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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_날렵한 눈썹, 탐스러운 붉은 입술, 당당한 표정과 대담한 자세까지, 덴마크의 화가 게르다 베게너는 릴리 엘베라는 이름의 이 사람을 정성을 담아 그려냈다. 당연했다. 릴리는 게르다가 사랑하는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편! 릴리는 다시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였다. 도대체 게르다와 릴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_p68
_“이곳을 봐. 흑인이 하나도 없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흑인이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야.”
미국의 ‘흑인’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는 어느 날 여자 친구와 함께 미술관에 가서 이렇게 얘기했다._p28
_이러한 장애가 순결함의 조합은 헬렌 켈러처럼 ‘거룩한 성처녀’ 같은 분위기를 뿜어낸다. 그 덕분일까. <눈먼 소녀>는 대중들에게 편안하게 받아들여졌고, 1857년에는 리버풀 아카데미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_p43
여러 가지 예술작업들 중에서, 인간의 욕망을 한 눈에 보이게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것은 미술품인 것 같다. 사회적 편견과 비판의식은 더 그러할 것 같다. 이런 내용을 아주 잘 다루고 있는 이 책, <기울어진 미술관>.
인종차별, 그림 속의 장애인, 성소수자 예술가, 미술작품 속에서 약탈당하고 있었던 흑인의 몸, 여성의 몸, 노동력 착취, 권력의 정당화, 오랫동안 구경거리 역할을 하고 있는 동물, 등,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거의 다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림 그대로만 보다가, 작품배경을 알게 되었을 때는 불편해지기 시작하다가, 저자의 더 깊이 있는 설명까지 더해지면 감상을 넘어서 인문학, 사회학으로 그림들이 내게 쑥 들어온다. 이런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해준 책이였고, 많은 북마크 표시를 남기게 된 내용이였다.
그리고 어렵게 쓰여져 있지도 않아서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점이 무척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적극 추천하고픈 예술서이다. 많이 배울 수 있고 끝나지 않은 싸움에 대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있다.
_피터르 얀선스 엘링가가 <네덜란드 집의 내부>를 그렸던 17세기부터 해나 컬윅이 살았던 19세기를 거쳐 우리가 사는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이다._p143
_인간이 만든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가족과 분리된 채 좁은 공간에 갇히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행동을 강요받는다. 아무리 ‘동물보호’라는 거창한 명목이 붙어도, 기본적으로 동물원은 사람을 위한 공간, 인간의 ‘보는 즐거움’을 위한 곳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현대적인 의미의 동물원이 세워지기 전부터 동물은 인간의 쾌락을 위해 이용당했다._p213
_마침 프리깃함의 포구에서 출발을 알리는 대포가 불을 뿜는다.
그러나 이 장엄한 시작에는 관심 없다는 듯 바다는 잔잔하다. 포구에서 나온 연기조차도 그대로 반사될 정도다. 작은 어선에 탄 이들도 프리깃함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무심히 자기 일을 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그림 빛깔도 전체적으로 무채색에 가깝다._p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