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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의 철학 여행 - 소설로 읽는 철학
잭 보언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한 마디로 말하자면, ‘철학을 알려면 이들처럼!’이다.
제법 다양한 철학 관련 도서를 읽어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전개는 처음인 '이언의 철학여행' .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 추리소설 비슷하게 바탕을 깔고 간다.
이언은 잘 때 마다 꿈속에서 노인을 만나는데 심오한 얘기를 나누게 된다. 꿈에서 깬 후 부모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오히려 꿈 내용까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 이언의 부모는 자꾸 엉뚱한 이야기도 한다. 집 밖으로 나온 이언은 또한 이상한 경험을 하는데 이언외에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에, 이언은 현실감각이 오락가락한다. 나는 지금 꿈 속에 있는 것인가, 현실에 있는 것인가?....
마치 유명한 장자의 나비 이야기와 같은 시작은, 이 의문부터 이언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시작한다. 미스터리처럼 흥미진진해서 진실은 뭘까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렇게 스릴 넘치는 철학책이 있었던가! ㅎㅎㅎ
이 책은, 주제에 따른 여행들로 구성되어있다.
중간중간에 어려운 내용들이나 이론들은, 순전히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넣어놓았다는 친절한 주석들을 통해서 막힘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본문 내용 못지않게 이 주석들이 참 재밌는데, 그 중 하나를 옮겨보겠다.
노인이 ‘환지통’ 에 대해 설명해주는 대목에 부가 설명으로 넣어놓은 주석 중에 다음 내용이 있다:
_<고통을 느끼는 것과 귀신을 보는 것은 같다?>
미래의 과학자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진단을 내릴까?
리처드 로티는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이 뇌의 작동 과정을 보고 있다면, 미래에는 ‘나는 아프다’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섬유질이 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명확하고 간단할 것이다.”
로티는 이것을 무당이 ‘신성한 버섯’을 먹고 귀신을 보는 것에 비유한다. 귀신을 보는 것이나 고통을 느끼는 것 둘 모두 뇌의 조작이라는 것이다. _p94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챕터는 ‘동양 사상’ 이다.
저자가 미국인이라서 이 부분을 어떻게 풀었을까 궁금했었다. 노인은 이언에게 동양의 현자를 소개하며, 그 현자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동양 사상 중에서도 매우 어렵고 고차원적인 개념으로 알려져 있는 도가의 ‘도’에 대한 설명들을 기본 축으로 하고 있어서 살짝 놀랐다. 간만에 읽는 이런 내용이 한편 진심으로 반가웠다.
초반 1/3을 읽었을 때부터 추천도서다 싶었는데, 추천하고 싶은 화룡정점은 마무리에 있다. ‘더 깊은 질문들’ 챕터에서 앞에서 주제별로 다뤘던 각 장에 대한 사유질문들을 추가해 놓았다. 단순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혹은 타인과 이 질문들을 통해서 다시 내용을 정리해보고 논리적인 철학적 사고를 다져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철학을 하는 것은 마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과도 같다고 한다. 미스터리 소설처럼 독자를 이끌어가는 힘이 훌륭한 이 책은, 필수 철학 입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