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인지과학
프란시스코 바렐라 외 지음, 석봉래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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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베언Fairbairn에게 있어 인간의 기본 동기는 쾌락원칙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필요다.

Chapter6 자아 없는 마음 대상관계들의 사회

 

요즘의 하루는 그간 몇 번 느꼈던 무위의 나날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넘쳐버린 찻잔에 비교할 수 있고, 두 번째는 바닥 없는 항아리에 물 붓기와 같은 느낌에서 얻어지는 허무함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바닥 없는 빈 찻잔을 들고 물 속에 들어가서 물 붓는…… 아마 그런 느낌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리 지식으로 가득 차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럴 때 그럴듯한 말로 이런 감정을 말로 또는 단어로 대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비유나 은유가 필요할 텐데 그만큼 성숙된 지혜를 가지고 못하고 있음에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자주 가는 병원의 의사도 궁금해한 스트레스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스트레스는 잠재의식, 무의식의 바닥으로 내려가서 확인 할 수 없는 그 심연에 자리잡아 통증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TMS-긴장근육염 증후군Tension Myositis Syndrome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통증유발자 마음 존 사노 지음 승산 2011 ) 그러나 그 증후군에 대한 책은 아직 읽는 중이므로 뭐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의학적인 견해에 부합되는 통증과는 상관없는 마음의 공허함에 대하여 느낀 바는 얼마 전에야 갑자기 생각하게 된 것으로 그것이 시간의 한 흐름에 지나지 않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후에 그런 공허함을 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세계가 머리 숙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세상보다 커진 모습을 보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 사건은 환상에 지나지 않거나 뇌의 착시 현상 중 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그런 흐름에 섞여 있다는 것. 그것으로 놓아버린…… 뭐 그런 느낌.

 

마음. 그런 마음, 이런 마음, 내가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는 마음은, 본래 없는 것임에도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들이 모여서 나날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 착각을 놓아버리면 사유하는 주체에게 남는 것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무엇. 그것을 가칭한다면 나라고 할 수 있는…… 말하자면 ‘Tat tvam Asi ‘이다.

역시나 아직도 모자란 단어들의 조합……

 

마음은 다만 집착과 현혹의 습관적 패턴 때문에 잠시 혼란에 빠졌을 뿐이다. 제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은 끝없이 이어지는 자신의 움직임 속에 서 무엇인가 안정된 지점을 끊임없이 잡아보려 하거나, 사고, 감정, 개념들에 마치 단단한 바탕이 되는 양 끊임없이 매달리려고 한다. 이런 습관들이 모두 사라지고 더불어 우리가 그런 습관을 버리는 법을 배울 때, 자신을 알아보고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보는 마음의 자연적 속성은 빛날 수 있다. 이것이 지혜 또는 성숙, 즉 프라야나Prajana의 시작이다,

몸의 인지과학 The Embodied Mind Chapter2 인간 경험이란 무엇인가? 지관의 방법을 통한 경험탐구 프란시스코 바렐라 Francisco Varela 지음 감영사 간 2013.7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의 나날들은 여전히 달을 옮겨가고 있다. 새해도 1달이 지나고 입춘이라는 절기도 지나고…… 태양을 향한 채 돌아가는 이 땅덩어리는 그 조그만 거리상의 변화에도 지표면에 커다란 흔적들을 남기고 지나간다. 지구온난화라고 표현되는 그 현상들이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인지 그저 수억 년 동안 늘 그렇게 순환되어온 나날들이 반복되는 과정일 뿐일 수도 있음에도 그렇게 수선 떨며 요란스런 지구온난화란 이름을 붙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백 년도 못사는 인간들에게 요즘의 변화는 놀라운 이변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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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제국 3부작 2
안토니오 네그리 외 지음, 조정환 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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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로 이르는 길은 미래에로 이를 수 있는 한 가지 경로일 뿐이다. 또 다른 경로는 조국에 대한 사랑, 즉 아모르 빠뜨리에(Amor Patriae)의 재탄생이다. 이것은 민족주의나 인민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에른스트 칸트로비츠(Ernst Kantrowicz)는, 조국을 위해 죽는다는 생각의 역사에 대한 훌륭한 글인『조국을 위하여 목숨을(Pro Patria Mori)』에서, 이 근대 유럽의 개념이 실제로는 흔히 생각하듯 전투를 벌이는 영웅들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의 찬미에서 유래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 개념은 오히려 중세와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이 당시에는 나라에 대한 사랑이 사실상 어떤 나라의 제도나 심지어는 국가적 동일성에도 묶여 있지 않았다. 칸트로비츠가 조국에 대한 사랑이라는 관념의 표면아래를 파헤칠 때 그가 발견하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공화주의적 카리타스(Caritas)또는 공감적인 동료애이다. 이것은 모든 국가들을 초월하는 아모르, 휴머니타티스(Amor Humanitatis), 즉 인류애로 변형된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그리고 – 훨씬 더하게는 – 민족주의적 군국주의의 찬미는 이 애국적 정조(情操)의 전통-조직화: 좌쪽

역사의 어느 시기에서나 인류는 권위와 명령을 거부해왔고, 특이성의 환원할 수 없는 차이를 표현해왔으며, 무수한 반란들과 혁명들에서 자유를 추구해왔다. 이 자유는 물론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자유는 장애들과 한계들을 부단히 극복함으로써만 출현한다. ………
자유를 향하는 능력 그리고 권위를 거부하는 성향은 가장 건강하고 고귀한 인간의 본능들, 즉 영원의 실재적 기호들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을 말하기보다, 이 다중이 항상 현재 속에서, 영속적인 현재 속에서 활동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첫 번째 다중은 존재론적이며, 우리는 이 다중 없이는 우리의 사회적 존재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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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 관리되는 민주주의와 전도된 전체주의의 유령
셸던 월린 지음, 우석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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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대통령 선거운동을 앞두고 부시 측 참모 가운데 한 사람은

대통령이 따라야 하는 전략을 낙관 요소와 공포 요소의 적절한 결합들로 묘사한 바 있다.

131P 4장 테러의 신세계

 

아침이면 알람 시간에 맞춰 놓은 TV가 켜지면서 뉴스 아나운서가 어제 저녁 뉴스시간에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면서 잠에서 깬다. 그 것은 지난 밤에는 세상이 주목할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니 늘 그렇고 그런 날이 지속된다는 것도 알려주는 셈이다.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 가끔은 이런 뉴스가 들리면서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경상수지 사상 최고기록

, 한국은행은 지난달 경상수지가 95억 천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벌써 21개월째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배 정도인데요
.
한국은행은 올해 630억 달러의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철에서 보게 되는 스마트 폰 속의 포탈사이트 뉴스헤드라인에는 기업이 1000원어치 팔아서 47원의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면 사상 최고의 경상수지 흑자라는 것은 어디에서 근거한,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뉴스였을까? 통계의 마술에 현혹된다.

 

그런데 이 뉴스에서 사상최고라는 수식어에 놀라야 하는 것인지, 숫자가 말해주는 단위에 놀라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단위로 보여주는 통계상의 경기와, 현실에서 부딪히는 체감경기와의 간극. 그런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래서 그런 뉴스에 -<장사를 해서 수입이 늘었으면 뭔가 나아지는 것이 있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 생활에 변화가 없음은, 이를 테면 분수탑의 상륜부에 있는 수반에 물이 넘치지 않을 정도만 물의 공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탑의 기단부에 있는 수반에는 물이 마른 채로 있는, 그런 셈인가?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그런 불균형을 안타까워하기에 자신들의 범법행위를 숨겨가면서까지 입법의 장에서 날마다 서민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만약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로 자랑하는 경제성장이 상륜부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느낄 수 있는 수준이라면 그렇게 대놓고 자랑할 수 없는 수익일 텐데 왜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뉴스!

비판의식과 감시기능이 사라진 뉴스!

그것은 뉴스라기 보다는 그저 얼굴에 희극적 분장을 한 웃기는 개그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할 수준이다.

살기 힘든 세상에 서로 싸우는 모습 보여주는 것이 뭐 좋은 일이고 그런 뉴스보다는 밝고 희망찬 미래 어쩌고 하는 소식을 보여주는 것이 정서상 좋지 않겠는가 라고 한다면 뉴스대신에 잘 먹고 잘 노는 모습만 보여주는 먹방이나 홈쇼핑, 여행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 것만 보여주려는 지상 파 방송이 있기는 하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상 파 방송이나 케이블 반송의 뉴스나 약간의 차이점은 있겠지만 뉴스에 대한 신뢰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동일한 결과를 보여주는 여론조사의 결과도 있었다.

 

공영방송 뉴스, ‘신뢰도·공정성’ 기둥 와르르”

 

뉴스의 역할이나 지향성 같은 학술적 정의 같은 것은 배운 적 없어 아는 바 없지만 시청자나 구독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뉴스에서 미래의 희망을 보던, 과거의 망령을 보던 그것은 청자의 입장에서 정리할 나름이라고 생각하며, 뉴스 공급자의 입장에서 사회의 변혁과 정의의 구현, 뭐 이런 윤리적인 목적을 가지고 사회의 제도나 구성을 계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끔 왜 우리나라의 방송화면에서 미국의 뒷골목에서 일어나 총기사고나 교통사고 뉴스를 봐야 하는지 그런 소식이 언론의 사명감과 관련이 있는지 이해 안 될 때가 있는 정도이다. 교민이 많이 사는 곳이니 그들의 가족에 대한 배려라면 같은 가치를 지닌 소식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국내에도 많을 텐데 하는 의구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스포츠에서 누군가가 국제경기에서 메달을 획득하였다던지 우리의 제품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던 지 하는 뉴스의 목적이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빠르게, 그리고 널리 알려 자랑스러운 마음, 자긍심을 갖도록 하려는 것은 그들의 임무일 것이라는 생각 정도?!

그런 면에서 사상최고라는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 긍지를 갖도록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겠지만 그 것을 왜 지금?

 

자긍심.

사람들에게는 간혹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세상에 의하여 속지 않고 살아가며 내일이면 꺾여버릴 희망이라도 지니고 있게 하는 것이 자긍심일지도 모르겠다.

사상최고라는 단어가 국제적인 경기침체상황-사실 이 말도 무엇에 비하여, 어느 때와 비교하여 침체라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잘 살고 있다라는 자긍심을 심어주자는 행정부와 언론사의 취지였다라고 하더라도 과연 무엇에 비교하여 자긍심을 높여주려는 의도일까?

 

긍지.

그것은 만족감을 느끼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지만 대상, 또는 타자와의 비교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균형을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이성의 균형을 잃은 긍지는 허영심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최고라는 단어가 분수 탑의 모두에게 적용된다면 긍지라고 하겠지만 상층부의 수반에게만 해당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도허영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허영심은 자만이고 오만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으므로 그런 뉴스는 안 하고 안 듣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주요 뉴스시간에 했을까? 그냥 사실을 전한 것뿐이라면 사실이라는 단어를 적용할만한 뉴스가 그것뿐이었을까? 사실이라고는 교통사고화재소식뿐이라고 해도 될 만큼 뉴스는 매번 느끼지만 볼 때와는 달리 볼 게 없다고 생각된다. 정치 관련 뉴스는 저 인간들 좀 사라졌으면 하는 짜증만 나게 하고, 경제는 아무리 잘 된다고 하여도 나와는 상관 없는 남의 일 같고 요즘의 국제정세는 50년전으로 돌아간 새로운 냉전시기의 그것처럼 군비경쟁이나 해대는 통에 불안을 부추기고…… 이런 뉴스란 아침에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것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저녁 뉴스를 재방송한 것에 지나지 않은 않았음에도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그것은 아마 그들이 노린 술수가 아니었을까? 뉴스에 둔감하게 되고 사실을 왜곡해서 듣고 사회적, 국제적 현실에 공포감을 느끼게 하여 자신들의 야심을 채우려는 모종의 계획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세력들이 벌이는 게임!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모두 평등하고 동일한 수많은 군중의 생활 속에서 싫증이 나도록 겪게 되는 사소한 쾌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 각자는 서로 분리되어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의 자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사람들이 그에게는 전체 인류에 해당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보호자격의 거대한 권력이 군림하게 되는데, 이 권력은 이들을 만족스럽게 해주고 또 이들의 운명을 감시해 주려고 나선다. 이 권력은 사람들을 계속 어린아이의 상태에 묶어두려고 한다…….

이와 같이 사회의 각 구성원을 자기의 수중에 장악하고서는 그들을 마음대로 다루게 된 후, 그 다음으로 최고의 통치권력은 그 세력을 전체 사회로 확장하게 된다. …… 이런 권력은 생존을 파괴하지는 않지만 방해한다. 그것은 폭정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국민을 억압하고 생기를 잃게 하며, 우둔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침내 개개 시민은 한 때의 겁 많고 근면한 동물로 전락하게 되며 정부는 그 목자가 되는 것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 Alexis de Tocqueville 미국의 민주주의 2 663

전제정치에 편안함을 느끼는 토크빌 식 민주주의자, 절대주의를 선택하는 홉스 식 자유 합리주의자. 이 둘은 선택적 친화성을 지닌다. 토크빌은 시민들이 참여 정치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탓에 비로서 가능하게 되는 전제 체제를 상상한다. 그는 이것을 미국인의 정치적 삶의 실상을 보여주는 가장 특정적이고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꼽는다. 자신들의 사사로운 목표에 매몰되어 공동체의 문제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면서 그들은, 마치 홉스Hobbs가 말한 계약에 서명한 이들처럼, 시민으로서의 삶보다는 정치에 냉담한 피지배자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4장 테러의 신세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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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 사이언스 클래식 23
칼 세이건.앤 드루얀 지음, 김동광 외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3월
구판절판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주장되는 항목을 침팬지와 보노보는 얼마나 철저하게 지워 버리고 있는가! 자아인식, 언어, 사고와 그 결합, 이성, 교환, 놀이, 선택, 용기, 사랑과 이타심, 웃음, 배란 숨기기, 입맞춤, 얼굴을 맞대는 체위의 성교, 암컷의 오르가슴, 분업, 식인습관, 미술, 음악, 정치 그리고 탈없는 양족성(兩足性), 특히 도구의 사용, 도구와 제작 등이 그 속에 포함된다.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확신에 찬 태도로 인간에게만 독특한 것으로 여기는 특징을 열심히 제기하면, 유인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것들을 각하시키는 셈이다. 그들은 지구의 생물가운데 일종의 생물학적 귀족을 자처하는 인간의 주장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인간은 귀족보다는 오히려 벼락부자에 가깝다. 최근 갑작스레 높아진 지위에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채, 현재의 자기와 과거의 비천한 출신가문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든 벌려 놓으려고 안간힘을 쏟는 벼락부자 말이다. 451P-451쪽

자연 상태에 있는 유인원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수많은 감정 가운데 우리가 인간임에 만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유인원이라는 사실에 만족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종에게 비슷한 느낌이 있을 것이다,. 반대 경우보다는 그런 만족감을 품는 편이 훨씬 적응력이 뛰어날 것이다. 이런 설명이 사실이라면, 인간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자기만족적인 특징도 부정되고 말 것이다-439쪽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행동을 통해 인간과 다른 동물을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다. 그러나 동물들의 내부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통로가 아직 열려있지 않다면, 동물들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1인칭 설명, 즉 그들이 사고와 통찰에 대한 그들 자신의 보고에 바탕을 두고 비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증거가 없다고 해서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4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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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복제자 밈
수전 블랙모어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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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 의식적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다면,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세운 인간 본성의 이론은 헛되고 생명력 없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살 수 있을까?
누가 무엇을 하기로 어떻게 선택한단 말인가? 한가지 방법은 항상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만히 흘려 보내는 것이다. 제18장 우리는 밈머신이다. 430P

우리의 도덕적 행동들은 많은 부분 유전자가 책임지고 있다. …… 진정한 도덕성은 어쩌면 거창하고 고귀한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자아 때문에 일산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그만두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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