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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ㅣ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평점 :
<태풍의 계절>.... 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적나라한 표현들에 화들짝 하다가 그 솔직함에 ‘그래 이래서 내가 라틴문학을 챙겨읽지..’ 하며 문장을 삼키고 넘기고 하며 봤다. 책 속 마을에는 ‘마녀’ 가 산다. 어머니 마녀가 있고 그 딸도 마녀가 되었다. 보니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는 거기에서의 역할이 어느새 약속이 되어 이어져 오는 것 같다.
숙명적인 고통과 불면증, 산자와 죽은 자의 매개, 다른 여자들의 모함, 이상한 우연들의 사망사건들, 이것 때문에 더 깊어진 의심들...... 여기 인물들은 끈질긴 가난의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정적이지 못한 현실은 이들의 문제들의 기조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원망을 타인에게서 찾는다. 제일 만만한 상대가 마녀 모녀였을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런 마녀의 죽음이 각 인물의 숨은 이야기를 표면으로 나오게 하는데 폭력과 성으로 점철되어있었다. ‘어떤 리얼리즘은 악몽보다 깊다’ 는 슬로건의 소설은 설마 이것이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로 끔찍하다. 사람들의 정신은 더 그렇다.
우리가 소설의 사실여부에 대한 의구심에 빠져있을 때, 미 소설의 배경인 멕시코 베라크루스에 살았다는 독자가 리뷰에서 “나는 그곳에 살았었고, 이 소설에 묘사된 폭력은 전혀 과장돼 있지 않다” 라고 썼다 하니, 실재가 훨씬 끔찍할 수 있다는 것을 읽는 이는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한 호흡에 읽을 수 없는 소설이다. 요란한 이런저런 리얼리즘에 대한 말들을 한다고 하더라도, 다 몰라도 된다. 이 지독한 글을 다 읽었을 때, 현실의 비정함과 빈곤이 어떻게 인간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어떻게 극단으로 상황을 몰아갈 수 있는지, 마녀의 역할은 이들에게 무엇이였을까 만 잡고가도 훌륭한 독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글과 차이가 있는 것 같았는데, 멜초르의 이 소설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유사한 글로 ‘족장의 가을’을 들 수 있다고 하니 일단 리스트업 해놓았다.
다 읽은 것은 이틀 전이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적나라한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라틴문학을 좋아한다면 필독서가 되겠고, 접해보지 못한 이라면 이 책을 보기 전에 워밍업으로 다른 좀 더 부드러운 라틴아메리카 단편들부터 보기를 권하고 싶다.
_....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서러움과 아픔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려고 마녀를 찾는 아낙네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그런 이야기가 떠돌아도 마녀는 가만히 듣기만 할 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녀가 자기 남편을, 다름 아니라 나쁜 놈으로 악명이 높던 마놀로콘데를 죽였다고, 그것도 그 망할 놈이 가진 돈과 집과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수군 거렸다._p17
_이제 더 이상 엄마를 슬프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르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를 도와야 했다. 노르마 없이 혼자서 빽빽 소리를 질러 대는 저 녀석들에게 둘러싸인다면 엄마는 미쳐 버릴 게 분명했다._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