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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월
평점 :
‘에릭 와이너’, 이 작가의 책은 집중을 안 할 수가 없다. 무척 솔직하고, 그래서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도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전 도서들이 인간의 영역인 철학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영적인 부분, 신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영적 건강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고, 아니 더 많이 강조되어질 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런 갈망이 평상시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애써 피해왔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위기를 맞이했고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나에게 맞는 신을 찾기로 했고 그 방법으로 8개의 종교를 직접 맞닥뜨려 보기로 결심하였다. (역시나 다른 이들과는 사뭇 다른 선택이다. 덕분에 그 과정을 우리가 이렇게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복종에 대한 생각과 평상시 이 종교에 대해 회자되어지는 선입견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이슬람 수피즘,
서양인의 관점에서부터 꽤 깊이 있는 내용까지 알 수 있었고 내 자신을 넣어볼 수 있었던 불교,
꽤 흥미로웠던 폐쇄적인 프란체스코회의 생활과 활동을 알 수 있었고 저자의 솔직함이 돋보였던 가톨릭,
다소 현실 도피적으로 느껴졌고 이상했던 라엘교와 위카,
뜻밖에 8개 종교 중에 들어있어서 놀랐고, 저자의 깊은 이해도가 읽는 내게도 도움이 많이 되었던 도교,
그리고 인류역사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되지만 종교에서는 빼먹기 쉬운 샤머니즘 까지 다뤄주었으며,
마지막으로는 개인적으로는 다소 어려웠던 유대교 카발라 였다.
어떤 종교가 옳다 그르다, 이 신이 맞다 틀리다가 아니다. 과연 '나만의 신'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로 이어지는 질문은 우리 스스로 에게 판단할 것을 숙제로 남기고 있었다.
그러면 이 책의 의의는 무엇일까? 내 생각으로는 종교가 있든 없든 저자의 솔직한 의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가 삶의 방향을 점검해 볼 기회를 가져보는 시간을 준다는 점 같다. 신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신은 방향’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좀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의 태생 동기는 이것 아닐까?
적극 추천하고픈 책,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이다.
_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이런 책들과 그 속의 개념들을 이용해서 오히려 영적인 경험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_ [‘프롤로그’에서]
_예전에 수피교도인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상대가 무엇이 됐든 내가 왜 복종해야 하지? “중요한 건 네가 복종하는 이유야.” 친구가 말했다. “두려움 때문에 복종하는 건지, 아니면 사랑 때문에 복종하는 건지. 사랑 때문에 복종하는 편이 엄청나게 쉽지.” 친구가 이 말을 하는 순간 뭔가가 찰칵 하고 맞아 들어갔다._ [‘이슬람 수피즘’에서]
_내 몸은, 부처가 몹시 직설적으로 말했듯이, “겨우 1분 동안 빌려 쓰는 물건과 같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이 순간의 달콤함이 줄어드는가?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커피를 마시며 결론을 내린다.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난다고. 확실히 늘어난다고._ [‘불교’에서]
_‘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는 영어에서 가장 거룩한 말이다. 폴 틸리히가 지적했듯이, 모든 종교적 질문에 대한 답에는 항상 ’그럼에도 불고하고‘에 해당하는 요소가 들어 있다._ [’카톨릭 프란체스코회‘에서]
_라엘교도들은 외계인이나 비행접시 얘기를 계속 늘어놓으면서도 가슴 높이 이상 시선을 들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 높이로는 충분하지 않다. 충분한 높이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_ [‘라엘교’에서]
_부드러움, 무위, 소박함. 도교는 이 모든 것을 권유하지만 내 머릿속의 단어들 목록에서 가장 위에 자리 잡은 것은 신뢰라는 단어다. 도교의 핵심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믿는 것이다.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말이 좋은 것 같아도 이 말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반드시 우리가 그 흐름을 믿어야 한다._ [‘도교’에서]
_“...... 우주는 정말로 호의적인 곳일세. 그렇지 않다면, 자네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우주가 호의적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을 던질 수도 없겠지. 자네의 존재 자체가 성립하려면 호의적인 힘이 전제조건일세. 그 힘에 이름을 붙일 수는 없어. 붙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_ [‘도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