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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200주년 기념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ㅣ 아르볼 N클래식
메리 셸리 지음, 데이비드 플런커트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9월
평점 :
-본문 중-
_...반쯤 꺼진 그 흐릿한 빛을 통해 피조물이 탁한 노란색 눈을 뜨는 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힘겹게 숨을 쉬더니 발작하듯이 팔다리를 꿈틀거리더군요.
이 변고를 접한 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토록 힘들게 공들여 만든 그 괴물을 뭐라고 묘사해야 할까요.....
....
아름답다니. 맙소사! 놈의 노란 피부는 그 밑에 움직이는 근육과 동맥을 딱 맞게 덮었고, 검은 머리카락은 윤기 있게 출렁거렸으며, 이는 하얀 진주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은 칙칙한 눈구멍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색깔의 축축한 눈동자, 쭈글쭈글한 얼굴, 그리고 일직선으로 뻗은 새카만 입술과 대조되어 오히려 더 섬뜩했습니다._
맨 처음 프랑켄슈타인 자신의 피조물(?)을 맞닥뜨린 장면이다.
고전명작으로 꼽히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부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맨 처음 읽은 것은 어렸을 때였고, 그 후로는 고전영화부터 은유적으로 표현한 최근 영화까지 이런 매체로만 계속 접해왔었다. 그러다 반갑게 온 200주년 기념 특별판이 이 책이다. 그래서 다시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되었다.
이제 보니 내가 활자로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0세기였고, 지금은 21세기 인공지능으로 가는 길목이다. 그래서 이번 독서 때는 인간복제, 인공장기, AI 등을 같이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 시작에 언급한 조우 장면은 창조자 역할을 한 프랑켄슈타인이 처음 접한 창조물의 비쥬얼에 받은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어지는 내용에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생명의 아름다움과는 먼 공포와 혐오만 느껴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새 생명체(?)에게 사랑이 아니라 분노와 증오를 퍼붓게 된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이 얼마나 인간이란 오만하고 잔인한가!
현대물에서도 복제인간이나 AI에 대한 시선에서도 비슷하게 이 내용이 투영될 때가 있다. 편리함과 호기심, 영생을 위한 성공물이지만, 동시에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로 과오를 저지르는 인간을 다루는 경우들이 많다. 아마도 그 시작에는 이 소설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영화에서도 그렇듯, 이 소설도 읽다보면, 어떤 캐릭터가 그 깊은 속에 더 인간적인 품위를 지녔는가에 대한 의문을 계속하게 된다.
사람은 자만과 욕심으로 쉽게 오염되고 눈에 보이는 것에 앞이 흐려지지만, 크리처들은 오히러 순수함에 선하고 본질적이다.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계속 회자되는 힘은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한 깊은 주제가 있어서일 것이다.
-본문 중-
-“... 아, 프랑켄슈타인,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공정하면서 왜 나만은, 그 누구보다 당신의 정의가, 심지어 당신의 자비와 애정이 절실한 나만은 짓밟으려는 건가. 내가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걸 잊지마. 당신의 아담이어야 하는 내가 타락한 천사가 되었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당신은 기쁨에서 내몰았다.”_
_“... 나의 창조자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나한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는 다른 인간들에게서 내가 뭘 바랄 수 있겠나? 그들은 나를 멸시하고 혐오한다...... 저 쓸쓸한 하늘을 내가 찬양하는 건 당신네 인간들보다 내게 더 친절하기 때문이지.”_
긴 인간의 역사 속의 많은 시행착오의 근본에는 이런 편협함과 무조건적인 배척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다시 읽은 메리 셸리 의 프랑켄슈타인은 쓸쓸했고 슬펐다.
예전에는 어떤 시점에서 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번에는 만든 이(?) 조차도 그 외모만 가지고 ‘괴물’ 이라고 일컬었던 그 크리처 관점에서 읽었고, 철저히 자신의 시점으로만 서술해 간 ‘프랑켄슈타인’ 의 독백 부분에서는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덧붙임: 데이비드 플런커트 의 그림으로 완성된 200주년 기념판은 정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