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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5월
평점 :
_서대문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서대문 근처 하면 누구든지 잘 알고 있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우리의 독특한 지리 관념에서 비롯된다. 서양인은 선적인 길 찾기를 하고 한국인은 점적인 길 찾기를 한다. 서양의 가로 중심의 길 찾기는 가로를 따라 대상을 순차적으로 나열한다. 그러나 점적인 길 찾기는 선적인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옛말은 점적인 길 찾기의 길 없음, 즉 길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길이 될 수 있는 복잡한 체계에 대한 경고다._p194
길 찾기 같은 개념에 대한, 이런 심리적 문화적인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는, <사라진 서울을 걷다>는 건축하는 시인, 함성호 작가의 서울 이야기 이다.
_오늘도 서울에서는
자본만이 풍경이 되어
모두를 전생으로 만든다
때때로 많은 것을 허물었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_
단순히 건축학적으로 보는 서울의 풍경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견뎌낸 서울의 생채기들과 물질주의로 얼룩진 잘못된 도시사업, 도시복원, 역사서 속 내용들, 민주시위, 문학작품들 까지도 다루고 있다. 그렇게 읽다보면 어느새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_심지어 청계천 복원 공사는 고도제한을 풀어서 고층빌딩을 만들기 위한 조경 공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애당초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 생태에 대해 아무 관심 없었던 게 되고 만다. 특히 청계천은 조선 시대 한양의 하수도로 당시 생활상에 대한 정치적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중요한 유적지다.
그러나 서울시는 형식적인 발굴 조사만 시행했고, 심지어 서울시가 공사 중에 광통교 교각을 훼손한 것이 문제시되자 이명박 시장은 “돌덩이 하나로 웬 호들갑이냐”라고 문화유적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많은 환경단체와 시민단체에서 수도 없이 비판과 건의를 했지만, 서울시는 예정대로 초고속으로 청계천 복원을 단행했다. .... 성숙한 공공경영의 모범을 만들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_p122
_당시 박종철의 죽음 이후에 터진 이한열의 죽음은 ‘더는 안 된다’라는 국민 일반의 의식을 불러일으켰고, 당시 군부 독재에 지칠 대로 지친 시민들을 신촌 로터리로 몰려 들게 했다._p222
또한 저자의 삽화들은 꾸밈없이 소박하여 따뜻함이 묻어나서 이 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_지금은 자연이 작은 인공물로 대치된 곳이 삼청동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우리를 이끄는 시간의 흔적들이 작은 벽, 낡은 계단까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 짧은 시간이 가을의 색과 가을의 빛과 만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아, 하고 감탄한다._p134
한 도시를 거닌다는 것은, 단순히 길을 걷는 것만이 아니다. 많은 기억들과 흔적들을 오롯이 경험하는 것이다. 꼭 서울만이 아니라, 도시를 제대로 여행하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픈 책이다. 저자를 통해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