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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엄지영 옮김 / 달 / 2025년 2월
평점 :
_'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그 말을 가슴속에 새겼다. 나는 이드 축제날의 양처럼 제단에 바쳐질 것을 알면서도 멍청한 척하며 내 운명에 맞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바보처럼 보이는 게 최고의 전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_p145
“짜증나니까, 퇴근할께요.” ..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 이 말을 뱉고 싶은 직장인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여서 제목만 봐도 속이 시원해졌다.
#메리엠엘메흐다티 작가의 소설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직장생활에 대한 것이고 챕터도 인턴 사원, 계약직 사원, 정규직 사원, 이렇게 3개로 나눠져서 진행된다.
2016년 11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었는지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 누군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면, 나는 ‘아니’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 아!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시작 문장이였다. 너무 기대되는 이 책, 이미 홀딱 반해서 시작했다.
25살의 메리엄은 여러번의 낙방 끝에 슈퍼사우루스 유한회사에 인턴으로 힘겹게 합격하여 출근하게 되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출근한 회사에서는 ... 왠걸 따분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단순업무들 뿐이다. 그렇게 커피심부름이나 하고, 출퇴근 왕복 3시간에 그저그런 점심시간 등 회사의 모든 것을 참아내면서 그만 둘 날을 꿈꾸며 다니게 된다.
순간순간 치밀어오르는 분노가 올라오지만 경력을 쌓기 위해 견디는 메리엄.... 여성인 것도 무슬림 인것도, 이민자라는 것들 까지 모두 걸림돌로 작용하는 차별과 굴욕의 사회생활이지만 이를 이기기위해서 그녀는 팬픽션을 쓰기 시작했다. 이 팬픽션은 책의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데 이 글 속의 화자는 현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세상에 맞선다. 직장 내 괴롭힘, 인종차별, 성차별, 상사가 주는 굴욕 같은 것들도 글 속에서는 훨씬 날카롭게 꼬집고 최선을 다해 반항한다.
시간이 지나며, 메리엄은 지난한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지나오면서 결국 살아있다는 것은 일련의 고통과 실망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배워간다. 이제 그녀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 꿋꿋이 버텨내는 존재로, 갓 입사했을 때와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_퇴근 후 집에 돌아갔다가 다음 날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예전에는 내 적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겠다. 회사에 있는 게 끔찍이도 싫지만 그만둘 생각은 없다._p363
K직장인이라고 예외일까! 깊이 공감되는 메리엄의 직장생활을 함께 분노하고 ‘그냥 그만둬’ 하며 그녀에게 외치면서 읽게 된다. 하지만 우리도 안다. 그 안에도 사람들이 있고 내 삶이 있다는 것을.... 비록 이 회사를 내가 물려받을 일은 없지만 우리 각자의 인생을 위한 여정으로 잡아갈 것들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타성에 젖기 전에....
메리엄의 팬픽션과 현재를 응원하고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을 격려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_고백하자면 나는 애초에 고요한 바다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 아니다. 내 안에는 언제나 어떤 분노가, 어떤 원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하지만 분노조절장애를 걱정해야 할 수준은 아니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보라, 지금도 활짝 웃고 있지 않은가._p13
_'누군가 지시하면, 다른 이가 처리한다.‘
회사의 모든 곳에서, 모든 직급에서, 업무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런 방식을 혐오했다. ..... 하지만 어쩌다 딱 한 번, 나에게도 지시할 기회가 왔고, 해보니 나도 익숙해질 것 같았다. 그 익숙해진다는 감각이 회사생활의 가장 큰 문제였다._p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