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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황인숙 지음 / 달 / 2020년 10월
평점 :
황인숙 산문집,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는
1부 해방촌에서, 2부 달려라, 캣맘, 3부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예쁘게 생긴 책을 읽으면서 웃다가 많이도 울었다가 씁쓸해지기도 하고.. 내 속이 아주 요동을 쳤다. 아마 누가 옆에서 내 모습을 봤다면 미쳤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
특히 저자가 길고양이를 돌보며 겪은 일들과 감정들, 후회들을 읽으면서 너무 울었다. 그 울음 속에는 안타까움도 있었을 것이고 글쓴이의 죄책감에 공감이 되어서였기도 했을 것이다. 생명체, 특히 인간들 속에서 치이고 사는 동물들, 식물들의 이야기들은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못 읽겠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내용조차 아름다운 문장들과 소박한 삽화로 느낀 바와 생각을 완성한 페이지들은, 마음이 아파도 중단할 수 없게 만든다. 비둘기까지 챙기는 저자의 마음씀이 오지랖을 넘어 정말 대단하다.
_반려동물을 키울 처지가 아니라서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운명처럼 란아를 받아들였다. 그 좁은 옥탑방에서 란아랑 나는 서로 무서워하며 지냈다. 그 와중에도 내가 걸레질을 하느라 엎드려서 지나가면 철장 속에서 발을 내밀어 내 머리칼을 잡아당겼지. 그즈음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셈치고 둘째로 들인 고양이, 그늘 한 점 없는 보꼬가 란이와 나를 가까워지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함께 산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래, 죽여라, 죽여!’ 무서움을 무릅쓰고 처음으로 란이를 덥석 안았지. 뜻밖에도 란이는 가만히 안겨 있었다. 란아, 애틋한 우리 란아...... _ p158
남산아래 사는 이들의 녹녹치 않은 삶들도 잘 표현되어있는데, 사람냄새가 물씬 난다. 옛날 어느 드라마에서 본 것도 같은 캐릭터들도 가득하다.
_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고급 아파트 광고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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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도 안 되면서 왜 아득바득 강남에서 집을 구하느냐고? 그녀는 동주민센터에서 희망근로자인데 강남구에 거주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_ p51, 54
뜻밖에 길고양이들의 고단한 삶이 섞여있어서 깜짝 놀랐고, 저자가 고백했듯이 은연중에 사나워진 마음이 다정한 이웃들에 의해 달래져서 따뜻했고, 나이가 들어도 마을의 비탈길과 계단을 고단하게 오르내리며 약속을 지키는 저자의 충실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_오십대에 접어들면 대개 사람은 단지 좀 노쇠했을 뿐인데, 엄청나게 많은 것을 잃은 것으로 착각한다.
행복과 아름다움은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 이심대 삼십대는 햇빛 찬란하게 행복했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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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보다 더 유식해지고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 보는 능력이 생긴다. 그 선생님들만큼 관대하지 못한 나는 이삼십대 나이의 사람과 대화하다 냉소를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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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이 넘으면 어지간한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가식과 허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젊음의 아름다움은 대개 늙은 몸에 대한 젊은 몸의 상대적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장년의 아름다움은 절대적이다. 누구라도 풋내나는 예술작품보다 무르익은 예술작품을 아름답다 느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삶을 무르익힌다는 것이다. 삶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깊은 삶은 기품 있는 삶이다. _ p235~236
읽는 이들은 아마도 왜 제목이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였어야 했는지 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 같다. 발랄하고 솔직한 황인숙시인의 생활에세이를 읽다보니 내 마음까지 뜨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