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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의 탄생 -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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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남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깜냥이 되지 않는 것은 도전하지를 말았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다음달부터는 못하겠다고 할까 고민도 했다. 한길사 3기 서포터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정말로 기뻤고 딴에 책도 쫌 읽으니 교양 서적들 쯤이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식의 리뷰가 싫다. 그래서 항상 내 생각이나 감상을 남기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 한 책을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이 책을 읽는 것 조차 너무 버거웠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리뷰를 다 읽었다. 혹자는 무려 '쉽게 서술했다'고 썼더라. 그 말에 기가 팍 죽었다. 나는, 나는 너무 어려웠는데. 책을 읽어도 책을 읽지 않은 것 같은 때가 있다. 너무 어려워서 글자만 읽은 경우다. 그리고 이 책이 나에게 그랬다. 리뷰를 써야 해서 여러번 되짚어 읽었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잘 읽었는지 모르겠다.

 

  쉽지 않다고 소문난 노교수의 대학 교양 강의의 교재 같다고 하면 될까. 그분, 자료도 별로 안쓰시고 말로 다 설명하셔서 미친듯이 교재 읽고 필기해야 한다더라. 나는 솔직히 그런 스타일의 강의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만약 이 책을 교재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나는 수강신청을 할 것 같다. 혼자서 읽었음에도 읽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짧은 이해력을 강의를 통해서 보충 받고 싶다. 저자의 강의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이 책이 어렵기는 해도 그 내용은 충분히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교양인이란 서양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면 전시품을 줄줄 설명할 수 있고 클래식을 들을 것만 같은 사람의 모습이 하나, 드레퓌스 사건과 에밀 졸라와 같이 정의를 구호로 내세우는 사람의 모습이 하나, 이렇게 두 모습을 가리킨다. 희안한 것은 전자는 부유층에 우파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떠울리게 하고, 후자는 노동자와 함께할 거라고 전투적으로 거리에 나가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거지. 책을 읽으며 이 생각에 대한 이유를 하나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더 오래 전일수록 어떤 지식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시대였기에 그것만으로도 교양있는 사람일 수 있었으나 현대로 올 수록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배움을 접할 수 있게 된 후에는 그러한 배움을 자신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의 진보를 위해 사용해야만, 그때서야 교양있는 사람이라 평가받는 것이다(정치적인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말이지만, 정치를 고려하지 않고 이해되었으면 하는 문장이다. 나의 문장력을 탓한다..ㅠㅠ). 

 

  잡소리를 덧붙이며 리뷰를 끝내야겠다. 이 책은 정말로 정말로 무겁다. 두께도 두께거니와 무거운 종이를 사용했다. 그림들을 인쇄하는 것에는 최적의 종이지만 정말 들고다니기는 힘들다. 더불어 표지가 숨막히게 촌스럽다. 어째서 이런(....이딴) 폰트를 쓰신 거예요? 마치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유발하는 조원의 ppt 같다. 출판사는 책 내용에 몹시 자신이 있었나본데, 미천한 나는 내용도 어렵고 디자인도 만족스럽지 못했으니. 누가 이 책과 나 사이에 화해할 수 있는 길을 뻥! 뚫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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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물에서 하늘 보기

문학 중 나에게 가장 어렵게 느껴 지는 것은 시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생각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인데, 시를 통해 본 세상을 설명해 준다면 더할 나위없이 고마울 것이다.

 

2.읽다

벌써 '보다'와 '말하다'를 읽었다. 시리즈의 두 권을 읽고 또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건 꼭 이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는 증거다.

 

 

 알라딘 활동이 재개되어서 참 좋다. 활동을 못하게 되는 것인 줄 알고 얼마나 의기소침했는지 모른다. 책을 읽고 말할 수 있는 이 활동이 요즘의 나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된다. 책은 정말 좋은 친구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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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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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2016년 한국의 트렌드를 정리한 책의 간략한 소개에 따르면 여행 관련 서적 중 여행 가이드북의 인기는 줄고 여행 에세이의 인기는 늘어났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인이 획일화된 여행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나의 '취향'으로 받아들이고, 그 취향에 맞는 여행을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날부터 여행 가이드북보다는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은 나에게는 정말 와 닿는 문장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내가 여행을 간 양 몰입해서 읽었다.

 

  하지만 언제가부터는 그 여행 에세이마저 그리 많이 읽지 않게 되었다. 하나는 가고 싶은 장소에 대해 미리 써 놓은 글을 보고 내가 그곳에 가서는 그와 비슷한 감상을 느끼려 애쓰고 꾸미려는 시도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기분을 느끼고 싶은 거지 누군가의 기분 짝퉁을 느끼고 싶진 않아! 또 하나는 작가들의 감상이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막상 가면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지 천국이 아닌 것을, 뭐가 그리 좋고 낭만적이고 새로운 세계가 있고 천국같은가. 글을 쓸 당시 작가의 기분이 그러 했을지 일부러 더 과장되게 썼을지 내가 알 수 있는 바는 아니지만 어쨌건 그 감상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 에세이를 보면 자꾸 반감이 들더라고. 호불호 판단을 내가 하고 싶어 여행에세이를 멀리한 것이니, 확실히 취향을 소비하기 위해 읽는다는 말이 맞기는 맞다.

 

  이 책은 (작가 본인이 책 앞부분에 밝히고 있듯) 작가가 얼마나 알타이에 푹 빠져서 썼는지 너무 진해서 씁쓸할 정도였다. 알타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사랑의 감정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 쓰여진 글은 척박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 분명한 알타이를 동경의 장소로 바꾸어 놓았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 알타이에 가고 싶다고 날뛰었을 것도 같다. 서구화된 문명이 온 지구를 잠식해 가는 이 때에, 인터넷 검색을 해도 지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 작가가 방문한 첫 한국인인 그런 미지의 세계. 순박한 사람들, 장삿속에 때묻지 않은 현지인들, 광활한 자연, 문명화되지 않아 편리함은 없지만 가장 기초적인 것에 집중하게 해 주는 세상.

 

  그러나 나를 문득 알타이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부분은 알타이의 자연 환경이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침대에서 자던 차림 그대로 밖으로 나와 세수만 하면 그 모습 그대로 그날을 시작할 수 있다는 부분, 그 부분에 마음이 요동쳤다. 얼굴에 온갖 선을 그리고 색을 칠하며 새로운 내 얼굴을 만든다(그 과정을 상당히 좋아하기도 한다). 매일을 그러다가도 나를 감추는 것에 지치는 순간이 있다. 모든 화장을 지워낸 내 얼굴이 낯설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어느게 진짜 내 모습인지, 사실 답은 뻔한데도 혼동을 느끼는 이 상황이 힘에 겹다. 그런 모든 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라니, 그것 만으로도 너는 정말 사랑스러운 곳이구나.

 

  갈잔은 다음 세대에 자신의 부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순박한 사람들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라지지도 않길 바란다. 점점 삭막해져만 가는 이 지구 한가운데에 이런 곳 한 곳 쯤은 남아있어야 하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나이키도 코카콜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지구는 영원히 신비로웠으면 좋겠고, 그 신비의 영역 안에 인간도 포함되어 있었으면 좋겠고, 그 인간이라 함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내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을 알고 삶을 알고 그 안의 조화를 아는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확실히 몇 년 전에 비하면 자연을 좋아하게 되었긴 하지만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어딘가 방문하는 행동은 아직 하지 않는다. 2년 전 스위스에 가서 정말 말 그대로 그림같은 풍경을 보며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생각했지만 그 자연과 내가 하나되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예쁜 그림에 한 점 얼룩같은 기분은 들었지만). 하지만 이 끝없을 알타이에 가면 나는 내 자신을 풍화되어버릴 자연으로 느낄 수 있을까. 내 자신을 조금은 놓을 수 있을까.

 

  자신이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으로 보일 만큼 알타이에 빠져들었다는 작가의 감상에 함께 빠지고 싶지 않아서 무진 애를 썼다. 알타이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나는 결국 나를, 이 삭막한 도시를, 무감각한 일상을 놓을 수 없다.  훨훨 날 수 있다면 한 번 날아갔다 오는 것도 괜찮을거다. 지금은 그냥 그곳이 부러웠다고만 하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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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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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책을 읽었다. 읽고 싶어서 읽은 것은 아니었다. 전투적인 광고를 보았고, 어느 순간부터 서점에서 전투적인 광고를 하는 책은 의심의 마음이 먼저 들었고, 지난번 이분의 책을 읽었을 때 술술 넘어갔던 것도 아니었던지라, 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내 손에 왔다. 읽었더니, 나의 얕음이 부끄러웠다. 글을 쓰고 싶은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해왔다.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말인지도 모르고, 감히 나는 쓸 것이 없다고 떠들었구나. 감히.

 

  내가 이 책을 지금 읽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나는 이 책에 수록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와 '밥벌이의 지겨움'을 몇 년 전에 읽었다. 부끄럽지만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읽은 오늘 그 생각이 부끄럽다. 김훈 작가의 글을 이해하기엔 그 때의 내가 너무 어렸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 몇 년 사이 그런 나를 부끄러워 할 줄만 알게 되기라도 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다.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나 술술 읽히지 않아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그저 내가 아직 이 책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모자라다는 말의 다른 말일 뿐이다. 평발을 내미는 아들에게, 국가를 외치는 자들보다 더 자랑스러운 육군 병장이 되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알려면 한 50대는 되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 이후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려면 60대도 되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언제든 지금은 아니다.

 

  세상을 더 잘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좀 더 알 수 있다면. 좁은 내 시야를, 얕은 내 생각을 넓힐 수 있다면 좋겠다. 수박과, 연어 떼와, 사고와, 바다와, 물고기에 대해서 모두 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최근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말했다. 죽으면 깔끔하게 이 구질하고 지겨운 생(生)이 끝날텐데, 뭐가 무서워? 얼마나 산뜻해.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는 작가를 글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거만한 소리를 했는지 알았다. 죽음은 모두에게 다가오지만 한없이 개별적인, 나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것. 이제까지 내가 제대로 감당해 낸게 뭐가 있기나 한지. 나는 그 무게를 견딜만한 것이 아니라 무게가 얼마인지 몰라 날뛰는 하룻강아지일 뿐인 것이다. 죽음의 무게를 알 정도로 나는 오래 살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것이 어른들이 말하는 젊은이의 치기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 썼을지 섬뜩하리만큼 잘 쓴 문장들이다. 글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블로그네 책이네 많이 읽고 돌아다녔지만 김훈 작가의 글을 읽으니 정신이 번쩍 한다. 재능이겠거니, 하고 말하기도 어렵다. 작가의 글은 나에게 대장장이가 수없이 연마해 마침내 완성해낸 철기구 같다. 번뜩이는 칼이 아니라 호미같은 글. 글이라는 것은 나열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야. 지금 내 말이 나열되고 있는 것도 부끄럽다. 꼼꼼히 곱씹으며 다시 읽을 참이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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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보통의 존재>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을 리 없다. 보통의 존재인 이석원과 또 다른 보통의 존재인 내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같은 말일 지 기대된다. 그가 꼽은 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2. 다시 그곳에

2014년 KROK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수상작.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은 아이들 것이란 편견이 있지만, 사실 인생의 진리는 유치원에서 전부 배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없이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책이다.

 

3. 시를 쓴다는 것

글을 쓸 때면 중언부언 말이 길어지기는 쉽지만 짧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는 어렵다. 시를 쓰는 사람은 얼마나 말과 함께 모진 세월을 보내 왔을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고행의 끝에 일상에서 우주를 발견한 사람의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4.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축복받은 집'을 쓴 작가 줌파 라히리 첫 산문집. 안정감을 피하기 위해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다. 영국에 잠시 머물며 모국어를 쓰지 못하는 괴로움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다. 외국어로 글을 쓰는 과정은 생각만 해도 험난하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답이 나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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