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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ㅣ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잠이 든 밤에, 악몽을 꿨다.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는 않지만, 무슨 벽 모서리 컴컴한 끝에 조수경 ‘그토록 푸른’ 에서처럼 손끝이 푸르스름한 웅크린 사람이 나온 것 같았다. 그 날은 잠을 깨도 찌뿌둥하고 몸이 차서 온종일 집안의 온갖 온열기를 몸에 붙이고 있었다.
‘쓰지 않을 이야기’를 읽고 후 내 감상이 그랬었나 보다. ‘팬데믹 테마 소설집’ 이라는 부제처럼 팬데믹이 아니였으면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이야기들일 지도 모른다. 그동안 꽁꽁 숨겨져 있었던 여러 개인 심리의 문제라든가 사회구조의 문제 등이 이번 팬데믹의 장기화로 날 것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생존에 관한 것들도 있어서 더 이상 사람들이 숨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4명의 작가가 4개의 이야기를 통해, 비유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각각 풀어내고 있다.
전염의 위험에도 생존을 위해 일 하러 나가야 하는, 그것도 전혀 생소한 야간작업을 하러 나가는 주소영의 일과를 담은, 조수경 작가의 ‘그토록 푸른’.
그저 아들이 안타까워 그 외의 인물들에게는 서운하기만 한, 어린 손녀를 떠안은 할머니, 일남. 코로나 19로 마을이 특별재난지역으로 들어가면서 돌봄 교실 운영도 중지되고 공부방도 휴업이라 손녀 공부를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다. 이런 와중에 벌어진 손녀, 가영의 음란물(?)사진 사건... 거기에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는 증세도 심해지는 듯 한데 면회도 안된다. 결국 임종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고, 팬데믹 상황이라 장례도 너무 조촐하다.. 짧은 내용이지만 많은 상황을 한꺼번에 담고 있었던 김유담 작가의 ‘특별재난지역’.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구역질이 나왔던 범죄 없는 마을의 편협한 권력구조의 내막, 박서련 작가의 ‘두’ 오지마을 학교에 부임한 채은은 여자애들에게만 생기는 수포의 원인이 궁금하다. 그 연관성을 알아갈수록 확신이 들지만 또 한편 뾰쪽한 수도 없다. 그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빛은 뭘까?
전염병 때문에 20년 동안 떠나있던 아빠가 집에 들어왔다. 팬데믹의 장기화로 동생방을 내줬다. 같이 마트를 가고 식사를 하고 옛 기억을 가끔 소환하지만, 주인공은 그녀의 소설에서 아빠를 수십번 죽였다. 하지만 좀비이기 때문에 계속 살아난다. 언젠가 죽일 거라고(소설 속에서) 동생에게 말한다. 소설 속에서 다른 가족들을 다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것 같다..... 송지현의 ‘쓰지 않을 이야기’.
이 네 이야기는 계속 진행 중이다.
그 안의 우리도 계속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