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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원의 시계방 ㅣ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평점 :
_오히러 상자의 가벼움은 노인 삶의 끝없는 무거움을 가리켰다. 왜냐하면 사실 생이란 가벼울수록 글로 적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무거운 삶일수록 글자보다는 행간이 더 많이 필요했는데, 노인의 글쓰기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했다._p202
_그렇게 자의식을 가지게 된 뒤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울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인공지능일지라도 자신의 모습은 궁금한 법이니까요. 그런데, 거울 속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_p305
인간의 시간, 불멸, 존재에 관한 의문은 언제쯤 끝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물리학자들은 타임머신의 가능성 없음을 이미 말하고 있음에도, 후회로 가득한 과거를 고치고 미래를 다시 쓰고 싶은 열망은 없어질 수 없는 모양이다.
시간회귀의 주제에서 시작하여,
내 손끝 하나에 세상이 달렸다면?
순수한 인간의 시기를 지나, 육신의 소멸과 의식의 불사를 위한 기계와의 합체를 다룬 내용,
우주에 남겨진 우주비행사의 꿈..
악몽의 정의에 섬뜩한 새로운 해석,
언젠가 영화에서 접했었던 오토마톤이 언급되는 자동인형의 글,
이상한 잡지가 나오는 음모론이 떠오르는 단편에, 인공지능까지...
과학기술이 호러와 어울려져서 완성된 김희선 소설집, <빛과 영원의 시계방>이다. 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욕망이 적절히 뒤섞여 있어서, 나와 멀리 있을 것 같지 않은 가능성 때문에 한편씩 끝날 때 마다 여운이 깊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 어디쯤에 이미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 속의 문장처럼 ‘길이 반드시 한 갈래로만 뻗어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말이다.
_“길이 반드시 한 갈래로만 뻗어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길은 여러 갈래일 수 있고 한 사람이 동시에 그 길을 모두 걸을 수도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_p43
_적막 속에서 화면은 점차 검게 변하고, 그 중심에 ‘종료’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아아, 이제 끝이구나.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리는데 천천히 눈이 감겼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잠이 찾아온 것이다._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