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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평점 :
_홍차나 녹차를 주로 마시던 나희는 달고 고소한 차가 주는 맛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이른 하침 나룻배를 타고 찬찬히 물길을 가르며 가는 길에 녹차가 있다면, 땅콩차는 햇살이 가득한 어느 오후의 공원으로 나희를 데리고 갔다. 차는 그렇게 공간이동의 비술을 부렸다.
“뭐든 물을 부어 마시면 그게 차다.”
나희는 이후 모든 것이 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위광에게 배웠다._p51
전설의 청요리집, 건담싸부의 요리 인생을 담은 소설 ‘건담싸부’.
이 음식점이 잘 되던 때부터 시작해서 위기, 극복의 스토리까지.... 전체적인 맥락은 굉장히 익숙한 구조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플롯도 탄탄하고 요리들, 식재료 등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무척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재로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내 머릿속에서는 자꾸 나의 냉장고 안을 떠올리게 했고 ‘계란탕을 할까?’, ‘오늘은 중화요리를 주문할까?’, ‘아 콩소메 수프가 먹고 싶다.’, ‘달달한 후식은 뭘로 챙기지?’ 등등 먹을 것 생각으로 가득하기 일쑤였다. 음식들이 나오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다 재미있었다. 덕분에 뜻밖의 체중증량에도 일조한 시간이였다. ㅎㅎ
이런 화려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가게를 닫게 된 건담 싸부, 위광이 이 시기를 보내는 페이지들이였다. 오롯이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살았던 이에게 그 길이 막혔다고 느껴졌을 때는 얼마나 큰 절망이 찾아올까? 보물처럼 여기던 것들을 다 놓고 떠나는 기분은 어떤 것이였을까? 아니나다를까 생명과도 같은 후각과 미각을 잃고 폐인처럼 외롭게 지내게 된다.
여기에서 주목한 것은 이런 상황일 때, 그를 일으키게 되는 요소들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이들이 마련한 새로운 음식과 그들의 방문들, 그리고 변화에 대한 결심과 실천이였다. 평범하지만 막상 닥친다면 쉽게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럴 때는 좋은 자극을 주는 요소들이 필요하고 옆에서 가만히 다독여주는 이들이 필요하다. 정성을 다하는 그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내 안에서 나아갈 에너지가 생겨나는 것 같다.
결국 인생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였다. 뜻밖에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었고, 오랫동안 기억이 날 것 같은 책이다. 적극 추천하고 싶다. (다만, 먹고 싶은 음식이 많아질 수 있다.)
_그곳에 위광의 보물들이 있었다. 상추와 대파 같은 채소가 심긴 화분들, 그 옆으로 장이 익어가는 장독대가 있고 작은 평상과 빨랫줄에는 찌고 말리는 과정을 지나가는 나물과 전복과 해삼 같은 건화가 사시사철 널려 있었다._p47
_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손님들을 바라본다. 어느 비싼 그림보다, 어느 멋진 영화보다 좋았던 풍경. 그 풍경이 벌써 그립다. 먹이는 것은 행복이었다. 먹는 이의 허기를 달래고, 혀를 기쁘게 하는 일로 내내 즐거웠다. 의자를 문밖에 내놓고 오가는 손님에게 감사와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노년을 상상했었다._p246
_계속 그들이 온다.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 밥을 먹고 사라진다. 병이 왜 찾아왔는지 모르듯 이 방문이 왜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종종 넷이서, 어쩔 땐 셋이서 식사를 했다. 같이 먹는다._p280
_"요리는 먹이는 일이다. 무슨 말인 줄 알아?“
“먹이는 일이요?”
“맛있게 만들어 내는 거, 그걸로 솜씨를 뽐내고 칭찬을 듣는 거.... 그런 건 저 아래에 있는 거다. 속이지 않고 좋은 재료를 쓰고, 적당한 값을 받고, 청결하고, 그 마음도 깨끗한 거.....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이지. 요리는 거기다가 누군가를 먹인다는 마음, 베푼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진심이 있어야 진짜 요리, 최고의 요리가 나온다.”_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