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목에 방울달기
코니 윌리스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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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 가제본을 받아본 건 처음이야! 우연찮게 대한지적단을 신청했는데 당첨이 됐다. 출간 전에 책을 읽어볼 수 있는 건 정말 진기한 경험이라 신나서 읽었다. 심지어 재밌기까지 해! 드디어 발매된 이 책에 대해 나는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리뷰를 쓴다. 여러분, 이 책 재밌어요!!


  코니 윌리스의 책은 아작에서 세 권이나 출간했다는구만(이란 말로 출판사 독자단으로써의 의무를 마감한다ㅋㅋㅋ). 난 이 책이 진짜 마음에 들어서 화재감시원도 찾아볼 참이다. 학문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집합소(집합 회사? 솔직히 이런 회사가 실재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과학에 대해 아는 게 1도 없어) 하이텍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유행의 기원에 대해서 연구한다. 하지만 유행의 연원을 찾아내는 것이 어디 쉬운가. 저쪽 대륙에서 나비가 날개 한 번 팔랑여도 여기서는 태풍이 일어나는데 말이다. 심지어 우리 주인공은 유행에 민감한 스타일이 아니어서, 최신 유행은 끝내주게  쫓아가면서도 일은 더럽게 못하는 비서(는 아니지만 쉽게 얘기하자) 폴립을 보며 괴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찾아낸 건 양! 무난하지만 우우우 단체행동을 하는 데는 1등인 양의 유행을 연구하면 유행의 전파 과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연히 알게 된 다른 동료와 유행을 선도하는 양의 목에 방울을 다는 실험을 하기 시작하는데.... 근데 유행을 선도하는 양이 누군지 알게 뭐야. 리드 양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 말도 안되는 하이텍의 보고서 체계로 인한 사건 사고, 유행을 연구하는 주인공의 독백, 잠재력과 참신함은 크지만 연구자금이 부족한 과학자들에게 엄청 큰 지원금을 주는 비밀의 후원자 이야기들이 책 속에 빼곡히 얽혀있다. 그러니 어쩌겠니! 처음부터 끝까지 쫀쫀하게 재미나지 않겠니!


  평소에 SF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어서 아작의 책을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이 책으로 인해 인식이 확 바뀌었다. 가볍게 읽을 흥미로운 소설을 찾고 있는데 큰 사건은 없지만 소소한 일상들로 가득찬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책을 진짜 추천한다. 사실 SF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10대 청소년들도 꽤 좋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에, 나도 나름 소녀감성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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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작가 - 43인의 나를 만나다
장정일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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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작가는 장정일의 서평을 읽은 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문화연구자 이원석에서 역사학자 하영휘까지 43인과 함께한 인터뷰를 묶어놓은 이 책은 장정일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또한 장정일 그 자신의 이야기기도 하다. “저자들은 내 서평을 완성시켜 주기 위해 동원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이 책은 그의 생각이 인터뷰이의 대답만큼이나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문화계 43인을 소개하는 역할에 절대 소홀하지 않다. 장정일은 독자를 대신해 인터뷰이를 끈질기게 읽어냈고, 덕분에 읽는 이는 장정일이 아닌 인터뷰이의 이름을 듣고 책을 펼쳐 들고도 그들과의 밀도 높은 만남에 크게 만족할 수 있다. 장정일을 잘 알지 못한다면 관심이 가는 인물의 인터뷰부터 살펴보면서 그들과의 대화 속을 관통하는 장정일의 시각을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더불어 장정일이 인터뷰이의 삶이 아닌 책을 기준으로 그들을 인터뷰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통로 삼아 새로운 책으로 건너가 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좋은 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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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우 2016-06-1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장정일이라는 작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군요! 좋은 서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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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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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받아든다. 매서운 느낌의 눈 한 쌍이 나를 노려본다. 띠지를 벗겨내면 그저 턱을 괸 남자의 얼굴이란 걸 알게 되지만, 어쨌거나 책 제목이 띠지 위에 있으니 띠지를 벗겨내기도 뭐하다. 책을 닫을 때마다 눈을 잠시 쳐다본다. 이 남자는 폴 오스터일까, 젊은 날의 폴 오스터를 바라보는 신의 눈일까. 저 젊은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는 것만 같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솔직히 폴 오스터의 책을 한 권도 읽은 적 없으면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괜찮은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다 읽은 지금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이 폴 오스터의 첫 책이라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이 정도의 글을 쓰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어린 시절의 그부터 알아가는 것도 좋지, 뭐. 일단 읽기 시작하는 게 중요한거다. 

 

  다른 사람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 7살 이전 시절 이야기는 더더욱.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그 내용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어린이의 시각으로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어른의 시각으로 이어나가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어떤 건지 판단할 수 없어 순수한 맛에 읽는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화자가 판단해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다만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어린 아이의 심정이 두 가지 나와 문득 과거를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하나는 '가끔씩 딱히 이유도 없이 당신은 갑자기 당신이 누구인지 어리둥절해지곤 했다. 당신의 몸속에 살고 있는 존재가 사기꾼으로 바뀌거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바뀐 것만 같았다.'로, 어쩐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던 몇 순간을 연상하게 한다.

 

  대체로 그 순간들은 내가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난 때였는데, 별 것은 아니고 가령 명절이라 할머니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는 순간이라던가 내 방에서 자지 않고 엄마아빠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자다 일어난 순간 따위였다. 몇 초쯤 지금 내가 어디있는지 파악하려고 하고 몸서리치게 낯선 기분을 떨쳐내려고 애썼는데 별 효과는 없었다. 누군가와 말을 하거나 억지로 잊으려고 애를 쓰면 그 기분에서 벗어나곤 했는데, 언제까지 그 기분이 느껴졌는지 구체적으로 생각나지는 않아도 썩 좋아하지는 않았던 감정임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그가 프랭클린의 장례식을 보고 충격을 받아 슬픔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 모습을 기억하는 부분은 또 내가 생애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으로 목격한 장례식을 떠올리게 한다. 하얀 옷을 입고 오열하는 것에 의미를 몰랐던 나는 그 공간이 그저 무섭기만 했다. 결국 밤에 귀신과 도깨비 그 중간의 무언가가 쫓아오는 꿈을 꿨는데, 예나 지금이나 달리기에는 전혀 자신이 없는 나는 극한의 공포를 느끼며 뛰고 또 뛰었다. 비슷한 이미지의 도깨비에게 훗날 또 쫓기는 꿈을 꾼 것을 보면 어지간히 무서웠나보다. 하긴, 난 항상 겁이 많았다.

 

  이런 단편적인 공감을 하면서도 어쩐지 지지부진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지루한 내 마음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그가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어찌나 생생하고 어린 마음에 충격적이었을지 느껴져서 마치 영화를 같이 보는 양 마음을 졸였다. 아마 그 영화를 직접 보면 딱히 재미나지는 않겠지. 그 다음부터는 신나게 쭉쭉 읽었다.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와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런 남자는 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작가는 이래야지' 싶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이 책을 읽는 나의 기분은 '이 사람이랑 친구하고 싶지는 않군'과 '작가의 감성이란 이런 건가? 올 신기한데?' 사이를 넘나들었고, 끝에는 썩 흥미로운 산문이라 결론내렸다. 꼭 작가라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젊은 미국인들이 주로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궁금증이 자꾸 생겨나는 건 재밌는 책이라는 증거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가 스타가 되기 전의 일상을 읽는 것은 흥미롭지 않기가 어렵다. 하루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직접 에세이로 쓴다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몇 개월은 되고 남을 것이다(설마 이미 쓴 건 아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팬이라면 정말로 괜찮은 책일 것이라 확신한다. 중학생 시절에 '빵굽는 타자기'란 표현을 듣고 그 나이에도 대단한 카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책의 저자가 폴 오스터라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빵굽는 타자기'란 말과 이 책 한 권 만으로도 그의 작품 전체가 그려지는 듯 하다. 다른 것도 읽어야겠다.   

 

  추신: 일기에 대해 내가 40년 후에 할 후회를 폴 오스터가 미리 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도 나는 후회할 짓을 하고 있지. 여하간 겁나게 공감된다. 그러니까, 내가 읽을건데, 좀 열심히 쓰면 좋을텐데 말이야.

  당신은 그 당시엔 너무 어려서 나중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될지 몰랐다. 현재에만 갇혀 있어서 당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대가 실은 미래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일기장을 내려놓았고, 그 후로 47년 동안 조금씩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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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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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노 요코라는 사람은 나에게 작년까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작년부터 정말 읽어보고 싶은 책의 작가다. 책 내용은 일절 모르지만 '사는 게 뭐라고'와 '죽는 게 뭐라고'라는 말을 책의 제목으로 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내용이 비록 내 마음과 맞지 않아도 일단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던지 당최 도서관에서 빌릴 수가 없었다. 그래, 내가 알면 보통 남들도 다 알더라.

 

  그러던 차에 무려 신간,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가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이 집으로 배송되어 왔다.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하는 중에 이렇게 반색하고 좋아한 건 처음이야! 배송 온 첫 날부터 읽기 시작한 것도 처음인 듯 하다. 앗싸리 다 읽었지! 잊기 전에 얼른 리뷰도 써야지! 하고 쓴다.

 

  고작 작년에 소개되었는데 벌써 이렇게 인기가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좋았던 구절에 표시해 두었다가 리뷰에 남겨두고 있다. 혹여나 읽는 분들이 있다면 같이 원문을 읽어보시길 하는 마음이 하나, 나중에 내가 다시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나. 그런데 이 책은 한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 아니라! 한 단원 전체를 표시해놓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누군가가 '윤여정씨가 쓴 책 같지 않아?'하는데 오오. 정말이지 그랬다. 예전에 윤여정 배우께서 힐링캠프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매력적이시던지. 딱 그렇다. 시크하고 툴툴거리신 것 같은데 세련된 인간미가 배어나와서 볼매 of 볼매다. 어쩐지 일본의 또다른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윤여정style'에 빠져 있어서 그랬는지 이 책을 집필할 때 작가의 나이가 무려 40대였다는 사실을 알고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이구, 몇 년을 제가 올려놓은 건가요! 내가 이렇게도 작가의 나이를 높게 생각했던 것은 그만큼 연륜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책 말미의 옮긴이의 말이 이번엔 정말 내 마음 같았다.

 

수필의 기본적인 덕목은 달리 표현하면 꾸밈과 대비되는 '솔직함'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 쌓인 것들을 '사실대로' 뱉어 냈다는 것만으로

독자의 마음에 깊은 공감과 감동을 끌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표피적인 솔직함은 단지 가십거리를 더해 줄 뿐이다.

 

솔직함이 읽는 이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오는 것은 깊이가 있을 때이다.

그 깊이란 다른 무엇보다도 인생의 깊이, 그리고 깊이를 꿰뚫는 통찰력의 깊이일 것이다.

 

 

  사노 요코는 가벼운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가볍지 않다. 이런 언니가 내 곁에 있어서 서로 한없이 기대고, 또 깔깔거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아아. 당신은 왜 나와 다른 세대를 사셨나요? 뭐가 그리 급해서 벌써 가버리셨나요? 일본에 계셨더라면 저는 무작정 당신의 동네로 가서 당신을 발견하곤 '나는 당신을 아아아아주 좋아합니다'라고 당신 얼굴 앞에서 외치고 싶어요(당신이 좋아할 지는 알 수 없군요. 어쩌면 당신은 수필에 '나는 이상한 한국 여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여자는 다짜고짜 내 앞에서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면서 쓰실지도 모르겠네요).

 

  박연준/장석주 작가가 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중에서 '와인 한 병이 누워있다'는 단원이 정말 좋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가끔 그 에피소드가 문득 생각나는데, 따뜻하면서 어쩐지 귀여워서 나의 남편도 그랬으면 싶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문득 생각할 이야기가 한 단원으로 끝나지가 않는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인류여, 인테리어 잡지를 산 날, 유화 물감, 이게 인생이야'는 소단원(자꾸 챕터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만 국어를 써야지)인데 각각을 전부 베끼고 싶다! 그런가하면 '1만 번 회전하는 세탁기'는 대단원 전체를 베끼고 싶다. 이걸 뭐 어찌할 수가 없다. 사실 뒷부분은 표시하기도 지쳐서 남겨둔 것도 있다.

 

  욕심을 버리고 딱 한 군데, 내가 만약 이 책의 내용을 잊었는데 다시 읽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할 때 내가 다시 읽기를 바라는 부분을 써 놓고 마치려고 한다.

 

 

  아이가 세 살 때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는데, 조용해서 돌아보니

아이가 코딱지를 파서 그걸로 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셋슈(중세 시대의 그림에 뛰어났던 중)를 뛰어넘는 그림쟁이가 될까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은 없다.

어쨌든 나는 그때 아이를 보고 인간은 뭐든 있는 것으로 그림을 그리면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저기요, 남의 아이가 아니구요. 작가님 아들이란 말이예요. 하나밖에 없는. 코딱지 얘기 해도 괜찮은 거예요? 이 매력 넘치는 사람같으니.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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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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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이랍시고 무언가 쓰기 전에 나는 밝혀야겠다.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솔직하게,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의 작품 대부분을 나는 모른다. 나름 그림을 좀 좋아해서 고흐와 샤갈 정도는 관심이 있다. 하지만 나머지는 이름이나마 들어봐서 다행인 인물이 몇몇이오 대부분은 모른다. 그냥 모르는 거다. 이런 상태에서 어떤 서평을 써낼 수 있는지 나도 궁금하다.

 

  이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작가의 탓(?)도 하고 싶다. 그녀가 말하는 인물 중 많은 이들이 일반적인 한국인에게는 상당히 낯설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 않았을까? 러시아 문학과 예술에 특별한 관심이 없던 이에게 이 책은 지독히도 불친절하다. 러시아를 이미 잘 아는 친한 이에게 (제반 설명은 생략하고) 나의 가족 여행은 이러하였다고 사적인 감상을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다. 그럼 듣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을 얘기하면서 막 맞장구치고. 그럼 여행에 대한 작가의 지적인 만족감이 한 층 높아지고 좋은 여행으로 기억이 남고 그런 것 말이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나는 공감이 안된다는 말이다.

 

  도요토옙스키 부분을 읽다가 '세컨드핸드 타임'을 읽으면서 그들이 왜 책을 버렸다, 혹은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웃었다 등의 부분이 나왔는지 이해했다. 러시아에서 작가의 위치는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와 좀 다르다. 러시아의 작가들은 계몽주의적 사명을 띤 교사이자 비판적 저널리스트이며 거의 유일한 지식인 그룹니었다. 서구 유럽에서 어떤 인물을 두고 그가 작가인가 사상가인가를 어느 정고 구분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러시아에서 -특히 20세기 이전에는- 작가는 곧 사상가와 다름없었다.(44쪽) 그런가하면 유명한 대 작가의 좋지 못한 습관도 나온다. 애초에는 산처럼 높이 쌓인 금화를 긁어모으겠다고 덤벼들었으나, 종국에는 이런 지지부진한 나를 넘어서보겠다는, 잃기 위해 안달인 사람의 발악과도 같은 시간들로 이어졌다.(69쪽) 바덴바덴에는 아직도 도요토옙스키가 방문했던 카지노가 남아있다.

 

  톨스토이가 꼽았던 삶의 기본적 태도는 참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있을 지 모를 그런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살 것, 숭고한 뜻만 좇을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개선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89쪽) 그러나 톨스토이의 금욕주의가 육체적 쾌락의 유혹을 거부하기 위한 반증이라는 대목도 흥미롭다.

 

  전혀 몰랐던 화가인 이반 시시킨은 저자 덕분에 알아서 고맙다. 그의 초상화, 비석, 그리고 '자작나무 숲의 개울'이라는 그림이 119쪽에 담겨 있다. 그의 그림을 보러 러시아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에 가보고 싶은 건 처음이다. 그의 그림을 검색해 보았는데 전부 마음에 든다. 그의 그림과, 그의 그림이 대상으로 하던 풍경을 보러가고 싶다.

 

  안나 아흐마토바의 일생은 읽고 있자니 너무나 처연하다. 그 시대에 탈 없이 산 사람이 이상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한 명 한 명의 비극이 비극이 아닌 것은 아니다. 주변인들이 암송한 덕에 후대에 작품이 남은 시인이 많다는 이야기도 놀랍다. 러시아에 대해서 이 책이 두 번째로 나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정말로 새로운 세상이다.

 

(......) 이 모든 일의 증인,

여명에도 황혼에도

방 안을 들여다보는 오래된 단풍나무가,

바싹 마른 검은 손을 내게 내민다.

우리의 이별도 미리 보고,

도움을 주려는 듯 그렇게.

-안나 아흐마토바, '주인공 없는 시', 1940~1962년

 

 

  저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장소와 인물을 내가 좀 더 많이 알고 있었더라면 훨씬 쫀득하게 읽었을 책임에 분명해 아쉽다. 그러나 이 책의 인물을 전부 알고 있으려면 공부를 엄청 해야 할거다. 그럴만큼 내가 러시아와 그 외의 예술가에 특출난 관심이 있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많은 것을 보고 다니는 작가의 아이들에게 부러움을 표하며 글을 마친다. 많이 돌아다니는 건 언제든 좋은 것 같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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