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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딱 제목만으로도 뭔지 짐작 가능했던 하현 작가의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살다보면 양가감정에 왔다갔다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 중 하나가 혼자 가만히 있고 싶기는 한데, 또 타인과의 연결고리는 유지하고 싶고 불러주었으면 하게 되는 그런 마음일 거다.
_원하는 만큼 충분히 혼자 이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톨이가 되고 싶지는 않는 마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모순이 궁금했다._p16
하현 작가의 화법은 독특했는데 혼자여서 겪게 되는 현실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헌데 또 잘 알겠다. 현실이 한 번 걸러져서 자연스레 스며드는 느낌 이였다. 이렇게 스무스하게 착 감기는 에세이가 있었던가? 잔잔하게 써내려간 글들이 일상에서 나는 무엇을 찾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한다.
혼자가 좋든, 여럿이 좋든, 누구나 읽어도 정말 공감이 될 것 같다. 읽다보면 삶의 진정성과 중심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먹먹하면서도, 많이 위로받고 자각하는 달콤한 시간 이였다.
_누구나 원하는 만큼 고요해질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요리 대회 심사위원이 하나의 음심을 맛본 뒤 물로 입을 헹구듯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잘 듣기 위해서는 아무 말도 듣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_ <순금 한 돈 어치의 고요>에서
_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뻔뻔해지지도 용감해지지도 못하고 당황한다. 나 역시 그들에게 숱한 실망감과 참담함을 안겨주었을 텐데. 그 서글픈 순간을 그들은 어떻게 견뎌왔을까? 하지만 정말로 물어볼 용기는 없다. 우리는 아직 아주 많은 날을 우리로 살아야 하니까._<모르는 사람들>에서
_최고로 용감해서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혹시 내가 언젠가 치매를 앓게 됐을 때 치과나 벌레, 가난, 출퇴근 시간의 만원 지하철 같은 것들에 대해 끝없이 떠들까 봐 두려웠다. 만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사람에게 매번 성실하게 반응해주는 것은 웬만한 애정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다.
노인이 되었을 때 그렇게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까?_<요양병원>에서
_나는 모듈형 인간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블록을 조립하듯 마음대로 세상과 연결되고 분리되는 사람. 외톨이가 아닌 채로 혼자일 수 있는 사람. 약속이 취소되면 나는 함께 라는 가능성을 가진 채로 기쁘게 혼자가 된다._<외로운 건 솔직히 홀가분하거든요>에서
_솜 포함 3만5천 원짜리 이불보다 더 가지고 싶은 건 그 이불을 덮고 마음 편히 누울 수 있는 내 집니다.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꿈꿀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미래,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만드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바로 그런 것들이다. 크고 멀고 불확실한 행복._<크고 멀고 불확실한 행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