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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평점 :
1960년대~197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였던 모양이다. 미국사를 통해서 읽혀지는 것 외에, 문화적인 측면, 가치관의 변화, 사상적인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소설들과 드라마, 영화들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960년대 말, 대학기숙사에서 만난 두 여성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도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급진적인 흑인인권운동이 한창이였고, 기존 틀에서 벗어나고픈 욕구,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히피족, 페미니즘... 등, 고루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자신의 태생을 비롯해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격정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앤이 눈길을 끈다. 이런 그녀를 바라보는 조지. 둘도 없는 우정으로 관계가 변함없을 것 같지만 틈이 생겨 분열이 되고 그렇게 멀어지게 된다.
그때 그 시절만 다룰 것 같았던 소설은 뜻밖에 그 후 수많은 세월까지도 담고 있었다.
제목의 ‘그 부류’는 무슨 뜻이었을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지금보다 바쁘게 하루를 살았고, 동아리 생활을 했고, 외로울 틈도 없었다. 연애보다는 대의가 앞서야 한다고 여겼던 것 같고, 그런 류의 토론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그 부류의 다른 이들이 그때는 더 많았던 것 같다....
그 시간을 함께 했지만, 지금은 아이를 키우고 만나면 집안얘기만 하는 친구들도 있고, 사회부조리에 분노했었지만 지금은 소위 ‘~사’ 직업군으로 그런 생각들은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선배들도 있다.... 아직은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운 나는 그 흔적의 조금은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조금은 쓸쓸했던 여성들의 서사였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누구나 있었던 그 때, 친구가 전부였고 어리석은 판단을 밥 먹듯 하던 때를 떠 올려 볼 수 있었던 시간이였다. 어쩌면 이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로, 한 단계를 넘어 다음 생으로 들어가며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_나는 앤의 우정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건 내게 또 하나의, 더 깊은 상실감을 안겨줄 테니까._
_나는 황홀했다. 아찔한 기쁨에 사로잡혔다. 나에겐 자매가 있어. 앤 같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자매. 나에겐 솔랜지가, 솔랜지에겐 내가 있어- 내 머릿속에 우리가 다시 헤어지리라는 생각은 자리할 곳이 없었다._
_“어릴 때부터 징그러운 애였던 게 분명해.”
지금 같으면 난 그 말에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밸에 대한 솔랜지의 반감이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었다._
_...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은 불우한 사람들을 도울 책임이 있다는 믿음으로 키워진 소피에게 자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의무였다. 사실 앤이 ‘가진 자는 갖지 못한 자를 도울 의무가 있다’는 원칙을 처음 배운 것은 바로 그의 집, 엄마의 무릎에서였다._
_밸 스트롬과의 결혼 생활 마지막 해는 참 기묘한 시기였다. 집에서 우리는 서로 상과도 안 하고 심지어 식사와 잠자리도 따로 했지만, 잡지 일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었다._
_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앤은 마흔다섯 살이 될 무렵부터 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_
_‘나 한때 길을 잃었지만 이제 길을 찾았지.’ 그 시절엔 어딜 가나 그 노래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