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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 한 언어심리학자의 자아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
줄리 세디비 지음, 김혜림 옮김 / 지와사랑 / 2023년 4월
평점 :
_.. 작은 내 인생에서의 체코어 상실이 모국어의 대체 불가능성을 뼛속까지 사무치게 느끼게 해주었다면, 모국어 멸종을 마주한 사람들이 겪는 상실감은 절대로 내가 손을 내밀어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종류다.
언어 상실의 중심에는 잔인한 역설이 있다. 한 언어의 약화는 종종 더 나은 삶-풍요, 안전, 주류 문화로의 진출-을 향한 꿈으로 야기된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수천 개의 언어 중 단지 몇 가지만이 사회에서 대접받는 위치와 특권을 누린다.
세력이 약한 언어 사용자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정신에서 이들 우세한 언어에 자리를 양보하는데, 실제로는 더 나은 삶과 자신의 정체성을 맞바꾸는 것과 다름없다._p13
이중언어, 다중언어가 가능하다고 하면, ‘와, 능력자!’ 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전부이다. 살짝 더 나아간다면 그들은 해당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좋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이 책,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을 읽기 전에는 말이다.
체코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성장기를 보냈다는 저자 줄리 세디비는 체코어, 프랑스어, 영어 등 여러 언어들을 삶속에서 경험해온 언어학자이자 작가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부터 시작한 개인사를 꿈, 이중성, 갈등, 회복, 고향의 챕터로 자전적으로 써내려가며, 동시에 적재적소에서 언어를 다각도로 분석해놓았다. 특히 두 개 이상의 언어문화에 노출되어 있는 환경에 대한 내용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참 흥미로웠다.
언어의 우열, 언어에 따라 생각 메카니즘이 달라지고 빈부격차가 있다는 것, 언어의 소멸이슈, 어떻게 트랜스랭귀지를 학습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다시 살아났다는 히브리어, 그리고 그 의미와 자세한 설명... 등 재미있고 학구적인 내용들이 많아서 하나도 그냥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태어난 환경, 자라난 환경에 따라 언어가 인간의 자아 형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와도 같은 내용이였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그 당사자여서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들이 묻어있었던 점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관계의 단절, 정체성의 단절을 언어로 찾아나선 저자는 결국 화해를 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이 자전적인 이야기는 계속 진행 중이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관점과 함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이 우리 자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에 대한 답변을 찾아볼 수 있는 책이였다. 곁에 두고 자주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_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내겐 체코어와의 연결 고리도 사라졌고, 그것은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섹션이 소리를 내지 않는 것과 같았다._p11
_영어에 독일어 단어 샤덴프로이데(남이 불행에 대해서 갖는 쾌감)와 똑같은 단어가 없다는 것이,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 고소함을 느낄 때가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_p57
_언어의 가치에 대한 저평가는 그 언어 사용자에 대한 가치 판단이 녹아 있기에 그만큼 강력하다._p102
_하나 이상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 중 많은 이들은, 각각의 언어에서 자신이 약간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느낀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천 명이 넘는 이중언어 혹은 다중언어 사용자에게 이렇게 느끼냐고 물었더니, 3분의 2가 그렇다고 답했다._p127
_다른 언어들이 들어와 압력을 가하면, 기존의 언어는 이에 반응하여 윤곽을 바꾼다. 그리고 그 다른 언어가 후퇴하면 모국어가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 한다._p178
_.. 진실을 말하자면, 거의 모든 내적인 삶은 어떤 형태로든 깊은 골짜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골짜기의 양끝을 연결시켜 주는 다리가 필요하다._p213
_나는 조상의 땅을 뒤로하고 와야 했다. 그러나 정원에서 일하면서 많은 유산을 캘거리로 가지고 왔음을 깨달았다. 그중 하나는 조상들이 땅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_p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