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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20주년 기념판 양장본)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24년 10월
평점 :
뉴욕에 사는 헨렌 한프는 희귀 고서적을 애정하는 가난한 작가이다. 특히 절판 서적이나 고가의 희귀 고서는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지내던 중에 우연히 토요문학평론지를 통해 영국의 희귀 고서점의 절판 서적을 전문으로 다룬다는 광고를 보게 된다.
그렇게 한 권당 5달러가 넘지 않는 중고책으로 조건을 붙여서 절박하게 구하는 책들의 목록을 이 서점으로 보내게 된다. 맨처음 편지를 쓴 날짜는 1949년 10월 5일, 이 때의 유럽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든 것이 부족했었던 때였다.
런던 채링크로스가 84번지, 마크스 서점 관리인 프랭크 도엘, FPD가 같은 해 10월 25일에 답장을 보내면서 이들의 교류가 시작되게 된다.
_리 헌트의 수필은, 쉽지는 않겠으나 부인께서 원하시는 목록을 모두 갖춘 탐스러운 서적으로 구할 수 있는지 애써보겠습니다. 저희 서점에는 부인께서 말씀하신 라틴어 성서는 없지만 라틴어 신약이 있고, 그리스어 신약도 있습니다.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판형에 헝겊으로 장정된 것입니다. 이 책들도 구매하시겠습니까?_p11
헬렌은 책들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가감없이 적고 있었고, 프랭크는 헬렌의 투정 비슷한 말들까지도 특유의 예의 바른 어투로 친절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도서에 대한 설명이나 추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오고가는 내용이 더 정다운 이유는 책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온전히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박한 지식들과 뚜렷한 주관들이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더불어, 세상사는 재미가 이거지 하고 느끼게 했었던 것은 바로 서점의 다른 직원들의 편지들이었다. 때로는 프랭크 몰래, 귀했던 식료품들을 선물로 보내준 헬렌에 대한 고마움을 진심을 다해 전하고 있었다. 바다를 건너며 오고가는 마음들이 애틋하고 감동적 이였다. 너무 멀리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영화로 먼저 만난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너무 좋아~ 하면서 봤었는데, 책으로 만나니 그 느낌이 더 섬세해졌다. 두 사람외의 다른 이들의 스토리가 더 자세히 들어와서 ‘맞아, 헬렌은 마크스 서점 전부와 소통을 한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만났으면 좋았겠지만, 어쩌면 헬렌이 너무 늦어버려서 그 여운이 더 짙어졌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헬렌의 친구가 런던방문시에 이 서점을 들른 후에 보낸 편지 속의 서점에 관한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든다.
_소중한 친구야, 디킨스 책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고색창연한 멋쟁이 서점이더라구나. 직접 와서 보면 너도 완전히 넋을 잃을 거야.
외부에 진열대가 있길래 우선 발길을 멈추고 이것저것 들쳐보면서 구경꾼 태세를 갖추고 나서 방랑을 시작했지. 안은 어둑어둑해서 눈에 보이기 전에 냄새가 먼저 손님을 반기더구나. 참 기분 좋은 냄새야.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먼지와 곰팡이와 세월의 냄새에, 바닥과 벽의 나무 냄새가 얽히고설킨 냄새라고 하면 될까...._p52
책에는 프랭크가 죽은 후에 그 가족들이 보낸 편지들로 마무리 되어있는데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혀졌다... 사람 사는 일은 이래야 되는데... 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준 책이었다. 영화도 책도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