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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임이랑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8월
평점 :
_환희의 순간에 환희를 느끼고, 모퉁이를 돌아 만나지는 기쁨을 의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불행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방식의 각도를 틀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디자인되지 않았으며, 아직도 충분히 나를 다스리지 못한다._p163
_잠의 세계는 고귀하다. 어떤 낮을 보냈든지 밤의 잠은 모든 것을 씻어준다. 나는 ‘잠은 죽어서 자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라 수 없다. 잠이 없이 삶이 계속된다면 머릿속이 얼마나 엉망징창으로 얽히고 꼬일지 상상만으로 소름 끼친다._p147
_그렇지만 쓰는 행위의 즐거움과 별개로 생각과 욕심이 많은 나는 자꾸 뻣뻣해진다. 더 이상 첫 번째 책의 운과 두 번째의 책의 수월함에 기댈 수 없는 상황 앞에 놓였다는 진진한 마음으로 뻣뻣하게 뱉어낸다. 불안은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매번 새로운 모습을 하고 예상하지 못한 구석을 찌르곤 한다._p125
이 작은 책에 촘촘히 북마크를 표시해 놓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 글 속에서 나를 많이 발견했던 모양이다. 삶과 생각을 넣어놓은 일상에세이인데, 이렇게 촘촘히 읽은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선천적으로 불안이라는 요소를 짙게 가지고 태어난 듯한, 임이랑 작가는 ‘불안’을 다루기 위해서, 창작활동을 하고 일상의 루틴을 세우고, 식물을 돌보고,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깊어지고 있었다.
무조건 감상적이기도 않고, 전적으로 비판적이지도 않은 내용과 문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하게 만들기 충분했고, 물렁하지 않은 그의 정신세계와 다재다능한 면면이 무척 마음에 든다. 무조건적인 위로나 격려보다 용기가 더 많은 글이라서 다음 단계를 나아갈 수 있게 해줘서 참 좋았다.
제목보다 본문 내용이 훨씬 좋은 에세이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어쩌면 가을에 어울리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_내 식물은 내가 필요하다는 느낌. 나는 이 식물들 때문에라도 조금은 더 이 세계에 발붙이고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는 기분을 좋아한다. 내 눈에 극명하게 보이는 내 식물의 기분은 타인의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_p71
_창작자라면 누구나 ‘너무 안 써지는 시기’를 마주한다. 그렇지만 ‘너무 잘 써지는 시기’라는 건 없다._p88
_'어휴! 이런 나로 사느라 내가 정말 고생이 많다.‘ 스스로 되뇌며 바닥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제습기 필터를 물에 씻은 후 책상 앞에 앉는다. 결국 다들 잠든 고요한 밤이 되어서야 드디어 쓸 준비를 마친다._p108
_좋은 순간이 올 거예요.
약속해요. 분명히 다시 찾아옵니다.
그 순간에 가닿기까지는 제가 여기에 서 있겠습니다._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