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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 소설가가 식탁에서 하는 일
한은형 지음 / 이봄 / 2021년 2월
평점 :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업무를 하기 전에, 보기에는 미숫가루 비슷한 갈색의 식이대용식을 뜨거운 물이나 우유로 걸쭉하게 해서 준비한다. 함께 따뜻한 허브티 한 잔도 준비한다. 내겐 이 시간이 내 몸을 따뜻하게 깨우는 시간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이런 작은 시간들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저자인 한은형 소설가는 생활 속의 이런 순간들을 정말 맛깔나고 깊이 있게 표현해 놓았다. 장담컨대 한번 손에 잡으면 단번에 완독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재밌기도 하다 ㅎㅎㅎ.. 적어도 내겐 그랬다.
나오는 음식들과 스토리들도 다양하고 저자의 취향도 개성 있어서, 읽는 이들의 풍미까지 깊어지게 한다. 정말 멋진 경험을 선사하는 내용들이였다. 내 잠자리 책으로 똬악 놓았다. 속이 따뜻한 편한 잠을 자고 싶을 때마다 열어보고 싶을 듯!
-본문 중에서-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 중에서>
_이런 의문이 든 적은 있다. ‘어떤 사람들이 아스파라거스를 사는 걸까?’라는.
‘’‘’‘
그러니 껍질을 까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머위대나 고구마줄기처럼 말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 알았다. 어느 여름, 주인공인 마르셀은 매일같이 아스파라거스를 먹는다.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진다. 하녀장의 음모였던 것. 부엌 하녀가 아스파라거스 냄새에 천식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알게 된 그녀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스파라거스 껍질을 까게 했고... 결국 하녀는 마르셀의 집을 떠난다. 하녀장, 악독한 여자다.
하녀장의 음모 덕에 마르셀은 행복했다. 그는 거의 아스파라거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렇다._p101
<꿀과 술과 시 중에서>
_“온 세상의 햇살이 와락 달려드는 것 같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그러 꿀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거트 위에 뿌려진 발톱 두 개 만큼의 꿀을._p135
<귤 냄새 중에서>
_귤을 쪼개는 순간의 느낌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귤을 쪼개는 순간 공기 중에 퍼지는 상큼한 향기 입자와 갈라진 귤껍질 안에서 나온, 귤껍질과 닮았지만 묘하게 깊은 색의 귤 알갱이를 볼 때의 기분을 말이다.
.....
귤 냄새는 이타적이니까. 세상을 잠시나마 괜찮아 보이게 해주니까._ 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