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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존재하는 인간 ㅣ Endless 3
정영문 지음 / &(앤드) / 2024년 7월
평점 :
_잠을 한숨 자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나는 단 한 번도 순순하게 기분이 좋은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기분이 좋을 때 조차도 기분이 나빴는지도 모른다. 한 초라한 노인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 어디서 그러한 당당함이 나오는지, ..._p136
주인공의 독백으로 채워진 #겨우존재하는인간 에는, 산다는 것에 지독한 의문과 권태로 미칠 것 같은 그의 내면이 가득하다.
살아있는 내 존재에 대한 무력감에서는 분노도 보인다. 실존주의의 그것과 비슷하게 읽히는 소설은 현대 시대상과 맞물려서 훨씬 더 시니컬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은 그저 권태로운 인간으로 살고 있다. 삶 자체도 무가치하게 여기며 시간을 보내며 언젠가 만났던 원숭이 같이 생긴 자와 대화(?)를 나누고 - 주로 그 남자의 이야기 - 잠깐 동일시되었다가, 길을 걷는다.
반토막만 남아서 꿈틀거리는 지렁이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끌려나간 여행지의 모래사장에서 의식을 넘나드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다.
죽음?! 죽음은 어느 페이지에도 빠지지 않는 베이스다. 실존을 묻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권태가 늪처럼 이어지는 일상이 이어지다, 주인공을 죽일 생각으로 뒤쫓았다는 한 남자를 만난다. 아무런 동기도 없는 살인충동이 그 남자도 당황스러울 뿐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살인자라고 고백한다. 아내를 죽였다는 이 사람에 대해서 주인공이 살인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목을 조른다......
그는 누구였을까?
주인공은 미칠 듯한 권태로움을 살인으로 풀어낸 것일까?!
아마도 해답은 읽는 각자가 다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 남자도 주인공도 모두 서로를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을까 하는 것이다. 여전히 끔찍한 삶이라고 외치는 주인공은 그렇게 하나씩 자신의 무언가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오랜만에 정통 실존주의 소설을 다시 읽은 듯한 시간이였다. 죽을 것 같은 허무에 빠져 있을 때, 오히려 이런 책이 도움이 되는 것은 왜일까?! 여전히 나도 그 중간 어디에서 줄을 타며 살고 있는 중이다.
_나라는 존재는 시간이라는 간수의 손에 의해 어제로부터 오늘로, 오늘로부터 내일로 끝없이 이감되고 있는 죄수일 뿐이다. 그것만이 내가 이 세상에 속해 있을 수 있는 방법이며, 동시에, 내가 그것과 무관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가? ..... 아아, 삶의 끔찍함이여, 그 끔찍함마저 없다면 단 한 순간마저도 살아 있기 힘든, 끔찍한 삶이여._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