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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_"머릿속에 있던 건 그 사람이야. 너 그런 거 알지, 윌리? 돌연,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을 때 떠오르는 거. 그 끔찍한 러드킨 중사야, 윌리.“
어머니는 그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며 리버풀의 채소 가게에서 그가 학살을 자행한 장본인이란 걸 모르는 손님들에게 농산물을 파는 모습이 상상되느냐고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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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사람이 된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_p114
아일랜드 소도시 페르모이의 킬네이 저택에 사는 퀀턴가는 아일랜드과 영국 남녀가 만나서 이뤄진 집안이고 국경을 넘는 사랑을 이룬 집이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아일랜드 독립을 막고자 영국이 보낸 ‘블랙 앤드 탠즈’의 사람이 이 킬네이 저택에서 죽음으로 발견되고 학살에 휩쓸리게 되면서 급격하게 비극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예상치 못한 큰 운명적 사건을 겪은 후의 퀸턴가는 폐허가 되고 가족들을 악몽 같은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다 또 필연적 사랑이 시작이 되고......
우리가 극복 가능한 삶의 시련은 어디까지일까?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발생된 큰 사건이나 환경적인 요소들로 인해 발생된 변화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와 같은 것들이였다.
정말 제목 그대로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비극은 반복되고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절망과 아픔에 여운이 짙게 남는 소설 이였다. 이와 함께 알고는 있었지만 많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일랜드의 역사적 애환을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과격한 독립투쟁으로만 알고 있었던 아일랜드였는데, 이 소설에서는 이들을 탄압하는 영국의 잔인함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무자비한 운명 속에서도 따듯한 온기가 있었고 깊게 남는 여운에 한참을 가만히 있게 만드는 문장들이였다. 무기력하게 만드는 운명의 꼭두각시로 살게 되는 우리네지만 반드시 얻어가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소설이였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궁금하다. 적극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_언젠가 난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언제라도 킬네이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_p131
_모든 두려움과 도덕이, 세상의 모든 잣대가 내게서 사라졌다. 난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당신이 알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당신이 알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면 당신이 적어도 약간의 위안을 얻을지 모른다는 것 말고는. 난 램프를 화장대에 올려놓고 당신 이름을 불렀다._p198
_군인들의 학살 이후 킬레니가 그랬듯 그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_p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