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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수 있는 세상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평점 :
_.. 트롱프뢰유의 세상은 진짜는 아니지만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갇힌 거짓 혹은 환영과도 다르다. 두 단계를 포함하는 트롱프뢰유 때문에 갈등하는 케이트 앞에서 폴라가 하는 말처럼, <상상하는 데> 쓰일 수 있다._p347
현대 프랑스 문학을 뒤흔들고 있는 소설가라는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닿을 수 있는 세상> 의 한 문장이다.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개념은 바로 ‘트롱프뢰유’ 인데,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 기법을 배우기 위해 장식 미술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배우는 과정은 힘들지만 붓을 들고 세밀하게 그리면서 감각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실패를 겪고 이겨내고 다시 시작하면서 이 과정들을 지나오지만 작업 의뢰를 가져오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보수로 고민하는 등등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다 만난 라스코 동물 벽화 재현 의뢰! 이 ‘궁극의 복제’ 에 도전하며 ‘닿을 수 있는 세상’ 에 대한 염원을 풀어내며 섬세하게 빠져들게 된다.
소설이라기보다는 ‘트롱프뢰유’ 기법이 주인공인 것 같았던 책이였다. 등장인물들의 시선과 느낌, 감정과 생각들이 주변풍경과 함께 세밀하게 묘사되며 이야기가 흐른다. 마치 의식의 흐름대로 읽어간 느낌이랄까...!
‘본다’ 의 의미, 그리고 이것을 ‘닿을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면서 성장하는 주인공의 변화들, 그리고 이 시선들을 우리들의 일상으로 가져오면서 달라보이는 내 공간과 작업들... 이런 흐름으로 내게 다가온 독특한 소설이다.
개인취향에 따라 호불호는 있을 것 같고, 탐미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좋아하는 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도서다.
_트롱프뢰유는 그림과 시선의 만남이죠. 트롱프뢰유는 특수한 시점을 위한 그림이고, 원하는 결과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됩니다._p37
_<본다>는 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행동을 개시하는, 시선이 뇌 속에 만들어 놓은 것과 유사한 이미지를 종이 위에 창조하는 것이다._p59
_중세 도시 뒤로 19세기 뉴욕의 변두리, 석조 저택들 뒤로 목조 가옥들의 거리가 나타난다. 대륙이 바뀌고 두 시대가 포개진다. 장면들이 맞서고 겹치고 찍어진다. 폴라가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그녀를 통해 두 세상이 이어진다._p221
_폴라는 곧 자신의 이야기를 역사의 한 순간으로 동기화하고, 동굴이 있는 언덕을 그 언덕을 둘러싼 세상에 봉합한다._p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