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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그단스크 - 낯설지만 빛나는 도시에서
고건수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12월
평점 :
_.. 그단스크는 복원을 택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고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는 것이 폴란드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직접적으로 보이는 건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마중물이었다. 오랜 기간 꼼꼼하게 복원 작업이 진행됐다.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의 조각 하나도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_p71
어떤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그곳의 역사도 함께한다는 것인데, 생각지도 못한 여정으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낯선 도시이름에 그저 색다른 풍광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겠지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세계대전 때의 독일의 흔적을 지워내는 과정까지 자세하게 접할 수 있어서, 도시의 건축물이 갖는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바로 이 책이, 고건수 건축가의 <이를테면, 그단스크> 이다. 그단스크는 폴란드에 있는 도시다. 처음 들어본 곳이였다. 이외의 도시들도 낯선 장소들이였는데, 1부 소설이 된 도시 파트에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가 그단스크와 함께하고 있었고, 2부 안목과 애정이 깃들면 파트에서는 슬로베니아의 규블랴나, 네덜란드 힐베르쉼, 라트비아의 리가 가 들어있었다.
마지막 3부 비로소 열린 내일 편에는 크로아티아의 리예카와 프랑스의 릴-메트로폴 이 소개되어 있었다.
각 파트의 주요주제를 언급하자면, 1부에서는 파괴와 복원의 역사가, 2부는 매력적인 공간들 위주로, 3부는 버려졌던 공간을 살려낸 이야기에 관한 내용이다.
하나같이 눈을 뗄 수 없는, 사실에 입각한 스토리텔링에. 단숨에 다 읽을 수 있었던, 재미있는 건축/역사 관련 도서였다. 때론 여행을 하고 있는 듯 했지만, 건축물들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정말 매력적이여서 그저 터덜터덜 걷기만 하는 여정이 아니여서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1부의 도시복원원칙과 과정이 인상적이였고, 우리나라의 발전위주의 도시개발역사가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그리고 베니스가 생각났던 류블랴나의 삼중교와 중앙 시장을 가보고 싶어졌다. 논란이 많지만 도서관이라는 이유로 라트비아 국립 도서관도 호기심이 생겨서 궁금해졌다.
독특한 라 피신 미술관도 당연히 리스트업 해놓았는데 이 곳은 수영장을 미술관으로 바꾼 곳으로 물의 움직임이 작품에 다른 얼굴들을 부여하는 것들을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전시장이다. 그 분위기만으로도 압도될 것만 같다.
읽는 내내 참 흥미로우면서도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독서였고, 도시가 어떻게 얼굴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사유를 폭넓게 해볼 수 있었다.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_같은 설계를 하더라도 디자이너의 안목과 애정이 깃들면 건물뿐만 아니라 주위 분위기도 함께 살아난다._p142
_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해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좋은 건축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다._p231
_라 피신이 다른 리모델링 프로젝트와 조금 다른 건 공간에 변화를 담고 있어서다. 아침과 저녁을 상징하는 스테인글라스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은 수조에 반사되어 양쪽에 나란히 선 조각상들을 비추어 길쭉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신전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조각의 그림자와 채도가 달라지고, 일렁이는 수조에 사물들이 반사되어 생동감이 더해진다._p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