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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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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받아든다. 매서운 느낌의 눈 한 쌍이 나를 노려본다. 띠지를 벗겨내면 그저 턱을 괸 남자의 얼굴이란 걸 알게 되지만, 어쨌거나 책 제목이 띠지 위에 있으니 띠지를 벗겨내기도 뭐하다. 책을 닫을 때마다 눈을 잠시 쳐다본다. 이 남자는 폴 오스터일까, 젊은 날의 폴 오스터를 바라보는 신의 눈일까. 저 젊은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는 것만 같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솔직히 폴 오스터의 책을 한 권도 읽은 적 없으면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괜찮은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다 읽은 지금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이 폴 오스터의 첫 책이라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이 정도의 글을 쓰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어린 시절의 그부터 알아가는 것도 좋지, 뭐. 일단 읽기 시작하는 게 중요한거다. 

 

  다른 사람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 7살 이전 시절 이야기는 더더욱.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그 내용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어린이의 시각으로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어른의 시각으로 이어나가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어떤 건지 판단할 수 없어 순수한 맛에 읽는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화자가 판단해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다만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어린 아이의 심정이 두 가지 나와 문득 과거를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하나는 '가끔씩 딱히 이유도 없이 당신은 갑자기 당신이 누구인지 어리둥절해지곤 했다. 당신의 몸속에 살고 있는 존재가 사기꾼으로 바뀌거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바뀐 것만 같았다.'로, 어쩐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던 몇 순간을 연상하게 한다.

 

  대체로 그 순간들은 내가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난 때였는데, 별 것은 아니고 가령 명절이라 할머니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는 순간이라던가 내 방에서 자지 않고 엄마아빠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자다 일어난 순간 따위였다. 몇 초쯤 지금 내가 어디있는지 파악하려고 하고 몸서리치게 낯선 기분을 떨쳐내려고 애썼는데 별 효과는 없었다. 누군가와 말을 하거나 억지로 잊으려고 애를 쓰면 그 기분에서 벗어나곤 했는데, 언제까지 그 기분이 느껴졌는지 구체적으로 생각나지는 않아도 썩 좋아하지는 않았던 감정임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그가 프랭클린의 장례식을 보고 충격을 받아 슬픔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 모습을 기억하는 부분은 또 내가 생애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으로 목격한 장례식을 떠올리게 한다. 하얀 옷을 입고 오열하는 것에 의미를 몰랐던 나는 그 공간이 그저 무섭기만 했다. 결국 밤에 귀신과 도깨비 그 중간의 무언가가 쫓아오는 꿈을 꿨는데, 예나 지금이나 달리기에는 전혀 자신이 없는 나는 극한의 공포를 느끼며 뛰고 또 뛰었다. 비슷한 이미지의 도깨비에게 훗날 또 쫓기는 꿈을 꾼 것을 보면 어지간히 무서웠나보다. 하긴, 난 항상 겁이 많았다.

 

  이런 단편적인 공감을 하면서도 어쩐지 지지부진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지루한 내 마음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그가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어찌나 생생하고 어린 마음에 충격적이었을지 느껴져서 마치 영화를 같이 보는 양 마음을 졸였다. 아마 그 영화를 직접 보면 딱히 재미나지는 않겠지. 그 다음부터는 신나게 쭉쭉 읽었다.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와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런 남자는 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작가는 이래야지' 싶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이 책을 읽는 나의 기분은 '이 사람이랑 친구하고 싶지는 않군'과 '작가의 감성이란 이런 건가? 올 신기한데?' 사이를 넘나들었고, 끝에는 썩 흥미로운 산문이라 결론내렸다. 꼭 작가라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젊은 미국인들이 주로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궁금증이 자꾸 생겨나는 건 재밌는 책이라는 증거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가 스타가 되기 전의 일상을 읽는 것은 흥미롭지 않기가 어렵다. 하루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직접 에세이로 쓴다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몇 개월은 되고 남을 것이다(설마 이미 쓴 건 아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팬이라면 정말로 괜찮은 책일 것이라 확신한다. 중학생 시절에 '빵굽는 타자기'란 표현을 듣고 그 나이에도 대단한 카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책의 저자가 폴 오스터라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빵굽는 타자기'란 말과 이 책 한 권 만으로도 그의 작품 전체가 그려지는 듯 하다. 다른 것도 읽어야겠다.   

 

  추신: 일기에 대해 내가 40년 후에 할 후회를 폴 오스터가 미리 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도 나는 후회할 짓을 하고 있지. 여하간 겁나게 공감된다. 그러니까, 내가 읽을건데, 좀 열심히 쓰면 좋을텐데 말이야.

  당신은 그 당시엔 너무 어려서 나중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될지 몰랐다. 현재에만 갇혀 있어서 당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대가 실은 미래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일기장을 내려놓았고, 그 후로 47년 동안 조금씩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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