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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평점 :
_사람들이 산보를 많이 가는 아주 큰 광장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하얗고 어떤 사람들 머리는 녹색이나 금색이었지만 피부는 모두 다 빨간색이었다. 피부를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들의 피부는 부어오른 것이 아니라 빨간색 펜으로 글자가 쓰인 것이었다._p17
현존하는 작가 중에 이런 글을 쓰는 이가 있었다니!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헷갈리는 이 책, #영혼없는작가 는, 시작부터 이상하다(?). ‘유럽이 시작하는 곳’이 그래서 어디라고? 하고 묻고 싶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는 전개가 내 촉수를 곤두세우게 하기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너무 좋다... 이거 뭐지?
이어지는 ‘부적’ 챕터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깊은 사유가 더해져 있어서 일상과 독일생활 속의 저자를 잘 느낄 수 있었고,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 챕터 에서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라는 #다와다요코 의 낯선 독일어에 대한 기호학적인 분석과 배움의 과정, 매력 등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내 관심사이기도 해서 재미있게 읽었던 챕터다-.
이 책은 독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복간을 요청한 책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나도 ‘다와다 세계’에 입문해버린 듯하다. 사물 하나를 보면서도 두 언어로 분석하고 뭔가 비틀어져 있는 단상들, 유럽문화를 경험하고 여행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신화와 현실로 끌어오는 힘.... 매력적이다.
이런 여행길, 언제든지 다와다 요코와 함께 하고 싶다.
_책상 위에는 여성인 물건이 하나 있었다. 타자기였다. 타자기는 크고, 넓적하며, 알파벳의 모든 자모를 문신처럼 내보이는 몸을 갖고 있었다. 타자기 앞에 앉아 있으면 타자기가 나에게 어떤 언어를 제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시도 덕분에 독일어가 내 모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새로운 말엄마를 얻게 되었다._p45
_전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습관이 있다. 그들은 책을 얼굴에 바싹 대고 읽는다. .... 책을 손에 들고 잠든 사람들은 글자에서 올라오는 책 냄새를 들이마시려는 것처럼 보인다._p103
_웃음은 불안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불안이 피부 표면의 떨림이라면 웃음은 배 근육의 떨림이다. 학교 선생님은 늘 영혼은 배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내 입장에서는 영혼이-만약 내가 영혼을 갖고 있다면-머리카락 끝에 있어도 된다. 그러나 배는 몸의 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장소다._p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