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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사이
케이티 기타무라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평점 :
_누군가와 친밀한 사이가 될 가능성에 내가 평소보다 좀더 여지를 남겨두었던 순간, 그녀는 내 인생에 들어왔다. 그녀가 수다스럽게 곁을 지키고 있으면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도감을 느꼈고, 이렇게 다른 둘 사이에서 일종의 평형을 이루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_p11
‘나’는 탈출하듯 뉴욕을 떠나, 헤이그의 재판소에 일 년짜리 계약직으로 통역사 일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 아버지의 오랜 투병후 죽음으로 희망을 품는 것에 경계를 가지게 된 ‘나’는 지인의 소개로 지나치게 솔직한 야나를 만났고 자주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하지만 아직 이혼이 마무리가 안된 남자이다. 어느 날, 방문하게 된 남자의 집에서 미처 지워지지 않은 결혼생활의 흔적, 아내와 아이들... 한때 친밀했었던 관계에 대한 의미를 ‘나’에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국제 재판소이니 만큼 다뤄지는 사안들도 정치적이고 인권적인 이슈 등 민감한 것들이여서 관련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상황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 부분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 국제 재판소내의 통역사와 피고인 관계였다.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지하디스트인 서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전직 대통령의 통역사로 배정받았는데 ‘나’에게만 친근하게 구는 그에 대하여 일을 잘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지다가 이 인물의 범죄를 떠올리며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깨달은 것은 자신이 일을 잘했다기보다는 검열 없이 그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누군가를 원했고 이런 역할을 ‘내’가 했구나 하는 거였다. 방을 즉시 떠나고 싶었으나 통역사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챕터의 미묘한 친밀함은 마치 위로와 생존력이 느껴지는 듯해서 살짝 소름끼쳤다. 이런 분위기를 행동 하나하나와 대화, 속내 등으로 어색함 없이 표현해주고 있었다.
아냐 집 방문 후에 등 뒤로 들리는 찰칵 소리,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집, 국제 재판소의 통역사에게 요구되는바, 남자의 집의 흔적들과 상상이 만드는 거리감, 큰 도시에서 혼자 사는 여자로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감각들과 불안감, 사건사고들, 등을 읽으면서 차가운 공기가 책 속에서 느껴졌다. 화자의 외로움?... 친밀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보이고 주인공은 예리하게 캐치한다. 그런 중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하루하루 나아가는 주인공을 보며, 낯설지 않은 현대인이 보였다. ‘집’처럼 느껴지는 곳을 ‘나’는 결국 알게 될까? 물음표를 느낌표로 찾아가는 주인공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
#친밀한사이 에 대한 질문은 책속의 그녀처럼 오늘의 나에게도 계속된다.
_나는 생각했다 - 집에 가고 싶다. 집처럼 느껴지는 곳에 있고 싶다. 그게 어디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_p253
_제 일은 언어 사이의 간극을 가능한 한 작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고자 희망했던 힐책이 아니었다. 발언으로서 그것은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정도로 추상적이었다.... 내 일은 언어 사이에 탈출로가 없도록 단속하는 거였다._p141
_누군가가 충분한 시간이 경과했음을 내비쳤던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증인을 내려다보았는데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증언을 말한다는 위화감 대문에. 내 것이 아니라 그녀 것인 이 저라는 단어를, 포용력이 충분히 크지 못한 이 단어를 사용한다는 잘못된 느낌 때문에._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