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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82년생 김지영’으로 정면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었던 조남주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 단편 8편으로 구성되어있다.
1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들이 이 작은 책에 들어있었다. 때론 내가 되어보기도 했고, 때론 없던 딸을 만들어 넣어보기도 하고, 엄마가 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친구들과 얘기해보고 싶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매화나무 아래’와 ‘현남 오빠에게’, 그리고 ‘여자아이는 자라서’ 였다. 이 세 편에 대한 감상을 아래에 간단히 적어본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일까, 부쩍 노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매화나무 아래>는 한국에서 산다면 예측가능한 우리의 노년모습들이 들어있다. 가까운 지인은 거동이 힘들어지면 어김없이 가게 되는 공식이 된 요양병원이 싫어서 지금부터 동남아로 은퇴비자를 내서 나가고 싶다고 하고, 나에게도 계획을 세워보라고 제안을 한다. 이런 와중에, 읽은 이 단편은 나의 미래를 투영하게 만들었다. 인생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그 끝에 담담히 있고 싶다.
_눈이 꼭 꽃 같네, 꽃잎 같네. 언니는 꽃이 지기 전에 오라고 자주 말했었다. 꽃이 피어 있을 때도, 꽃이 다 떨어진 후에도 그랬다.
이제 알겠다. 금주 언니야, 나도 이제야 알았어. 꽃이 눈이고 눈이 꽃이다. 겨울이 봄이고 봄이 겨울이다. 언니야._p45
읽어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던, <현남 오빠에게>. 우리나라에서 의외로 흔한 형태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어린 나이에 사귄 남자친구, 현남 오빠. 오빠가 하란대로 하고, 생각하란 대로 강요받고... 결혼생활의 모습도 사회가 정해놓은 틀을 강요하는 그에게서 벗어난, 한 여자의 독립가(?) 였다. 나중에서야 토로하는 그녀의 속마음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을 대변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은 아직도 그 남자의 행태가 일반적인 사고라는 것이 안타깝고, 약간의 분하고.... 답답하다. 우리는 때로 얼마나 무례해질 수 있는가?!!.. 한 독립개체로 우뚝 설 그녀를 응원할 뿐이다.
_오빠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질문은 “아이를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아이를 몇 명이나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였고,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네가 아이를 몇 년쯤 직접 키울 수 있을까?”였으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대답을 피하곤 했고 오빠는 왜 그렇게 계획 없이 사느냐고 저를 한심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에요._p185
그리고, 기성세대는 어떤 관점으로 우리가 받은 무의식적인 고정관념들을 개선해 가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풀이 하게 했던, <여자아이가 자라서>. 이 단편에 대해서는 딸 주하가 엄마에게 하는 이 대사로 설명이 충분하다.
_“그랬겠지, 무려 20년 전에. 그리고 지금 엄마는 남자애들은 생각이 없다, 이해해 줘야 한다, 몰래 사진 찍고 낄낄거리는 게 장난이다, 그러는 사람이 됐어. 여자애들이 성적 떨어뜨리려고 남자애를 꼬신다, 그런 한심한 소리나 하는 사람이 됐다고. 그러니까 엄마, 업데이트 좀 해.”
그게 벌써 20년 전 일이구나. 20년 동안 나한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_p293
어떤 시대, 한 사회에 체감하는 큰 변화를 생기게 하기 위해서는, 작은 움직임들이 차곡차곡 쌓여야 가능할 것이다. 그 방법들 중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통한 울림일 텐데, 조남주 작가는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자들 중 한 사람인 것 같다. 다양한 형태의 우리를 위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더욱 와 닿았던 소설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