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도 구분 짓는 주체에 따라, 목적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여기 미래 언제쯤, 철저히 컴퍼니의 생산성 기준에 따라 필요가 결정되는 인류가 있다. 이 행성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컴퍼니가 사업권을 잃게 되어 피고용인으로 자급자족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떠나야 한단다. 청춘을 여기에 다 쏟고 이젠 노인이 되어 그들 기준에서는 생산성이 없어보이는 오필리아는 찬밥 신세다.
오필리아는 그래서 이젠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한다. 함께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고 비행선이 떠나는 날, 숲으로 숨는다. ...
저자는 주인공 오필리아가 숲속으로 깊이 들어가며 느끼는 해방의 감정과 오감, 그리고 아무도 없는 마을로 돌아와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는 장면 등에 페이지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숲을 거닐며, 속옷하나를 벗는데도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이러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보일까’ 하는 오래된 제약들, 마을에서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과정 등이 무척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공동체 생활과 기준들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진정한 해방을 맛보고 있는 듯 했던 아래 한 문단! 집단의 기준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던 주인공 이였지만, 모든 것을 정말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해나가는 모습이, 책 중후반부터 전개되는 그녀의 행보로 당연하게 연결 되었다.
_이렇게 혼자 있던 적이 없었다... 일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그리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스스로가 놀랍다는 생각도 한참 했다.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것도, 행성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꼈다.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하다고 느꼈다. 몸이 익숙한 침대의 우묵한 곳을 찾아냈을 무렵 그는 잠이 들었다._
어느 날, 새로운 개척인들이 착륙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 행성에 있었으나 지난 40년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다른 존재들이 사람들을 공격해서 죽인 것을 통신을 통해 알게 된다. 뜻밖에 이 행성에 온전히 혼자가 아니라 다른 존재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오필리아를 외로움과 두려움에 밀어 넣는다.
일상으로 돌아간 듯하다가, 문득 맞닥뜨린 괴생명체들... 이렇게 이들과 소통이 시작된다. 인류를 대표해서...
책을 다 덮고 나니, 마치 주인공과 한바탕 공기 속으로 유영을 즐기다가 내린 기분이 들었다. 오필리아는 아마도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인간들 사회에서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혼자 있는 그는 정말 당당하다. 거기에 타 종족과의 소통도 참을성 있게 이뤄가는 모습은 바람직한 나이듦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노력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그들도 참 좋았다.
외계종족이 등장하는 이 책이 특히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외계종족의 관점에서 보는 인간, 인간의 문화 등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이 부분을 읽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접한 이다혜 작가의 추천글이 인상 깊었었는데, “... 오필리아처럼 살 수 있다면, 나는 늙을 날을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겠다...”는 대목이 무슨 뜻인지 진심으로 알 수 있었다. 추천하고픈 개성있는 책이다.
_내가 무엇을 배우든 그것은 아무한테도 쓸모없을 것이고, 내가 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온다고 한들 그들은 내가 남기려 애쓴 모든 것에 관심이 없을 거야... ,,,,,
두려워한 적은 없지만, 이제 죽음이 길 끝에 와 있었다. 어둠, 더는 아무것도 없는 것, 그는 공식 로그를 윤색해 자신의 기억을 - 누가 읽든 말든, 자기가 죽어도 살아남을 무언가를- 남기려 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렇게 덧붙인 기록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_
_괴물의 장신구가 없었다면 그들은 괴물들이 좋아하는 건 상자밖에 없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괴물들은 상자에서 살고, 상자에 물건을 보관하고, 뜨거운 상자로 음식을 조리했다. 일부 <종족>은 뼈나 나무를 깍아서, 또는 초식자의 피부로 상자를 만들었다. ......
비행 괴물들은 하늘에 흉터를 남겼다. 그들이 실제로 하늘을 가른 거라면? 그 정도로 높은 곳에서는 온 세상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거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