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언제쯤 여성서사에 대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언제 작가의 성별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공평한 대우와 평가가 가능할까?
기술력이 급속도로 발전 중인 현대사회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정도의 차이일 뿐, 여전하다. 가장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패러다임들 중 하나인 것 같다.
문학분야에 적용하여 이런 문제의식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었던 <다락방의 미친 여자>. 대상은 19세기 여성 작가들이였으나, 읽다보면 지금도 진행중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어서 씁쓸하고 허탈해지기도 한다.
왜 19세기인가 하면, 이때 제인 오스틴, 메리 셀리, 샬롯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핀치,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 등 굵직한 여성작가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친숙한 이름들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모두 개성있는 문체와 세계관으로 지금까지도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문학박사 정희진은 추천사에서 “‘19세기 여성 작가’는 일종의 렌즈다. 이 렌즈를 통해서만, 우리는 근대는 물론, 인류 문명사 전체에 다다를 수 있다. 필독서란 이런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었다.
책으로 영화로 많이 접해보았던 작품들의 해체를 이 책을 통해서 맛볼 수 있었는데 논문을 몇 편 읽은 기분이다. 하나하나 다 이해하고 자세히 읽었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브론테 자매 와 같이 친숙한 작가들에 대한 내용은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훌륭하다 평가 받았던 동시대 남성작가들 조차도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사에 깜짝 놀란 부분도 많았다.
그리고 기억에 많이 남는 부분은 소설 쓰기와 시쓰기에 대한 성차별적인 고전적 생각들이었다. 아래의 본문 글을 함 읽어보시라.
_시인과 비평가가 대대로 생각해왔듯 소설 쓰기는 시 쓰기만큼 엄격한 고전 교육을 요구하지 않고, 산문-소설 쓰기에서는 서정시를 창작하는 것만큼 자아를 주장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아마도 여성 문인들이 시보다 소설을 택하게 만든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여자는 대개 자신을 버리도록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울프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었듯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개인적 관계’를 의식했다.
울프의 말마따나 사실상 ‘19세기 초에 여자가 거친 모든 문학적 훈련은 인물 관찰과 감정 분석이었다.’ 따라서 재능 있는 여자는 시보다 소설을 쓰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고, 말하자면 죄책감을 덜 느꼈을 것이다. 어떤 의미의 소설가는 ‘그들’ 이다. 그녀는 일인칭 서사를 쓸 때도 삼인칭으로 작업한다. 그러나 시인은 삼인칭으로 쓸 때조차 ‘나’를 말한다._p930
1000 페이지가 넘는 도서를 이렇게 한 달 동안 읽으면서 냉정과 분노 사이를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다 이해하지 못한 내용은 추후에 종종 열어서 보겠지만, 지금도 현재형으로 읽힌다는 점이 무척 유감스러웠다.
부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조만간 그냥 옛날이야기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며, 문학사, 사회변천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_여성의 순백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도상학은 우선 가장 뚜렷하게 여성의 순수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과 관련된다. 밀턴의 ‘죽은 성자 같은 아내’처럼 집 안의 천사는 흰옷을 입은 여자이며, 여자의 순종적인 순결은 미혼 여성의 창백함, 대리석 같은 이마,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눈이 은유하는 날개를 통해 명시되었다.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며 아직 깨어나지 않은 그녀는 자아를 주장하는 의식이나 자아를 만족시키고 싶은 욕망를 드러내지 않는 순수하고 하얀 얼굴빛을 띠고 있다. 그녀의 뺨이 분홍색으로 빛나면 그것은 관능성의 분출이라기보다는 순수함의 홍조로 빛나는 것이다._p1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