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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음식 ‘한 그릇’ 에 담긴 ‘정성껏’의 진실함을 믿는 이은선 영화 전문기자의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영화 전문기자가 요리 이야기를 할 때는 이런 글이 나오는 구나하면서 읽었다. 간간히 들어있는 세련된 저자의 일러스트도 참 좋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글들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리틀 포레스트> ‘차가운 한 시기를 건널 때’ : 기꺼이 심고 거두어서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나눠주고... ‘정성껏’의 정점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치유한다. 여기에서 이은선 저자는 자신의 제주생활에 빗대어 경험을 나눠주고 있다.
p37~
_시간이 많은 날은 밑반찬이나 육수를 만들어두는 데 열중했다. 양배추와 비트를 넣어 피클을 만들어두고, 언제든 국물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다시마와 밴댕이 그리고 태우듯 구운 대파를 넣고 끓인 육수도 준비했다.
.....
낮 시간은 혼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흘려보냈다. 오름이나 숲, 좋아하는 해변에 가서 마음껏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집에 돌아와선 따뜻한 차를 내려 마신 뒤 잠자리에 들었다.
.....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_
<에드 우드> ‘망할 수도 있어, 그래도 즐거웠으니까 괜찮아’ : 절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에드 우드는 심각한 것 투성인 상황에서 묘한 용기를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 영화를 언급하며 풀어내는 저자의 삶에 대한 생각들은 내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오래 전 봤던 영화인데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분명히 느낌이 다를 것 같다.
p132~
_배우 조니 뎁이 명랑한 톤으로 연기한 에드 우드는 좀체 절망하는 법이 없다.
....
가뜩이나 가짜 티가 물씬한 종이 비석이 힘없이 넘어졌을 때, 현장에서는 우려 섞인 탄식이 터져 나온다. 그때 에드 우드가 예술적인 한마디를 남긴다. “영화란 거대한 작업이에요. 그렇게 사소한 건 괜찮아요!” 배경 디테일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이 호방한 자신감.
나는 지금도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꿈이 쪼그라드는 초라한 기분이 들 때마다 이 영화를 꺼내보곤 한다.
...
모두가 쓰레기라고 욕해도 열정 하나로 꿈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별난 감독의 이야기가 묘한 힘을 준다. 세상의 모든 결과물은 애정과 열정과 선한 의도에 비례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가 기억해주는 위대한 작업을 할 때보다 그렇게 될 리 없는 시시한 작업을 할 때가 더 많다._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살아갈 힘이 되는 사랑의 기억’ : 난 절절했던 사랑기억 하나로 평생을 산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 글을 읽으려 할 때 바로 그 문장을 생각했다. 영화적으로 예술적으로 풀어낸 영화에 대한 해석이 특히 좋았다. 이 영화는 비극적 일까봐 보다가 말았었는데 지금은 끝까지 다 볼 용기가 생겼다.
p183
_서로가 서로를 마음껏 사랑하고 자유롭게 꿈꾸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뿐더러 누구도 앗아갈 수 없었다._
영화, 요리, 재미, 감동, 진심.... 모두를 아우르고 있었던 책이였다.
정말 착해지는 기분이 드는 그런 순간들을 나도 많이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