낯선 담장 속으로 - 오해와 편견의 벽에 갇힌 정신질환 범죄자 심리상담 일지
조은혜 지음 / 책과이음 / 2025년 8월
평점 :
_"어쩌면 저에게 정신병이 찾아온 순간부터 제 인생의 시나리오는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몰라요. 제 안에 도사리고 있던 악마가 정신질환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행동한 거죠.“
김지석의 입에서 정신질환이 악마의 도구가 되었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꺾이고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공들여 쌓아 올린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 .... 그는 마치 자신 안의 악마를 넘어, 우리가 만든 악마와 싸우고 있는 듯했다. 내가 공을 들인 무언가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의 깊은 오해를 김지석이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지석은 그 오해를 그의 영혼에 오롯이 담고 있었다._p71
교도소에 수감 중인데.. 정신질환자이기도 하다니... 어떻게 상담을 진행해야 할까?
정신전문간호사이자 범죄심리사인 #조은혜 저자가 이런 상담 내용을 정리한 책이 #높고낯선담장속으로 이다. 저자는 교도소 내 심리치료과에서 정신질환 범죄자들의 심리치료와 재활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인의 상담내용도 불편한 지점들이 있는데, 교도소에 정신질환자라니.... 사실 선입견이 먼저 자리하려고 했었다. 아니나다를까! 이런 나의 마음을 본 것처럼, ‘정신질환 범죄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조금이나마 변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었다. 찔린다 찔려....
그렇게 들어간 세계는 확실히 일반상담과는 조금 달라보였다. 기본적으로 상담자 각각이 저지른 범죄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범죄 뒤에 있는 각자의 실체는 무엇일까? 잔혹한 사이코패스? 실수? 치료해야할 환자? 더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인자? ...
교도소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상담을 해온 저자도 이들이 저지른 범죄에게서 아주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이런 모순을 스스로 케어하면서 중심을 잡으려고 애써온 저자가 정말 놀라웠다. 역시 전문가란 이런 것인가?
범죄를 지워내면 이들은 정신질환자일 뿐이였다. 비슷한 증상이라도 표출방법은 다 다를 것인데 이들중 범죄를 풀어내는 수단으로 이용한 경우들도 있어서 읽으면서도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교도소와 정신질환이란 용어만 매칭해도 뒷걸음쳐지는 반응에 대하여 곱씹어보게 되었다. 타인의 억울함을 살펴보게 만들어 주었다.
교도소 즉 범죄자 이전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무게 있게 다가왔다. 이들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어 가는지에 대하여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일반적인 편견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전과 후가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_해나를 기억하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되어 다시 나의 내담자에게로 연결된다. 한 인격체를 마법처럼 뚝딱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버티고 버텨볼 생각이다. 무너진 피해자의 삶보다는 자신의 감옥살이를 더 염려하는 내담자의 귓가에 피해자의 곡소리가 스치는 그날까지._p167
_이지영을 무너뜨린 그 남자를 향했어야 할 원망이, 정신장애자의 정상적인 사회 복귀를 돕지 못하는 정신재활 시스템에 대한 원망이 오롯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도 아니면 정상 궤도에 오른 그녀의 삶으로 증명되었을 내 성과를 앗아간 데 대한 이기적인 원망인지도 몰랐다._p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